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꿈을 프로그래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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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 학교는 3월에 신학기가 시작됩니다. 3월부터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학교 숙제와의 씨름이 시작되는데요. 이제 대부분의 숙제는 컴퓨터로 작업해서 제출해야 합니다. 문서 작성은 물론 표 그리기, 동영상이나 그림 삽입 등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는 발표 자료 준비까지 학생 개개인의 컴퓨터 활용 능력은 필수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렵지 않게 이 작업들을 해냅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죠. 대부분의 업무가 컴퓨터를 다룰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컴퓨터 기술은 한글의 ‘가,나,다’ 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는 서울>에서는 컴퓨터의 가,나,다를 막 배우기 시작한 탈북민들을 만나봅니다.

(현장음)그거 하는데까지 해보고 그리고 나서 저 불러주세요. / 네. / 그다음에 문단 모양이 있어요. 문단 모양으로 가면 왼쪽 여백과 문단 아래 간격을 주는 게 있어요. / 아휴! / 다시 들어갈게요~~

이곳은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프라이밍사관학교.

프라이밍사관학교는 탈북민들에게 교육현장 혹은 직업 현장에서 겪는 언어나 문화적인 격차를 극복할 수 있게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탈북민 대안학교입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대안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등 중고등학교 학력 인증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데요. 프라이밍사관학교는 조금 다릅니다. 영어와 컴퓨터 등 보다 실질적인 부분에 중점을 둡니다. 프라이밍사관학교 김영숙 교장의 설명입니다.

(김영숙)저희가 2018년도부터 학교 수업을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컴퓨터에 대한 학생들의 필요가 많이 있더라고요. 자격증이 있어야 실효성이 있고 취업이나 학교에 가서도 응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컴퓨터 자격증반을 개설했고 지금까지 컴퓨터반의 인기가 제일 좋습니다. 이미 직업을 갖고 있어도 컴퓨터 자격증이 필요하면 다시 학교에 와서 공부하기도 해요. 그래서 학생들의 연령대가 좀 높은 편입니다. 컴퓨터는 워드나 엑셀, pdf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일주일에 세 번,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이 컴퓨터 수업 시간입니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컴퓨터활용능력 즉 문서 작성을 할 수 있는 워드와 회계 부분에서 계산 수식을 활용할 수 있는 엑셀 프로그램 그리고 발표 보고서 등을 만드는 파워포인트까지 기본적인 교육을 진행합니다.

(현장음)그다음에 장평, 자간이 있어요. 장평이 뭐냐면 쉽게 말해 키는 똑같아요. 옆으로 뚱뚱해졌다가 홀쭉해졌다가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다음 자간이라는 것은 글씨 크기는 그대로인데 나한테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붙었다 떨어졌다가… 그러니까 더 좁아지겠죠?

수업은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됩니다. 매번 수업 시간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연장된다고 하는데요. 컴퓨터 수업을 맡고 있는 김혜연 선생님은 학생들의 열정을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김혜연)여기 학생들이 굉장히 열정적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목표가 뚜렷하고요. 대학을 가야 한다거나 취업을 해야한다는 그 목표가 있기 때문에 배우는 데 굉장히 열정이 있고 제 입장에선 가리키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두 시간 수업이고 일주일에 세 번이지만 수업 시간이 정말 빨리 가고 그리고 항상 두 시간 안에 안 끝나요. 또 자격증이 코 앞에 있으면 수업시간이 더 길어지고요.

강의실엔 6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인원은 적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한데요. 똑같은 설명이 반복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질문 공세가 이어집니다.

선생님이 너무 바쁩니다. 다들 배우는 부분도, 진도도 다르기 때문이라는데요.

(김혜연)다 개인수업입니다. 나가는 과정도 다르고 진도도 다르고 학교에 온 시기도 다르니까요. 대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자격증을 따려고 방학 때 많이 와요. 그런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빨리빨리 받아들이니까 진짜 한 달 안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만큼 다 따게 해줘요. 반면 나이가 50대, 40대 그리고 학업과 멀어졌던 분들은 받아들이는 게 힘들잖아요. 그런 분들은 정말 무한 반복입니다. 오늘도 한 부분을 반복한 거예요. 오늘은 두 명의 학생을 함께 수업했는데요. 그 중 한 분은 배운 지 좀 됐지만 계속 잊어버리시는 분이고 한 분은 오늘 왔는데 연령이 젊으시니까 바로바로 받아들여요. 이런 경우는 수업을 같이하면 되지만 비슷한 경우가 많지는 않죠. 다른 쪽에서 설명해 주면 또 이쪽에서 막 끙끙 앓고 계시니까 제가 하는 수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으라고 해요. 집에서라도 아니면 다른 학생을 봐줄 때 (영상을) 볼 수 있잖아요. 가끔 수업 시간에 핸드폰으로 들리는 제 목소리가 쑥스럽지만… (웃음) 수업에 그게 더 효과적이니까요.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도 컴퓨터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결석이 잦아도 개인별로 수업을 받을 수 있어서 본인이 시간이 나면, 공부하러 나오는 겁니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교육비가 무료이기 때문인데요. 51살 김혜선 씨는 이런 지원 덕분에 뒤늦게라도 컴퓨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혜선 씨의 이야기 잠시 들어보시죠.

(김혜선)저는 친한 선배님이 소개해줬어요. 이미 여기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분인데, 모임에서 얘기하다가 제가 컴퓨터에 관심 있다니 소개해줬습니다. '좋은 학교가 있는데 너처럼 직장에 있는 사람도 무료로 수업을 제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얘기해 볼게' 이런 식으로 얘기가 되어 가지고 우연치 않게 시작했어요. 저는 하나원에 있을 때부터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기회가 안 돼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거든요.

혜선 씨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입니다. 고향에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녀에게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탈북했고 8년 동안 중국에서 살다가 45살이 되던 해, 2017년도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탈북민 초기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취업 교육과 정착 교육을 받으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탈북민들이 많은데요. 혜선 씨는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보다 일을 선택했습니다. 대형 상점에서 시간제로 일을 하면서 미용자격증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관련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크지 않았던 혜선 씨는 2년이 지난 뒤, 지하철 역사를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으로 취업을 하게 됐다는데요. 혜선 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선)우리 직장이 경쟁률이 보통 아니에요. 그냥 이력서만 내면 되는 게 아니라 소개서 내고 체력 검정도 거쳐야 해요. 여기서 아줌마들이 다 미끄러지더라고요. 그다음에 면접을 보고 한 4단계를 넘겨야 내가 합격증을 만져볼 수 있는데… 저한테 그래도 복이 있는지 합격되더라고요. (청소 일을) 하다 보니까 이 직장에 대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남들은 힘들다고 그만두지만 내가 이걸 하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직장도 재미있고요. 일도 매력 있고 즐거운 직장입니다.

-Closing Music –

청소일을 한지도 벌써 5년째.

혜선 씨는 이른 새벽에 출근하거나 밤늦게 출근해서 역사 안 곳곳을 청소합니다. 매일매일 쓰레기를 치우고 쓸고 닦는 일은 기본이죠. 지금까지는 퇴근하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기 바빴지만 올해부터는 짬짬이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그러면서 혜선 씨는 작지만,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혜선 씨의 꿈은 과연 뭘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