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여성의 날 특집, 더 나은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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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시위를 열었습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인데요. 유엔은 이날을 기념해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합니다. 오늘날의 여성 인권과 위상은 1908년, 1977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는데요. 이제 ‘여성의 날’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편견’을 넘어서 좀 더 평등한 세상으로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이야기, <여기는 서울>에서 담아봅니다.

(홀로코스트 전시회 현장, 탈북민 지현아)탈북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자유를 위해서, 인권을 위해서 탈북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각목으로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서 간질이라는 병이 생겼습니다. 사람 취급을 안 합니다. 개도 그렇게 안 때려요. 북한에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여기(남한)는 동물권도 있더라고요.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리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인데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중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강연회장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여성들의 인권유린이 심각하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북쪽에서 살 땐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됐기에 용기를 냈고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데요. 영화를 통해 북한 여성의 삶을 전한 탈북민 감독 김규민 씨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김규민)이 땅에서 살아보니까 '아~ 내가 살았던 저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어쩌면 인간 세상에서 존재하지 말았어야 될 일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런데 말로 하게 되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는가'하고 끝이에요. 그래서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요. 군에서 장애를 입고 제대한 상이군인과 딸을 책임져야 하는 거죠. 여자가 어쩔 수 없이… 최악의 길이지만 가족을 위해서 몸까지 팔면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사랑 때문에 죽을 수 밖에 그런 이야기다, '세상에 저렇게 살다가 죽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그겁니다.

상이군인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한 여인의 고달픈 삶을 담은 영화는 ‘고난의 행군’ 시절 황해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영화가 시작할 때 실제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자막까지 넣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엔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이 맞냐고 되묻는 사람이 매번 있다고 하네요. 그때마다 김 감독은 북한의 현실이라고 말해줍니다.

북한에서 허망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영화를 계속해서 찍겠다는 김규민 감독이 있다면 글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 탈북민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쿠웨이트 북한 건설노동자 출신의 탈북작가 림일 씨인데요. 책과 신문의 특별기고를 통해 북한의 삶, 북한 인권을 전합니다.

기사를 위해 만나본 탈북민이 100명을 훌쩍 넘는다는데요.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2019년, 33명의 탈북 남성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고 2021년 겨울엔 30명의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을까요? 림일 작가의 말입니다.

(림일)전문가적인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 제 시각으로 볼 때 한 직업에서 짧게는 한 5년 이상 10년, 20년씩 일하는 사람을 전문가로 보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위주로 먼저 찾았어요.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심이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 위주로 이제 선정을 했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30명의 탈북 여성들! 주부, 장사꾼, 요리사, 선전원, 보안원… 이들이 북한에서 했던 일도 다양했지만 남한에 와서 하는 일도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작가의 기억에 남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림일)제일 특이한 분은 서울 양천구청에서 주무관으로 일하는 주무관. 그 분이 공무원이면서도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고요. 딸을 키우면서 그렇게 열심히… 정말 감명 깊었어요. 또 마곡에서 안영자 면옥이라는 식당을 하고 있는 안영자 대표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웬만한 업종들이 다 문을 닫는데… 제가 한번 물어봤어요.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북한에서의 고생보다는 괜찮다고. 제주도에서 해녀를 하는 탈북민도 계시고요…

림일 작가는 이들에게 공통점이 찾았는데요. 바로 ‘엄마’라는 점입니다.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옵니다. 많은 여성들이 강을 건너면 중국에서는 강제 결혼을 하고 신분 없이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농촌으로 시집가면 농사를 지어야 했고 애정 없는 결혼이라도 아리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된 여성들은 강해졌습니다.

(림일) 100프로는 아니지만 과반의 공통점이 자기 자식들을 데려오는 거에요. 중국에서 낳은 자식들이요. 중국말을 하고 중국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려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왜 데려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니까 삶에 의지인 것 같아요. 또 자기가 낳은 새끼이기에 모성애로 데려오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탈북 여성들은 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한 브로커 비용을 악착같이 마련합니다. 덜 먹고 덜 쓰면서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면서요. 림일 작가는 탈북 여성들의 이런 생활력 속에 북한의 현실, 장마당이 녹아있다고 말합니다.

(림일)북한은 남자들이 돈은 못 벌어도 목에 힘주는 그런 사회입니다. 당국의 지침에 따라서 남자들은 시장에 출입할 수 없는데 여성들은 시집을 가면 사직하고 장사할 수 있죠. 그러니까 여자들은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도매를 하든 장사를 하는 거죠. 가족을 밥 먹여 살리는 여자들이 과반 정도 돼요. 그런 정신력과 노동력이 탈북하는 과정에도 적용됐고 또 한국에 와서도 그런 정신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림일 작가는 장마당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고 생활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북한 내에서 여성의 위상과 인권이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북한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한국에 사는 탈북 남성들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탈북여성들을 향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성과 관련해 우려를 표했는데요. 여성들의 신체를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성희롱, 성추행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26년 간 한국 생활을 해 온 탈북 선배로 림일 작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림일)내가 탈북 남성 선배로 후배들에게 얘기한다면 남한은 여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건 분명하고 그만큼 경제적인 활동도 충분히 더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성들을 존중해야 된다! 그리고 북한에서 가졌던 남존여비는 가급적 빨리 없애는 게 좋다. 그런 걸 얘기하고 싶죠

-Closing-

요즘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3.8절 행사를 보며 북한 일반 주민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한다는 림일 작가.

(림일)부인부 빈익빈이라고, 돈 문제에요. 돈이 있으면 여성들 기분 좋게 꽃다발 주고, 선물 줘서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유가 되고 생활이 되는 사람들, 돈이 되는 사람들은 여성들을 챙겨주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인대요. 그런데 일반 주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가 힘든 사람들인데 무슨 꽃다발이 생각나고 반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런 거예요. 이렇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은 이게 북한 주민의 인권입니다. 여성 인권 신장, 이런 거는 먼 나라 얘기에요.

하지만 미래는 어둡지 않습니다. 불평등하다, 옳지 않다,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 수록 변한다는 믿음을 갖고 오늘도 북한의 여성들을 위해 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