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두려움 하나, 설렘 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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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겨울방학입니다. 얼음 분수 축제, 송어 축제 등 각 지역 축제부터 동네 도서관, 천문대까지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인기가 높아서 접수를 시작한지 10분도 안 돼 마감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영어 캠프도 마찬가집니다.

영어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는 영어 캠프. 학년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캠프기간이나 활동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원어민 선생님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탈북 청년들을 위한 영어 캠프도 마찬가집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선발된 경우에만 참가할 수 있는데요. 재학생 모두를 위한 영어 캠프를 마련한 탈북민 대안학교도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데려온 자녀들 그리고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도 함께 공부하고 있는 남북사랑학교에서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새해 1월 5일까지 2주동 안 영어 캠프를 진행했는데요.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영어 캠프 현장 (음악소리)

음악 소리에 이끌려 들어가 본 이곳은 저학년, 그러니까 7살부터 12살까지 초등학생들이 모여있는 교실입니다. 율동하고 영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영어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인데요. 낯선 사람이 들어가니 잘 따라 하던 동작도 그만두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방해되면 안 되기에 엄지손가락 한 번 세워주고 얼른 교실을 나와 다른 교실로 향해 봅니다.

(현장음) Cold / Good job~ / 잘했어요. / 이제 마지막! / 괜찮아요. / Guys. Ask each other~~

이번 교실엔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실에 들어선 저를 보고도 거부감이 없고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이는데요. 수업 내용도 좋아하는 계절과 날씨를 묻는 일상생활 용어입니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에게는 단순하고 쉬운 문장이겠지만 학생들에게는 여러 번의 연습이 필요한 큰 도전이기에 같은 문장과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교실에 학생은 7명인데 선생님은 4명. 원어민 선생님 2명과 한국인 선생님 2명이 학생들과 함께하고 아이들 곁에서 거의 1대 1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렇게나 많은 선생님이 함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답니다. 심양섭 교장 선생님의 설명입니다.

(심양섭) 사회봉사 프로그램으로 온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10대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선생님들이 오셨어요. 또 평소에 오던 남북사랑학교 자원봉사자들까지 다 힘을 합쳐서 이번 영어 캠프를 돕고 있습니다.

제가 들어간 교실에는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수현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로 말하면 한국인 자원봉사자 김수현 선생님이 한국어로 설명하는데요.

(현장음) OK. We only have few of minute. So we will go over some words and then we will be done. / 단어 몇 개만 보고 끝낼게요. / 끝이야. 요번만 하면 끝이야. / 같이 해봅시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학생도 있고, 자기들끼리 얘기도 나누고 얼핏 보면 수업 분위기가 산만하게 느껴지는데요. 김수현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김수현) 학생들이 보통 중국어를 가장 잘하고 그다음이 한국어인데, 저희는 영어로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치시고 저는 한국어로 설명해야 하거든요. 그 친구들한테는 한국어도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언어이다 보니 집중하기도 힘들고 못 알아들어서 한 번 전체로 설명을 하고 한 명, 한 명씩 붙잡고 ‘이게 이거야’라고 설명해 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것과 별개로 애들이 굉장히 성격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현 선생님은 영어 캠프 외에도 학력 인정 시험인 검정고시 준비반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답니다. 국어와 사회 과목을 맡았다는데요. 정규수업은 남북사랑학교 선생님이 하고 김수현 선생님은 학습지 문제 풀이 등 보조 역할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학습지원을 하면서 만나게 된 탈북민 2세를 통해 김수현 선생님은 스스로도 성장할 기회였다고 말하는데요. 더불어 쑥쑥 성장하는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김수현 선생님의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김수현) 여기서 지금 가르치는 게 아마 남한 학생들이 초등학교 한 2~3학년 이때쯤 배울 만한 내용이긴 한데 되게 많은 걸 지금 집약적으로 배우고 있거든요. 하루에 몇십 개씩 단어 외우고 많은 걸 배우고 있는데 그걸 굉장히 진짜 빠르게 흡수하고 있고 잘 따라오고 있어요. 제가 봐도 초반에 비해서 훨씬 더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늘었어요. 처음에는 아는 단어가 너무 없어서 다들 문장을 제대로 말을 못 했는데 이제는 나름 혼자서 문장도 말하고 가끔씩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 문장을 말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현 선생님이 영어를 통역했다면 김주은 학생은 중국어를 통역합니다. 영어 캠프에 참여한 학생이자 보조 선생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낸 주은 양은 탈북민 2세로 올해 16살입니다. 12살에 한국에 들어와 남북사랑학교에서 초등과정 공부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중등 과정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에 왔다는 주은 양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한국어가 유창한 편이었는데요. 비법은 한국 영상물을 즐겨보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법은 외할머니! 주은 양에게 엄마의 고향 얘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답니다.

(이주은) 저희 엄마는 탈북자입니다. 북한 탈북자. 아빠는 중국 사람인데 제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몰라요. 할머니는 제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태어났대요. 북한 감옥에 들어갔다가 다음은 중국으로 이동됐어요. 엄마 고향은 북한입니다. 지역은 잘 몰라요. 하지만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백두산은 가깝대요. 할머니는 내 어릴 적에 있었던 일도 알려줘요. 제가 어릴 적에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더라고요. 엄마가 탈북에 성공했는데 갑자기 아빠를 만나게 되고 결혼도 안 한 채 제가 태어났고 저하고 엄마가 함께 지옥 같은 감옥 안에 들어갔대요. 그 안에서 시래기 국물 마셨는데 제가 그 후에 몸이 안 좋아져서 아빠가 와서 저를 중국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그래서 엄마 혼자 감옥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살았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슬프고 마음이 이상했어요.

엄마와 함께 북송당했던 기억도, 자신만 혼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던 기억도 주은 양에게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어린 시절 이야기들은 주은 양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슬픈 얘기지만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서 잘 자란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는 것이 주은 양의 꿈입니다.

(이주은) 꿈은 있지만 어느 대학이 있는지 어느 대학이 저랑 어울리는지 잘 몰라요. 저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고 모델도 되고 싶고 배우도 되고 싶어요. / (리포터) 욕심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 (웃음) 선생님들한테 그리고 또 어른들한테 들었는데 ‘영어나 중국어는 기본이니까 잊어버리면 안 돼’라고 하셨어요.

-Closing Music –

그래서 주은 양은 영어 캠프에도 빠짐없이 참여했고 한국어가 서툰 친구들을 위해 중국어 통역까지 했습니다. 좀 더 멋진 미래를 생각하면 공부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답니다. 이번 영어 캠프도 큰 도움이 됐다는 주은 양은 5년 후 자기 모습을 이렇게 상상합니다.

(이주은) 그때는 아마 꿈을 이뤘을 테니까 기분이 좋고 엄마도 덜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웹툰 작가, 모델, 배우. 무엇이든 주은 양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 내기를 바라며 또 남한과 중국의 또 다른 주은 양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