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둘은 차이가 있죠. 어떤 대상을 위한 말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하고 싶은 말’은 개인의 이익,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해야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당하지 못한 일을 경험할 때 개인이 느낀 부당함과 억울함은 ‘하고 싶은 말’에 해당되고 개인이 경험한 그 부당함이 여러 사람에게 해당되면 ‘해야 하는 말’이 되는 거죠.
북한을 떠나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하는 말’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평범하게 살다가 꼭 ‘해야 하는 말’을 영어로 번역해 책으로 출판한 탈북민 작가 3명이 온라인에서 전 세계 후원자들과 만났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담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번째 작가 엄영남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온라인 중계) Do you know which country~
전 세계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남을 갖게 된 세 번째 주인공, 엄영남 씨입니다. 영남 씨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을 통해 참여하게 되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번 만남은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통역 없이 말이죠.
온라인 모임을 끝낸 뒤 영남 씨와 따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엄영남)저는 2010년 북한에서 탈출해 그해 12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하나원을 거쳐 2011년도에 대한민국 사회에 나왔어요. 한국에서 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고 캐나다에서도 한 3년 정도 살았어요. 지금은 일반 회사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영남 씨는 탈북 당시 알파벳 정도만 알았답니다. 탈북민들에게 영어 교육을 하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는 영어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회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던 영남 씨는 어떻게 책을 출판하게 됐을까요.
(엄영남)한국에서 오래 정착하다 보니까 북한에 대한 저의 과거의 추억이나 기억들… 그런 부분이 점점 희미해지더라고요. 과거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했고요. 영어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까, 그리고 결국 용기를 낸 거예요. '영어로 책을 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출판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엄영남 씨의 책에는 10년 간의 군 복무 시절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책 제목은 ‘The Strongest Soldier of North Korea - 최강의 북한 군인’입니다.
(엄영남) 저는 공병이었어요. 아파트를 짓는 부대였는데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의류도 부족하고 다 부족하죠. 특히 장비 부족으로 인한 사고 같은 게 많이 일어나요. 제가 군 복무를 시작한 지 한 6년 차 되는 해인가, 저희 소대에서 사망사고가 하나 생겼는데 걔가 우물 파다 죽었거든요. 북한에는 수도 시설이 없으니까 상수도 같은 것도 자체로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희 중대에서 깨끗한 음료수를 자체로 해결한다고 우물을 팠는데 포크레인이 와서 파고 이런 게 아니라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괭이 같은 것으로 팠거든요. 당시가 겨울이 막 지날 때쯤 얼음이 녹는 그런 시기라서 땅을 수직으로 십여 미터 넘게 파고 들어갔는데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물을 파던 그 구덩이에서 그대로 생매장이 돼 버린 거죠. 비참한 이야기지만 제가 굳이 그 아픈 얘기를 책에 수록한 이유는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북한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영남 씨는 자신은 북한에서의 일들을 전달만 할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읽는 이들의 몫이라고 말합니다. 해석은 모두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딱 한 가지! 자신의 책을 읽은 모두에게 느껴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영남)언론이나 뉴스미디어에서 나오는 북한에 대한 핵심은 핵무기나 미사일이나 김정은 일가에 대해서만 나온단 말이에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북한군을 이루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이라는 얘기를 좀 하고 싶었던 거예요. 결국은 북한에 있는 100만에 가까운 군인들 자체도 김정은 정권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고 자유세계에서는 누구나 당연시되는 인권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그런 계기가 되고자 싶어서 제가 그런 글을 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책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이 수정 해야 했습니다.
(엄영남)북한만의 특성이 잘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단어들을, 예를 들면 병영의 지붕은 초막처럼 풀잎으로 되어 있고… 그런 느낌으로 제가 한글로 표현했는데 영어표현으로 natural clay라고 하니까 그 느낌이 안 오는 거예요. 그리고 '나가자 조선인민군'이라는 소제목이 하나 있는데 영어로 표현하면 'Go to the Army'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근데 '나가자 조선인민군'이라는 그 표현은 굉장히 강렬한 표현입니다. 그 부분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 느낌이 안 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좀 어려웠어요.
단어나 문장의 느낌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도 영어로 완벽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완성된 책은 영남 씨에게 단순한 책 이상의 큰 의미였습니다.
(엄영남) '책을 내 손으로 썼다'라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북한은 도서, 출판 그리고 모든 인쇄물은 철두철미하게 정부의 통제를 받는 나라입니다. 책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어마어마한 통제와 감시를 통해서 비로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책을 썼다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물론 남한이나 자유세계에서 의미는 다르지만 저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내 손으로 이런 책을 썼다는 것에 굉장히 큰 성취감 같은 것을 좀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 책이 출간이 됨으로 인해서 북한 건설 부대에서 있었던 일들, 노예 같은 삶… 그 처참한 이야기가 또 세상에 공개됨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좀 긍지도 가졌던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책을 준비한 영남 씨… 북한 군대의 이야기이지만 군인도 사람이듯, 북한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담았습니다. 항상 북한이라면 전 세계 사람들이 핵무기, 독재, 가난을 떠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습니다.
(엄영남)제 책에 군대 이야기만 쓴 거는 아니었고 제 어린 시절에 대한 어떤 추억 그런 것도 담겨있습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다 비슷하거든요. 저는 어릴 때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는 계속 친구들과 놀던 기억밖에 없어요. 저희 동네에 이렇게 조그만 강이 흘렀는데 워낙 날씨가 춥다 보니까 겨울에 땅땅 얼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스케이트나 외발기라고 썰매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외발기를 정말 친구들과 열심히 타고 연애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제 책에 나와 있거든요. 책이 나오면 북한을 바라봄에 있어서 독재 국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우리랑 별반 다름이 없다는 느낌을 독자들이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Closing-
영남 씨는 두 가지 당부를 하며 이번 만남을 정리했는데요. 한 가지는 책 속에 담긴 북한의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알려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한가지는 더 많은 탈북민들이 자신처럼 또 이날 모임에 참여한 탈북민 작가 수연 씨와 승희 씨처럼 본인들의 이야기를 전해달라는 것! 책으로든 영화로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