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한국에선 그동안 중단됐었던 공연들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덕분에 예술인들은 물론 시민들의 문화 갈증이 해소되고 있는 요즘인데요. 남북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들도 마찬가집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남북 통합문화센터에서는 6월 7일부터 11일까지 남북 주민이 함께하는 ‘남북통합문화 콘텐츠 확산 주간’을 운영하며 풍성한 문화예술 행사를 선보였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는 셋째 날 현장에 다녀왔는데요. ‘문화가 있는 점심’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위치에서 음악 공연을 하는 ‘버스킹’인데요.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서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심장에 남는 사람
남북 통합문화센터 1층 통로에 색소폰과 아코디언 연주가 어우러진 ‘심장에 남는 사람’이 울려 퍼집니다. 벌써 세 번째 곡이네요. 연주자들의 연주실력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연주자 두 사람 모두 탈북민입니다. 자칭 ‘함흥 놀새’ 문성광 씨는 색소폰을 연주하고 ‘청진 놀새’ 류지원 씨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요. 두 놀새의 멋진 연주에 사람들은 감상에 푹 빠졌습니다. 북한 음악가들이 많이 연주한다는 ‘아무르강의 물결’에 이어 ‘백만 송이 장미’가 연주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잠시 감상해 보시죠.
(현장음) 백만 송이 장미
문성광 씨는 최고사령부 군악단 출신이고 류지원 씨는 도 보위부 산하 선전대 출신입니다. 북한에서도 악기를 전공한 두 사람이지만 한국에 와서 연주하는 방법이나 자세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연주한다는 말일까요? 문성광 씨의 설명입니다.
(인터뷰-문성광) 이북에서는 예술가들의 기술이 다 좋지만 죽은 음악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자유롭게 못 놀게 해요. 악보를 주고 그 악보 대로만 해야 된단 말이죠. 한 음만 틀려도 안 돼요. 그런데 여기, 한국에는 자유로운 게 음악죠.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하고 같은 노래라도 내가 다르게 연주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딱 그대로 해야 된다는 법이 없단 말이죠. 즉흥적으로 (음악을) 해야 하는데 북에서는 그걸 용납 안 하는 거지요. 그래서 북의 음악은 딱 체계적으로 짜인 음악이고 한국 음악은 좀 자유로운 음악,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성광 씨의 말처럼 음악의 힘과 매력은 자유로움에서 가장 빛이 납니다. 특히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곳에서 펼치는 버스킹 공연은 공연장이 아닌 거리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코앞에서 보고 함께 호응하며 연주할 수 있기에 유명 음악가도, 무명의 음악가도 버스킹에 매료되는데요. 류지원 씨는 버스킹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힘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네요.
(류지원) 버스킹은 잘 들어주시고 호응 잘해주시면 더 신나서 할 것 같아요. 만약에 실수하더라도 내가 만회를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게 관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들이 응원해주신다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원 씨는 요즘 남한 전역을 돌며 공연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제약도 많고 공연의 기회도 적었지만 한국에서는 원 없이 공연장을 누비며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는데요. 전국을 누비며 더 열심히, 더 신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원 씨는 무역선 선원을 통해 밀반입된 ‘CD록화기’를 구입했고 주파수 차단이 안 된 기계 덕분에 우연히 남한 방송을 듣게 됐답니다. 남한 노래를 더 듣고 싶어서 자주 남한 방송을 청취했는데 그 일이 발각된 겁니다. 당시 지원 씨의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는데, 건강도 살피지 않고 딸을 살리기 위해 책방으로 뛰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었던 지원 씨의 아버지는 딸을 살리겠다고 전 재산을 들여 지원 씨의 죄명을 바꿨고 그 덕에 지원 씨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씨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지원 씨는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류지원) 거기(북한)서 남한 노래 불러서 문제가 됐고 감옥에 잡혀갔다가 죽다가 살았어요. 사실 아버님이 힘을 쓰셔서 제가 겨우 살아났거든요. 그런데 그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서 제가 살아났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죠. / (리포터) 연주가로서 또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지금의 삶, 어떠신가요? / (류지원) 너무 행복하고요. 좀 더 열심히 살아서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수 있다면 내 딸이 참 잘살고 있구나… 이런 걸 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가수로서도 좀 더 사람들이 사랑해주고 노래 부르면 박수 쳐줄 수 있는 그만한 기량을 가질 수 있게 좀 더 노력해서 열심히 살고 싶어요.
진심은 통하는 법! 지원 씨의 진심이 담긴 연주곡은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올해 63살 된 실향민 자녀, 김옥분 씨는 연신 최고라고 말하는데요. 버스킹 공연을 본 소감,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저희가 자주 접하지 못했던 게 아코디언이잖아요. 들으니까 뭔가가 감회가 있다고 할까. 정서적으로 좀 안정감이 있다. 약간 슬프기도 했어요. 기쁘기도 하고. 아까 아코디언 하시는 분이 천상의 재회인가 그 노래 불렀을 때도 그렇고 아코디언 연주하는데 뭔가가 뭉클해서.. 내 마음을 건드린 거 같아요. 좀 기쁘기도 하고 신도 나고… / (리포터) 선생님의 모든 감정을 건드려준 두 연주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남겨주세요. / (김옥분)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우리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좋아서 아까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요. 막 기쁘고 슬프기도 하고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어요.
김옥분 씨는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분명한 한 마디는 전했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남북한 사람에 대한 구분 없이 모두가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무대 위에서 아코디언만 연주했다는 류지원 씨! 한국에 와서는 전국을 누비며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마음껏 노래도 부르고 있다는데요. 이번 공연에서도 선보였습니다.
-Closing Music –
(현장음) 류지원의 노래 – 천상재회
‘버스킹’ 공연답게 관객들에게 즉흥적으로 신청곡을 받고 2-3곡을 짧게 들려주는데요. 그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노래, 김옥분 씨가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는 ‘천상재회’입니다. 한국에 와서 제2의 삶을 살게 해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고마움이 지원 씨의 목소리에 녹아있기 때문 아닐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