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책을 쓰며 마음을 치유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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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글을 쓰고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쳐 온 비영리 민간단체 FSI의 도움으로 책을 출판했는데요. 책을 낸 주인공 세 사람은 온라인 상에서 전 세계에 있는 후원자들과 만났습니다. 만남의 주제는 “Healing Their Hearts - 마음을 치유하다” 인데요. 탈북민 작가들은 5시간 넘는 온라인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까요? 책과 그들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온라인 중계) What part of North Korean culture you missed most? / 북한 문화 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거 아니면 그리운 거? / How can I say… It's hard to explain...

온라인 상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가장 먼저 마주한 주인공은 한수연 씨인데요. 그녀는 어머니와 상봉하는 과정을 담은 ‘Greenlight to Freedom’이라는 책 발간 소식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온라인 회의 특성상, 청중들은 문자로 직접 발표자에게 질문을 하는데요. 영어로 설명하기가 쉽진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50분 동안 최선을 다합니다.

모국어로 하기도 쉽지 않은 얘기를 영어로 전한 소감은 어떨까요? 온라인 만남을 모두 마친 뒤 수연 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수연)가장 기억에 남았던 질문은 북한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떤 도움을 줘야 되는지 묻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았어요. 저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 북한에 많은 쌀들을 보내줬고 여러 가지 물품들을 보내줘도 내가 북한에 있을 때는… 남쪽 동포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려서 우리에게 손 내밀고 있다고 배웠으니까요. 북한에서 살 때 한국에서 우리에게 쌀을 보내줬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지금 똑같이 쌀도 보내주고 필요한 물품들 보내준다 해도 과연 일반 주민들한테 갈까 싶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탈북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이 많이 잡혀 나가기 때문에 탈북 과정에서 잡혀 나가는 것만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지… 그렇게라도 한 두 명씩 넘어만 와도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시간으로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그 순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전하고 싶답니다. 탈북민들의 북송을 막아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도움이라고 말이죠.

수연 씨에 이어 두번째로 화면 앞에 앉은 사람은 한승희 씨입니다.

(한승희) '나는 자유를 찾아 삶을 찾아, 인권과 민주주의를 찾아 한국으로 간다'는 이 책의 원저자인 아버지가 고향 땅 북한을 떠나며 한 말입니다. / My father ~~

영어로 말하기가 자유롭지 못한 승희 씨가 한국말로 말하면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데요. 먼저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온라인 중계)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 등 다섯 가족은 결심이 선 아버지를 따라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없는 나라, 희망이 없는 나라, 북한을 등지고 1998년 7월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1년 뒤인 1999년 8월 아버지와 저, 동생은 중국 공안에 불법월경제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친척 도움으로 중국 공안에 돈을 주어 북송을 피할 수 있었고 아버지와 동생은 북한으로 호송됐습니다. 동생은 북한 감옥을 탈출하여 다시 중국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북한 감옥에서 3개월 동안 혹독한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북한 감옥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의 강제노동과 고문, 구타, 심문 등 인권유린이 이뤄졌습니다. 기계 설계사였던 아버지는 북송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 감옥에서 겪은 일을 수기로 남겼습니다. 중국 장백현 만장 변방대에서의 전기 고문과 구타, 심문 등 북한과 다를 바 없는 지독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기록하였습니다. 이 책은 저희 아버지가 첫 번째 북송된 1999년 8월부터 10월까지의 북한에서의 경험과 중국에서의 감옥 생활에 대하여 탈출 후 중국에서 직접 작성하신 것입니다.

승희 씨의 책은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담은 ‘노예 공화국 북조선 탈출’의 영문판 ‘My Father's North Korea Story : Walk to Freedom’ 인데요. 이 책은 한글, 일본어 그리고 영어까지 3개의 언어로 출판됐습니다. 승희 씨의 이야기, 들어보시죠.

(한승희)아버지가 북한에 북송됐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북한에 대한 내용들을 수기로 쓴 것인데, 그게 1차로 일본에서 출판이 됐고 19년 뒤에 2차로 한국에서 출판이 됐고 3년 만에 영어로 출판이 되는 거죠. 영어로 출판이 되면서 출판기념회 행사를 했었는데요.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됐고 어떤 내용이 담겨있고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글을 남기셨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는 하는 시간이었죠.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고 잊혀지지 않도록 승희 씨 아버지는 탈북 과정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글로 남겼습니다. 그 글을 한 일본 기자가 우연히 보게 됐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을 출판하기로 하고 원본을 복사해갔습니다. 승희 씨 가족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뒤 책을 출판하기로 했는데… 숨어있던 승희 씨의 가족은 다시 한 번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때 승희 씨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승희)아파트 문을 13명이 강제로 열고 들어와서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연행을 해갔어요. 그때 아버지, 어머니하고 저희 언니랑 동생이 있었고 또 그 외에 다른 사람들 두 명이 더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만 따로 데려가 물어본 거죠. 저 사람들 속에 자식들이 있느냐…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는 쟤네들 모른다, 처음 보는 애들이다. 남남이다…

과학자로 수배령이 내려진 승희 씨의 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덕분에 승희 씨와 남동생, 언니는 무사히 한국까지 올 수 있었는데요. 승희 씨는 이후 일본어 판으로 출판된 아버지의 책을 통해 부모님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답니다. 일본 기자가 ‘저자의 글’로 수기를 쓴 원작자에 대한 소식을 남긴 덕분인데요. 내용은 너무도 처참했습니다.

(한승희)후기에 보면 아버지가 보위부 고문을 많이 받으신 거예요. 고문을 엄청 받아서 치아가 다 빠지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됐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일본 기자가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3일 뒤에 북한으로 북송이 됐는데 외교관 차량에 아버지, 어머니를 태워 단동을 넘어서 북한으로 갔다고 되어 있어요. 북한에 가서도 중앙당 보위부로 바로 직송 됐고 거기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고 해요. 결국 아버지는 그 고문에 못 이겨서 3일 만에 돌아가셨다 이렇게 써 있어요. 그 책에…

2018년 일본어로 출판된 책이 나오기 전까지 승희 씨는 부모님 소식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막막한 마음이었지만 승희 씨는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랐습니다. 승희 씨는 2001년 남한에 도착한 뒤 26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28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고 한의학 공부를 마친 뒤 한의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결혼도 했고요.

누구보다 안정된 정착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승희 씨를 바꾼 것은 일본 기자가 쓴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2019년, 한국어로 책을 출간하고 이번엔 영어로 책을 출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 아버지가 원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승희)정말 보이지 않는 면모도 한번 봐라. 북한의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죄 없는 사람들이… 단지 북한을 나왔다는 것만으로 잡혀가고 죽어야 되는지, 왜 감시 당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지 말이죠. 저희 아버지는 인텔리이기도 하고 아주 유능한 과학자이고 기술자이기는 하지만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북한 입장에서 현상금을 주고 체포해 갔어야 될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그런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주민들을 굶어 죽지 않게 쌀 한 톨이라도 사가지고 먹이는 게 오히려 국가가 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진짜 모습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Closing-

온라인 상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무엇이냐… 승희 씨에게도 물었습니다. 앞에 수연 씨와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북한을 도와주면 되겠냐’ 라는 질문이었다고요. 대답도 같았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나왔지만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 북송되는 탈북민을 도와달라고요.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탈북 작가 엄영남 씨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