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다운 삶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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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 벌써 몇 년째 코로나비루스 대유행 여파가 계속되면서 조금씩 우리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백신 개발에 이어 먹는 치료제가 개발됐고 한국에서도 백신 개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축소됐던 기본적인 생활 범위가 넓어졌고 위생관리, 방역지침 이행을 하며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한국에 살고 있는 북한 청년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여기는 서울>, 지난주에 이어서 코로나 시기를 보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효과음)여러분의 꿈과 희망을 이곳에서 마음껏 펼치시길 바라고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분들의 빛나는 대학 생활을 응원합니다. 신입생 여러분, 힘내세요!

신입생 환영 메시지와 함께 축하 무대에 각종 행사까지! 대학 입학 첫 해는 기쁨과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코로나비루스로 이런 문화가 없어지거나 축소됐습니다.

코로나비루스가 유행을 시작하던 2020년,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에 입학한 최세은 씨는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기에 코로나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북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세은 씨는 한국에 와서 중, 고등학교 과정까지 단 1년 반 만에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그만큼 대학 생활에 대한 부푼 꿈도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세은 씨의 기대와는 반대로 강의실 출입도 쉽지 않았고 친구들도 사귈 수 없었습니다.

(최세은)대학에 입학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 도서관에 가서 아침부터 공부하고 저녁 10시쯤 집에 와서 자는 로망이 있었어요. 그게 가장 큰 기대였고 친구들 사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같이 요리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해봤어요.

올해 24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여학생이라면 대학을 졸업할 나이죠. 남들보다 출발이 늦어 조급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였기에 세은 씨는 학업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외로울 틈도 없다는 세은 씨의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최세은)뭔가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에요. 저는 성인이잖아요. 다들 성인이 되면 엄마 품 떠나서 독립하는 거니까요. 제 삶은 제가 개척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외로움은 있지만 그 외로움이 저한테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아요. 물론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항상 보고 싶고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 커지지만 가끔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채워진다고 생각해요.

이런 감정은 세은 씨만 느끼는 건 아닙니다. 남한 청년들도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친구를 만나지 못해 외롭기도 하고요. 사실 전세 계 사람들 누구나 비슷한 감정일 겁니다. 세은 씨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요. 코로나의 영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은 코로나로 인해 중요한 걸 배웠다고 말합니다.

(최세은)사실 저는 누구한테 자주 연락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는 빨리 이 땅에 적응해야 되는데 살아가기 위해선 배워야 하고, 내가 탈북을 할 때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시급을 버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을 멀리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만 있다 보니까 사람을 못 만나고,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생각이 나더라고요. 먼저 연락을 하고 저를 찾던 사람들이 생각이 났고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게 이런 거였구나, 나한테 이런 도움을 줬구나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연락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요. 그 행동이 진짜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줬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내면서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는데요. 그 말을 세은 씨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이 시기를 잘 넘기는 비법 같은 것도 생겼는데요. 세은 씨는 음식을 다루는 조리학과 학생다운 비법을 내놓네요.

(최세은)저는 먹는 데 소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제일 많이 해줄 수 있는 게 잘 챙겨 먹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먹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이고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안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안 먹으면 힘이 진짜 떨어지더라고요. 우울해져요. 항상 먹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배워보니까 그게 맞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배우면서 건강하게 챙겨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은 씨는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생긴 시간을 누구보다 현명하게 보내고 싶은데요.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랍니다.

(최세은)뭔가 계획하고 나의 앞으로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 자격증도 따놓고 열심히 운동해서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내 몸도 좀 만들어보고 이런 계획들이 생겨서 살다 보니까, 앞으로 내가 어떨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돼서 기쁘고 즐거워요. 코로나가 끝난 후에 나는 이렇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의 상황에 감사합니다.

학교에 거의 가보지도 못한 채 1학년을 보냈던 2020년 대학 입학생, 또 한 명의 비운의 20학번 학생이 있습니다. 32살의 나이에 을지대학교 안경학과에 입학한 주지은 씨인데요. 실습이 많은 전공인 만큼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다고 하네요. 모르는 게 생겼을 때 교수님께 바로 질문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수업이 영상 강의로 진행된 덕분에 여러 번 반복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다행히 실습수업은 모두 평상시처럼 진행됐다고 하네요.

(주지은)학교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희 학교에서는 한 번에 40명 들어가는 학생들을 교수님이 20명으로 쪼개고 또 오전반, 오후반 이렇게 쪼개서 실습했어요. 저희는 코로나 때문에 실습을 안 한 거는 없어요. 대신 실습 시간을 두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줄여서 했고요. 2학년 1학기, 2학기 때는 2시간 있는 그대로 실습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지은 씨의 경우엔 1학년 2학기 때부터 대면 수업으로 학교생활을 했지만 동급생들을 사귀지는 못했습니다. 10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동생들과 어울리는 것도 자신 없었고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주지은)저희는 안과 기계를 만지다 보니까 나노미터까지 쪼개면서 엄청 세밀한 실습을 많이 하거든요. 거기에서 제가 제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던 것은 내가 왜 거기에 가 있는지를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요. 그 아이들하고 경쟁해서 내가 잘하려고 간 것도 아니고 그 아이들하고 어울리려고 간 것도 아니고 저는 이 남한에서 내 힘으로 정착하려고, 내 힘으로 내 아이를 벌어먹일 수 있으려고…애를 보고 그냥 가는 것 같아요.

-Closing-

지은 씨는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진 않아서 속상하긴 하지만 포기하거나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를 힘들어하는 탈북 학생들이 있다면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데요.

(주지은)코로나 시기가 벗어난다고 해서 우리한테 더 쉬운 조건이 주어질까요? 중간쯤에 못 선다고 해도 끝쪽에 서서라도 그냥.. 그냥 가보면 돼요. 코로나가 아니라 그냥 대면 수업으로 했어도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저보다 어린아이들, 다른 친구들한테 말해주고 싶은 거는 이게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면 다른 건 더 어려워요. 어차피 다 힘드니까 하던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생각하느냐는 저마다의 선택과 판단이죠. 현명하게 코로나 시대를 보내는 탈북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