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의미인데요. 새해, 새로운 계획을 확고히 세워놓고 이맘 때쯤 그 계획이 모두 잊혀졌다면, 그게 바로 작심삼일이죠. 실패를 그냥 체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이 함경도 청년은 ‘인생에 대한 태도’가 삶을 바꾼다고 믿는 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말이 아닌 그림에 담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 오늘의 주인공은 청년 화가, 안충국입니다.
(안충국)안녕하세요. 저는 추상화를 그리는 함경도인 청년 작가 안충국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 늘 ‘함경도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안충국 작가! 작가 혹은 화가로만 표현하지 않고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면 ‘탈북작가’, ‘탈북청년’보다 함경도인 청년작가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답니다.
화폭에 담은 그림 하나하나가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기에 ‘함경도인 청년 작가’라는 설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고향을 알리는게 관객들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자신이 작품에 사용하는 색과 재료 등 모든 표현이 북한 출신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사용하는 밝은 색에 대해서도 안 작가가 북한 출신이라는 걸 알면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안충국)그런 거 보고 '밝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어둡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탈북자인 것을 알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어둡다'라고 말씀하시고 아닌 사람들은 되게 느낌 있네, 힘이 있네… 그렇게 보세요. 그때 당시에는 내가 살아왔던 모든 걸 거기다 쓸어 넣으려고 했던, 그래서 파워가 넘친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특히 작가분들은 '너는 20대여서 패기가 넘치는구나'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나를 만들어가는 근원 중에 하나만 포인트로 내가 성장해 오면서 획기적이었거나 또 전환점이 됐던 부분을 갖고 대중과 소통하려면 색감적인 면이 중요해서 특히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내 심리가 밝아졌다기 보다 살다 보니 '나'라는 아이의 정체성이 바뀌더라고요. 내가 저 사람들이랑 의사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하고 고민을 하다 보니 개념과 함께 절충안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안충국 작가는 15살에 함경도를 떠나 2009년부터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사는 곳이 바뀌고 나이가 들고 학생이었던 신분이 졸업생에서 다시 화가로 바뀌면서 그의 그림도 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사실적인 회화였기에 한국에 와서 접한 현대미술이 어린아이의 낙서나 장난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감성에 집중하는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구상의 현대미술을 표현하기까지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풀어가며 사고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본다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는데요.
(안충국)저는 늘 말하지만 고향 생활이 어둡고 슬프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안충국이라는 아이의 관점에서 제가 살았던 곳이 북한이라고 말 안 하거든요. 교육적인 면에서는 북한의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내가 살았던 곳은 사실 우리가 아는 북한이랑은 좀 다른 곳이지 않았을까 생각 해요. / (리포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 (안충국)남한에서 생각하는 북한은 다 어둡다고 말을 하고 다 힘들다고 말하는데 제가 살았던 아주 작은 마을은 200가구 정도 사는 굉장히 작은 마을인데 저는 거기서 태어나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곳은 북한이었지만 북한의 체제나 사회가 나쁜 거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슬프거나 이런 거는 아니었거든요. 제가 작업을 하는 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고향이 얼마나 나한테 아름다웠는지를 얘기하기도 하고요…
안 작가는 북한의 체제와 정치는 비판하지만 자신의 친구, 가족, 이웃들을 한국 사람들에게 나쁘게 전하고 싶지는 않답니다. 그러나 애써 좋은 면만 전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데요. 안 작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봐야겠습니다.
(안충국)탈북자 이미지는 탈북자가 만들어가는 거예요. 물론 (북한의) 안 좋은 상황은 알려야겠지만 저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만 말할 수는 없어요. 북한은 어렵다, 힘들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나이에 왔으면 몰라도 저는 14살, 15살에 온 아이이기 때문에요. 그리고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리라는 그 아주 작은 마을은 북한을 대변 못해요. 아주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함경도, 그것도 아주 촌에서 온 아이입니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70년도의 배경을 가진 아이가 2천년도로 타임머신 타고 온다면 그게 바로 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70년대 생활이 힘들고 슬프고 아팠는지 몰라도 아닌 사람들도 있거든요. 기억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저라는 아이를 그냥 나로서 보여주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은 나를 만들어가는, 세상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주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봐요.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와서 '본다는 게, 안다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를 아는 것 같고요…
안 작가는 올해 29살됐는데요. 나이가 들수록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답니다. 적어도 5-60살은 되어야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북한과 한국,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답합니다. 북한에서 본 달이나 한국에서 본 달이나 똑같은 달이지만 달을 바라보는 느낌은 전혀 다르고 그 차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무엇을 알게 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데요.
(안충국)뭔가를 내가 아는 '앎'이 있잖아요. 그 '앎'이 나를 만들어 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지를 느꼈어요. 저도 두만강 하나 건너서 어떤 조명이라는 빛을 봤다는 그 앎 때문에 '이런 세계가 있네'라는 걸 느꼈거든요. 그 '본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본다'는 게 사람한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 정리하고 싶어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의 그 행위가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고 있고요…
한국에 대해 북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살아가는 태도와 정체성에 대한 생각도 변화시켰습니다.
-Closing Music –
(안충국)기존에는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던 것 같아요. 정체성이란 개념을 잘 모르고 있을 때였죠.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북한 사람 남한 사람 이렇게 나누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나뉘거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본질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는 모두를 대체해서 쓰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그냥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지 고민을 하는 게 내 삶을 잘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 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가치는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말하는 안 작가의 말이 더 다양한 그림으로 전해지기를 응원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