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가 쌓이고 현명해 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저)절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뭔가에 대해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깨달음의 길은 여러 갈래 있는데 스스로 찾아가는 길도 있고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는 길도 있다고요. 두 가지 길 모두, 내가 가만있으면 만날 수 없는 길 같습니다.
저에게는 어렵기만 한 ‘깨달음’을 많지 않은 나이에 깨우친 탈북 청년이 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작품에 담아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봅니다.
(전시회 현장) (관람객)뭔가 더 와 닿는게 있는 것 같아요. / (전주영) 감사합니다. / (관람객) 뭔가 더 쓸쓸해 보인다고 할까.. / (전주영) 네~ / (관람객) 어두운 색깔 같은데.. 색감도 약간.. 의도한 게 있으세요? / (전주영) 네, 맞아요~
지난 3월 19일부터 다가오는 4월 15일까지 한달 가량, 성동구의 한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도 12월에 홍익대학교를 졸업했고요. 올해38살된 전주영입니다. 제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개인전으로서 지난 세월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부분들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통의 부분에 대해서 고찰하면서 ‘그곳엔 없고 이곳엔 있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주제를 잡았습니다.
‘그곳은’ 주영 씨가 살았던 북한을 말하고 ‘이곳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을 의미하는데요. 주영 씨는 그곳과 이곳에서의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전주영 씨는 청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30살이 되던 2014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올해로 한국 정착 8년째. 북한에서는 운전병이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이룬 거죠. 그래서 주영 씨의 삶에 있어서 북한에는 없고 한국엔 있는 것이 ‘꿈’이냐 물었는데 아니랍니다. 흔히 생각하는 자유나 인권도 아니라고 하는데요. 과연 뭘까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삶에서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사라지고 다양한 장르의 매체들과 sns 등으로 교류를 하고 있어요. 그 소통이 현재의 시국에 맞게 사라지고 또 새롭게 나타나는데요. 그런 현상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장르가 아니라 다양하게 설치도 하고 평면 작업도 했어요. 관객에게 소통이라는 이미지를 더 강조하고 싶어서 장르를 다양하게 넣었습니다.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전주영 씨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소통’이랍니다. 처음부터 소통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습니다. 초기엔 주영 씨도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 살아가면서 느낀 ‘정체성의 혼란’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학교 졸업 전에 탈북민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는데 당시 전주영 작가의 그림에는 남북이라는 공간 가운데 걸쳐진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까마치 전시회 중) (전주영)강 건너 마을이라고 하면, 저의 출신 성분을 듣고 나면 바로 사람들이 인지하더라고요. 아~ 북한을 그리신 거냐고… 맞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강을 건너서 바라보는 듯한 저의 이미지를 강 가운데에 세워 놨고요. / (관람객) 이쪽은 두만강이에요? / (전주영) 네, 맞아요. 두만강도 여러가지로 표현했는데요. 강이라는 게 깊이의 차이가 있잖아요.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있는데 그 깊은 곳에 제가 서 있는 걸 표현하며 지금 사회에서 제가 부딪치고 있는 고민들을 강조하고 싶었고요. 여기는 얕으면서.. / (관람객) 경계의.. / (전주영) 네, 맞아요!
해석은 그림을 본 관객들의 몫이지만 작가의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주영 씨는 다양한 뜻으로 작품이 해석되길 바랬기에 말을 많이 아꼈습니다. ‘탈북 작가’라는 수식어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 그 반대의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먼저 말하는 게 개인 프라이버시..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감정이 없는 소통도 많아지고 일상에서 서로 보고 듣고 느낀 그런 기억들이 점점 축소돼 가는 그런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저 자신도 언제부터인가 그것에 익숙해져서 누군가가 나의 깊숙한 부분을 접근할 때 그 영역은 저의 사생활이라서… 제가 이런 식으로 많이 강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나의 성장과정과 나의 삶 그리고 아직까지 소통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북한의 현실 그리고 그 반대인 남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의 삶, 이런 것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터놓고 솔직해 지면 되는 걸까요? 주영 씨는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주영)설치작업을 전시 한 구간에 하나 했고 드로잉도 3점 정도 전시를 했고 평면 작업으로는 10점을 전시를 했어요. 고정적인 패턴이 들어간 작품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것 같지만 여러 가지의 의미를 주기 위해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요.
회화를 전공한 주영 씨가 변화를 시도한 노력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데요.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색감의 다양성이었습니다. 과거 전시회에서는 몽환적이면서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 강했다면 이번엔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밝았고 어두운 색상 속에서도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작품에 대한 애착도 상당했는데요. 처음 시도해본 설치작업에 대한 전주영 작가의 설명, 직접 들어보시죠.
(전주영) 디스토피아라고 제목을 달았어요. 사전적으로 봤을 때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허구로 보여준다는 의미인데요. 저는 이 영어 단어가 작업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존재했던 부정적인 내면들 그리고 제가 살아왔던 그런 삶에서 부정적인 면들을 어떻게 하면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대중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 작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좀 더 관객에게 소통의 의미를 좀 전달하자 이런 취지에서 제가 조형물을 제작했어요.
-Closing-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있는 투명 아크릴 조형물의 크기는 가로 폭이 약 3미터 정도. 압도적인 크기와 작품을 비추는 파란색 조명이 신비감을 더합니다. 조형물은 한자로 ‘우물 정’, 영어로 샵(#)이라 불리는 기호와 동그라미로 구성됐습니다. 악보에서 올림표를 의미하던 ‘샵’은 요즘은 ‘해시태그’라 불립니다. 인터넷에서 게시물의 분류와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 주요 검색어 앞에 붙이는 기호입니다. 말하자면 ‘주목해야하는 주제를 표시하는 표식’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건 또 어떤 의미일까요? 전주영 작가의 남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