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자기 삶은 스스로 사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도 있고 형제, 자매, 친구, 이웃, 동료 등 많은 사람들과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니까요.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 일부분을 공유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솔직한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진심이 담긴 편지가 될 수도 있고 또 사진과 영상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삶을 공유하고 계신가요?
여기, 그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한 청년이 있습니다. 201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올해 첫 개인전을 열게 된 탈북 화가 전주영 씨인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전주영) 안녕하세요. 올해38살 된 전주영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부분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통의 부분에 대해 고찰하면서 '그곳엔 없고 이곳엔 있다'라는 제목을 이번 개인전 주제로 잡았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매체들과 sns 등으로 교류를 하는 현실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 작가는 그곳, 그러니까 북한에는 없고 이곳, 즉 한국에는 있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역시 ‘소통’입니다.
(전주영) 북한에서의 소통은 어떻고 남한에서의 소통은 어떻다, 이거를 기본 모티브로 해서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그게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었는데 관객들이 저의 작품을 보고 남북 간의 차이의 소통보다는 전주영이라는 개인과 관객이 갖는 생각들의 소통으로 많이들 이해하시고 공감대를 가지시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이번 핵심적인, 제가 말하고 싶었던 그런 소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어려워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뜻이 오해 없이 서로 통하여 오고 가는 것’ 그러니까 바로 ‘소통’입니다. 같은 말을 사용한다고 해도 북한은 직설적으로, 남한에서는 좀 돌려서 표현하는 등 그 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 탈북 청년이 취업을 위해 면접을 봤는데 인사 담당자가 ‘추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했답니다. 이 청년은 며칠 동안 기다렸는데 아무 연락이 없자 결국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담당자로부터 ‘이미 채용이 완료됐다’는 말을 듣게 됐고 ‘그럼 왜 연락주겠다고 했냐’고 따졌다는데요. 알고 보니 남한의 면접에서 ‘나중에 연락주겠다’는 말은 탈락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그 자리에서 좋고 싫음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탈북민들의 직설적인 화법에 당황스럽고 화를 내는 건지… 조언을 구하는 건지… 탈북민들의 의도를 쉽게 알기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소통’이라는 주제를 다룬 전주영 작가는 남북 사람들의 ‘소통’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전 작가는 오히려 직설적인 북한에서 소통이 더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전주영) 소통이라 하게 되면 '너와 나의 공감대를 갖는 게 소통이다' 이렇게 말을 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의 소통은 그런 소통이 아니에요. 매체라든가 행위적인 부분들이 많이 제한되다 보니 소통이라는 개념이 많이 왜곡되고 소통에 있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분들이 남한과 많은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의 소통이 북한보다는 더 단순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전주영 씨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는데요. 처음으로 설치작업을 시도한 겁니다. 투명 아크릴로 만든 가로 3미터 정도의 조형물인데요. 한자로 ‘우물 정’, 영어로 샵(#)이라 불리는 기호와 동그라미가 합쳐져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파란색 조명으로 신비감을 더한 조형물에 대해 전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주영) 샵(#)은 원래 기호로서 숫자의 앞부분에 쓰이는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댓글이나 내가 공유하고 싶은 사진 이미지 등의 제목을 달 때 공유의 첫 부분에 샵(#)을 넣고 쓰는 그런 시대가 왔어요. 그 말은 곧, (샵이) 인식의 의미와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싶은 도구들로 쓰지 않나 싶은데요. 이런 의미를 담고 싶어서 샵(#)을 이 조형물에 넣었어요. 여기에 좀 더 의미를 담고자 많은 형태를 머릿속에서 생각했어요. 생각이라든가 그런 의미를 넣을 때 점점점 같은 줄임표 아니면 동그라미 같은 그런 기호를 많이 넣잖아요? 그런 데에서 모티브를 받아서 이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해시태그’라 불리는 샵(#)은 인터넷에서 게시물의 분류와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주요 검색어 앞에 붙이는 기호로 일종의 ‘표식’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오늘 제가 소개하는 전주영 씨의 전시회 관련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탈북작가, #소통, 이런 식으로 표시하는 것이죠.
전 작가에게 그림 설명도 좀 들어볼까요? 먼저 ‘밤하늘’이라는 작품입니다.
(전주영)제가 북한에서 탈북하는 과정에 2박 3일을 밖에서 잤어요. 추운 겨울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나에게 유난히도 밝게 비치는 그런 별들이 보였어요. ‘내가 가는 그 목적 목적지는 내가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가까운 장소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고 그 이후 한국에서 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때의 생각을,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어두운 하늘에 쏟아질 듯 하얀 별이 그려진 밤하늘이라는 작품은 분명 밤이 배경이지만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데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별 때문일까요, 아니면 작가가 희망으로 바라본 그날의 밤하늘을 옮겼기 때문일까요.
전반적으로 전시된 작품들에서 확연히 느껴지는 건 색의 변화였습니다.
(전주영) 홍익대학교 졸업하면서 제작했던 그때의 하늘과 지금의 하늘이 차이점이 있다면 밝기의 차인데 아마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저의 삶에 있어서 뭔가 전환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는 그런 무의식 속에서 꺼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그때보다 지금의 저의 개인적인 내면이 많이 밝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의 무의식성과 그런 색깔에만 집중해서 그렸던 것 같아요.
주영 씨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지냈을 땐 작품 대부분이 어둡고 칙칙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2-3년 사이 그림은 밝은 느낌부터 따뜻한 느낌까지 색이 다양해졌고 자신만의 색깔도 찾았습니다.
(전주영) 대한민국 국민들도 누구나 다 그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의 삶이 외적으로 달라졌을 때, 삶은 현저하게 대조되거든요. 예를 들면 한국에서 살다가 외국으로 이민 가신 분들을 보게 되면 본래 모습을 버리고 제2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존을 위해 나의 정체성을 버려야 하나... 이런 고민의 시절을 많이 갖는다고 해요. 여기 한국 사람들도요. 그래서 그런 정체성의 방황이 저희랑 많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북한 출신인데 한국에서 살면서 그 출신을 배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어요. 점차 살면서 내가 북한에 있었던 모습들을 버린다고 해서 내가 아닌 게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이렇게 제가 언제부터인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Closing-
주영 씨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하는데요. 이런 계획을 위해 잠깐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대학에 다시 진학해 물리치료학을 배우는 건데요. 화가와는 너무도 다른 길이죠? 하지만 작품 활동을 위해서는 경제적 부분이 뒷받침 되어야하고 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택과 결정 역시 그곳엔 없고 이곳엔 있기에 가능하다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전주영 작가… 앞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응원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