[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인권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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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우리가 산 위에 있지 않아도 메아리는 늘 함께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미움은 더 큰 미움으로 메아리를 일으키죠.

북한의 인권 실태를 전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메아리가 돌아올까요. <여기는 서울>, 인권의 메아리가 잔잔히 울리는 현장을 담아봅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건물 3층.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 사무실입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인권 관련 기록물을 수집, 기록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2월 15일, 사무실 내 공간 일부를 할애해 북한인권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전시품으로 공간이 꽉 차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수집한 북한 인권을 기록한 자료 중 일부가 전시돼 있고 탈북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기증한 북한 물건을 한곳에 모아둔 공간, 탈북 작가의 작품들까지 알차게 구성돼 있는데요. 첫 기획 전시 제목은 <낯선 말, 표현의 그림자>.

이번 전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북한인권정보센터 김수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인터뷰-김수진) 말과 관련된 키워드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어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북한 사회를 보여주고 싶어 ‘표현의 그림자’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또 ‘낯선 말’이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북한이탈주민분들이 쓰는 단어를 남한 사람들이 들으면 낯선 느낌이 있잖아요. 단어 중에도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흔히 얘기하는 문화어라든지 그런 말도 좀 다른 억양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오는 이질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북한 사람들의 단어, 억양. 반면에 말은 북한 사회에서 처벌의 단초, 억압의 대상인데요. 바로 이런 이유로 인권박물관의 첫 전시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전시장 입구 왼쪽 벽면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가 5개 마련돼 있습니다. 각 모니터에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말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 증언하는 탈북민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요. 관람객들은 모니터 옆에 마련된 헤드폰을 이용해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증언 영상) 우리 동네에 살던 사람 중에 ‘영양단지’를 ‘애물단지’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는데, 그 일로 남자 형제 둘 다 잡혀갔어요. / 아빠 친구분이 우리 집에서 술을 드셨거든요. 러시아에서 벌목하는 분이셨어요. 그분이 ‘우리나라 돈은 외국에 나가면 쓰지도 못하고 휴지 쪼가리’라고 했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20분쯤 지났을까? 우리는 4층에 살고 그 집은 옆 동 2층이었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나고 경찰들이 그 집을 다 털고 갔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온 집안 식구가 연기처럼 없어졌어요.

이들은 모두 ‘말반동’으로 몰려 처벌된 것인데요. 최고 지도자나 조선노동당을 비난하거나 북한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하는 말과 행동, 북한 당국을 원망하는 발언… 이런 행위는 모두 북한에서 ‘말반동’으로 처벌되죠.

전시회에서는 ‘말반동’이 나, 내 이웃, 내 친구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증언 영상) 나부터도 말반동이 됐어요. 제가 5살 때 우리 아버지를 보위부에서 붙잡아 갔어요. 꿈처럼 기억나는데, 제가 따라가면서 막 울면서 제가 그 상황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내가 그걸 안 잊고 복수를 하겠다고 했다고.. / 내복 바람에 옷도 못 걸치고… 친구가 그렇게 가는 모습 보고 너무 놀랬어요. 죽지 않으면 정치범 수용소 잡혀가는.. 둘 중의 하나에요.

말과 관련된 작은 실수로 예상치 못한 처벌을 받거나 처벌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들…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불러온 재앙적 상황은 남한의 관람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중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다는 현숙희 씨입니다.

(관객 인터뷰) 영상으로 접한 이야기가.. 말과 행동을 통제 받고 있는 것은 안타깝고요. 말 한마디 때문에 체포되는 일들이 북한에 살 때는 당연한 줄 알았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는 세뇌 교육이 정말 무섭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부 다 표현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배고프다, 힘들다, 억울하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고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 사회에서는 이런 말들을 했다는 이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까요? 김수진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터뷰-김수진) 그 한 사람의 말로 인해서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북한은 김부자의 말이 곧 법 이잖아요.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표현의 수단이 말로 나오는 건데, 그런 말이 북한의 조직이라든지 사회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우려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북한에서는 말이라는 게 북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전시장에는 북한 주민들의 말과 행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실제 사용했다는 생활 수첩입니다.

(인터뷰-김수진) 생활총화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이 생활 수첩 한 권에 다 담겨 있어요. 북한에서의 억압된 통제, 세뇌에 대한 얘기를 이 생활 수첩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이번 전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북한 생활 수첩 원본을 그대로 들고 와서 체험형으로 준비했습니다. 수첩 안에는 김부자에 대한 내용이라든지 자아비판에 관한 얘기도 있고… 이 생활 수첩 자체가 북한의 그런 억압되고 통제된 시스템을 잘 보여주는 수단 중 하나라고 봅니다.

전시장 구석, 짙은 분홍색의 벽에는 까만색 동그란 스피커 즉 소리 증폭기 여러 개가 설치돼 있습니다. 설치 작가의 미술작품인데요. 스피커에서는 웅웅하는 소리만 들립니다. 말을 하려고 하나 누군가가 입을 막았을 때 내는 소리 또는 많은 사람이 아주 작게 말하는 소리가 연상됩니다. 말을 통제하는 북한 사회를 상징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손바닥만 한 종이 카드가 벽에 가득 붙어있습니다. 앞쪽엔 짧은 문장 하나가 쓰여 있고 뒤집어 보면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말반동과 관련된 사건에서 추린 대표적인 말 55개로 관람객들은 원하는 카드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인터뷰-김수진) 저희 통합 인권 데이터베이스에서 말 반동과 관련된 발생한 사건을 추출해서 이런 증언 카드로 만들어 놨어요. 보시면 앞면에는 ‘나는 학습 가는 길이 죽기보다 싫어’ 이런 내용이 있고요. 뒷면에는 ‘1981년 누구의 아버지는 학습 가는 길에 이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보위부에 잡혀간 후 실종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 대상자의 처벌 결과를 보여주는 사건 증언 카드입니다.

-Closing Music-

모든 전시품을 다 보고 나면 문을 나가기 직전, 이 앞에 서게 되는데요. 관람객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고 합니다.

(관객 인터뷰) ‘방송(스피커) 소리가 높다’… 이 말을 한 주민은 ‘당의 목소리를 함부로 낮추라고 했다’는 이유로 교화소에 구금됐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실제로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계속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진 연구원) ‘메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어떤 이런 메시지를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이 메아리가 곧 북한 주민분들의 어떤 목소리를 속으로 담고 가져가셔서 계속 그 목소리를 되새기고 기억을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박물관 안에서 시작된 인권의 메아리가 청취자 여러분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