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은 졸업과 입학 준비로 분주한 때입니다. 끝마쳤다는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출발선에서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해야 하는데요. 새롭게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합니다. 새로운 걸 접할 땐 걱정과 기대가 늘 교차하니까요.
졸업식의 분위기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단순히 졸업장을 전하는 행사에서 벗어나, 선생님,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을 하는 학교도 있고 음악회, 타임캡슐 묻기, 교복 물려주기 등 의미를 담은 행사를 하며 졸업식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 발돋움했습니다.
졸업식 장은 곧 축제의 장! 학교의 교육 이념에 맞는 축하 마당이 펼쳐지는데요. 지난 2월 8일 목요일. 탈북청년과 탈북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의 7번째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다녀왔습니다.
(현장음-축하 연주)
이곳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
탈북민 연주가 윤설미 씨의 축하 연주로 졸업식이 시작됩니다. 설미 씨는 연주에 앞서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말을 남기는데요.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입니다.
(현장음-윤설미) 저도 10년 전에 탈북해서 올해로 (한국 정착) 10년 차가 됐는데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딱 10년 전의 제 모습인 것 같습니다.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순간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착이 진짜더라고요. 정착을 10년 했거든요.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지만 먹는 것, 입는 것, 걱정하지 않게 모든 걸 해결해 주셔서 또 수많은 귀한 인연들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졸업생 여러분들에게도 큰 기대와 뜻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윤설미 씨처럼 졸업식장엔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인생 선배로 함께 하는데요. 평소 탈북 학생들을 지원해 주는 후원자들도 마찬가집니다. 탈북청년과 탈북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 고등 과정 졸업식에는 더 많은 축하객이 함께하는데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졸업생들을 축하하고 새출발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현장음-축사)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남북사랑학교 졸업하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학교에서의 입결! 입학 결정으로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우리 모든 졸업생들이 잘되기를 축복합니다. / 이 자리를 빛내 주시는 여섯 분의 졸업생들이 있는데 우리 학생분들 한 분 한 분이 대학에 들어가서 학문을 열심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공부 잘하시기를 부탁드리고요.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학생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친구, 가족, 친척, 후원자 등 저마다의 역할은 다르지만 꽃다발과 선물까지 챙겨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모두들 기쁜 표정으로 졸업식을 바라보는데요. 졸업 가운과 학사모를 쓴 학생들을 바라보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인터뷰-한보름) 안녕하세요. 저는 남북사랑학교 전 교사 한보름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저한테 연락을 줬어요. 드디어 졸업하니까 선생님 와줬으면 좋겠다고 신나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왔습니다. 저는 수학 교사이기도 했지만 학생부 담당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아이들하고 좀 더 긴밀하게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기도 해서 많은 추억이 있는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에게) 초대받아 너무 기뻤습니다.

한보름 씨는 출산 이후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남북사랑학교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라고 하는데요. 바쁜 생활 속에서 학교를 잊고 살았는데 잊지 않고 졸업식에 초대해 준 제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자꾸만 목이 멥니다.
(인터뷰-한보름) 저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이 학교에 왔던 게 아니거든요. 일반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거기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서 다른 아이들을 찾았고 다행히 아름다운 곳에 와서 예쁜 아이들을 만났는데 사실 저희 아이들이 살아온 인생 때문에 아픔이 있는 친구들이 참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이 이 시간들을 버텨준 게 너무 감사하고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이제 겪어낼 시간들이 힘들겠지만 응원하는 마음도 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제 안에서 자꾸 올라오네요.
학교를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하고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을 예쁜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는 한보름 선생님.
6명의 졸업생 중 3명의 학생을 직접 가르쳤다며 제자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합니다.
(인터뷰-한보름) 졸업생 중에는 제가 가르친 친구가 딱 3명 있어요. ** 친구는 저랑 퇴근을 같이 하는 퇴근 메이트였거든요. 저 친구는 학사 일정이 끝나고 난 뒤에 보충 수업을 늘 받았었고, 그리고 저는 이제 퇴근 시간. 저희 가는 방향이 같아서 제가 임신한 내내 되게 살갑게 저를 많이 챙겨준 친구예요. 그리고 **이라는 친구는 제가 이 학교에 처음 와서 적응할 때 그 친구의 발랄함이 저한테는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가 돼서 다른 친구들을 사랑하기가 너무 좋은 계기가 됐던 친구이고요. 그리고 이제 좀 아픈 손가락인 친구가 있는데 **이라는 친구는 이 학교에서 적응을 잘못하고 지금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예전과 그렇게 다르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준 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보름 씨가 지금 사는 곳은 경기도 분당.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죠. 오늘은 비까지 내려서 오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는데요. 그럼에도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제자들의 졸업을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난다는 보름 씨의 이야기, 좀 더 들어봤습니다.
(인터뷰-한보름) 너무 고맙고 너무 기쁘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문화적으로 다룬 부분들이 있고 아무래도 어렸을 때 중국에서 생활한 친구들도 많고 북한에서 생활한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아무리 생활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 한계에 아이들이 부딪히면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경우들도 있고 그냥 다 놓고 가버리는 경우들을 왕왕 봤어요. 그래서 대학을 간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꽃길만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그곳에서 또 적응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고될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원하는 혹은 바라는 길들이 있으면 그 길을 기꺼이 가도 좋지만 언제나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인생에서 아주 귀한 배움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 선배들은 축하하는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지만 재학생들의 눈에는 졸업생들이 마냥 부럽습니다. 중고등 과정을 공부하는 것도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선배들은 이미 그 과정을 넘어섰으니까요. 그 마음을 후배들이 송사로 전하는데요. 잠시 들어보시죠.
(현장음-송사) 수월하지 않은 여건과 환경을 이겨내고 이번에 졸업하시는 여섯 분들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꿈을 위해 주, 야간으로 생업과 학업에 정진해 오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바쁜 생활 중에도 끝까지 학업에 정진해 오신 선배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랑스러운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열정을 본받아 저희들도 남북사랑학교에 자랑스러운 후배들이 되겠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입니다. 오늘 여섯 분을 보내는 마음은 아쉽지만 여섯 분의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멋진 출발의 박수를 보냅니다.
-Closing Music-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재학생의 송사에 졸업생 대표는 어떤 답사를 남길까요? 못다 한 졸업식 이야기와 새로운 출발선에 선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특별한 축하객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