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나라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 매년 3월에 새 학년이 시작됩니다. 유치원을 졸업한 어린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고등학생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한국의 2월은 졸업식과 입학식 그리고 새학년 준비로 분주하고 활기차고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공존합니다. 이런 감정! 학생들에게만 있을까요?
여기,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내딛는 학생들처럼 힘찬 발걸음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함경도 청년이 있습니다. 2023년이 시작되고 벌써 두번째 개인전을 펼치고 있는 청년 작가 안충국 씨인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봅니다.
(현장음)안녕하세요. 제가 잘 찾아왔네요. 여기가 카페 내에 있는 거에요? / 네. 카페에 있는 갤러리입니다. / 그럼 사람들이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이곳은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전시회장인데요. 얼핏 보면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카페만 있는 것 같지만 탁자와 의자를 찾아 카페 내를 조금만 둘러보면 벽에 걸린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전문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즐기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갤러리카페인 거죠.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는 조용한데요. 이곳은 여느 카페처럼 음악소리가 공간을 채웁니다. 편안하게 대화까지 가능한 전시회장에서 안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근황부터 확인해 봅니다.
(안충국)연말부터 1월 24일까지 전시를 했었고 그 다음에 지금 이 전시회를 하고 있어요. 지난번 전시는 '쉼'이라는 전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전시였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다른 관객들도 모두 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을 해서 '한 번쯤 쉬었다 가는 것도 좋겠다' 그런 위로를 해주고 싶어서 '쉼'이라는 단어를 선택을 했고 자기를 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로~

안충국 작가는 15살이 되던 해 한국에 입국했고 올해로 29살이 됐습니다. 북한에서부터 하던 미술을 한국에 와서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는데요. 사실적인 그림보다 추상화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안 작가는 처음부터 주제를 정해놓고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 간답니다. 그래서 남한에 정착한 한 함경도 청년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안충국)제가 살아오는 모든 부분이 저이고 (작품 속에) 저를 투영하는 것이 저의 미술이기 때문에 저라는 아이가 어떻게 지금 바뀌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를 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한 1년 반 정도를 전시회 진행 없이 지내다 보니까 제 시간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나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라는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나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무의식적으로 자주 원을 되게 많이 쓰는데 왜 쓸까라고 고민을 했었어요.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 함경도라는 고향에서 지내면서 '달'에 많이 노출됐었더라고요. '달'이는 느낌보다 저한테는 조명으로 더 다가왔어요. 한국생활을 하면서 수도권에서 지내 보면 밤에 조명이 엄청나게 강하지만 제가 살았던 함경도라는 시골은 조명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달이 주는 조명성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북한에는) 이런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했구나를 이제 와서 느꼈는데 그때는 없었기 때문에 더 달이 주는, 그 원이 주는 조명이 엄청 저한테 컸었던 것 같아요.
밤이 되면 한국의 밤거리가 각양각색의 조명들로 화려하고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그저 놀라워하기만 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불빛 속에서 어린 시절에 만난 큰 조명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작은 시골마을의 밤은 온 세상이 깜깜하게만 보였고 달빛이 유일한 조명이었기에 달이 더 크고 환하게 기억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안 작가는 달의 형상을 크게 표현했습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을 쳐다볼 때 무척이나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반면 한국에서 바라본 달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답니다. 달보다 더 환하게 밝은 빛들이 많으니까요. 북한 하늘에 뜬 달과 한국 하늘에 뜬 달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기에 안 작가는 그 차이에 대해 고민해 봤다는데요. 깊은 고민 끝에 해답을 찾았습니다.
(안충국)본다는 게 굉장히 나한테 큰 원천이 되지 않았나 생각돼요. 저라는 아이가 함경도라는 마을에서만 자랐으면 분명히 이런 그림이 안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함경도를 떠나서 중국을 거치면서 자극적인 감정들도 느끼고 한국에 와서 현대미술을 경험을 했을 때 처음에는 되게 의아하고 이상한 그림이 세상에 존재하네, 이게 어떻게 미술이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세계가 넓은 걸 알게 되고 뭔가를 시각적으로 '본다'는 개념보다는 벗어나서 '본다'는 것이 굉장히 큰 거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제가 변화해 온 저의 정체성에 있어서요. '본다'는 것에 있어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게 함경도라는 고향에서 두만강을 건넜을 때 제일 획기적이었던 게 이 조명이었거든요. 함경도에 있을 때는 그 조명이라는 게 색깔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몰랐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인공의 빛에서 나오는 그 색깔이 엄청나게 아름다웠다고 저는 생각 했어요. 그 감각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원래는 컬러를 잘 안 쓰는 편이었는데 요즘 약간 페인팅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미술대학 졸업 후 전문 화가로 세상에 나올 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해 왔다면 이제는 자신의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본다는 것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가늠하고 세상을 탐구하며 미래를 그려나가는 원천이 되니까요.
안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본다는 것에 있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르게 해석되고 느낌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안 작가의 화폭에는 단색의 작품으로 녹이 슨 못과 시멘트, 오래된 낙서 등이 담겼지만 지금은 분홍색, 노랑색, 주황색 등 다양한 색상과 선과 원이 공존하는데요. 그 차이를 단순히 예전보다 작가의 내면이 밝아진 것 같다고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안충국) 그런 거 보고 '밝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거 보고 '어둡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탈북자인 거를 알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어둡다'라고 말씀하시고 아닌 사람들은 되게 느낌 있네, 힘이 있네, 라는 말을 되게 많이 해요. 예전에 제가 거칠고 이런 작업을 했던 것은 과거의 장소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기 때문이었어요. 장소라는 것은 항상 변화하니까 못이 녹슬고 철가루가 녹슬고 이런 자연이 변화하는 그 과정을 넣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그런 식으로 거칠고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를 드러내면 되는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것으로 타협도 하고 내 개념도 같이 섞어서 할 줄 알아야 되는 시기가 된 거죠 지금은. 관객과 작가, 작품 이 세 가지가 의사소통이 됐을 때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의 개념도 중요하고 하지만 대중이랑 의사소통이 되려면 컬러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해야 되기 때문에 색깔들을 종종 사용을 하는데 그거는 저도 고민을 하는 부분이에요.
-Closing Music –
안 작가는 달라진 그림의 색깔은 작가의 변화, 정체성의 변화라고 설명하는데요. 생각과 관점의 변화가 태도를 바꾸고 달라진 태도는 정체성을 바꾸었다는 그의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