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불 앞에서 요리하고 뭔가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요즘인데요. 함께 먹을 사람이 있으면 수고로움을 감수하지만 혼자 사는 경우엔 귀찮아서 대충 먹거나 끼니를 건너 뛰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때, 어르신들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들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주 지역에서 사는 탈북민들이 모여 만든 여원봉사단은 매달 셋째 주 일요일, 반찬 나눔 봉사를 나서는데요. 지난 6월 19일에 있었던 봉사 현장을 <여기는 서울>에서 찾아가 봤습니다.
(현장음) 반찬 만드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는 냄새가 가득한 이곳은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지하입니다. 아파트 지하는 보통 주차장이나 창고로 이용하는데요. 이곳은 조금 다르네요.
지하에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오늘의 주인공들이 모여 있습니다. 익숙한 얼굴, 여원봉사단 백춘숙 회장도 보이는데요.
(인터뷰-백춘숙) 이웃 주민들한테 다가갈 수 있는 게 봉사밖에 없더라고요. 어르신들의 경우 거동이 불편하면 (음식을) 해 드시기도 불편하시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들이 있는 분들이 계셔서 반찬은 꼭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반찬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빵이나 생필품 등 후원품을 나누는 나눔 봉사를 합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점심을 대접하는 봉사도 하고 있고요. 독거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주변을 청소하는 봉사 등 이미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에 반찬 봉사까지 더해졌습니다.
제공하는 반찬은 4가지! 어떤 기준으로 종류가 정해질까요?
(인터뷰-백춘숙) 어르신들에게 전화해서 뭐 드시고 싶냐고 여쭤봐요.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데 말씀해 주세요. 그걸 도합해서 고기는 기본 메뉴로 넣어요. 그리고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시금치나 생채 같은 나물도 꼭 넣어요.
6월의 반찬은 전날 담근 열무김치와 멸치볶음, 시금치 나물 그리고 돼지고기 김치찜입니다. 입맛 돋우는 맛있는 반찬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은 총 20명이랍니다. 경쟁률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반찬을 받게 되는 걸까요, 백 회장에게 들어봤습니다.
(인터뷰-백춘숙) 공개 모집해요. 너도나도 다 달라고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회장이 알아서 주고 싶은 사람 주면 ‘지 좋은 사람만 준다’고 하기 때문에 전체 게시판에 공지를 올리고 있어요. ‘반찬이 필요한 세대들은 사무실에 접수하세요. 75세 이상 기초생활 수급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라고요. 안내문을 올리면 오셔서 저희 단체에 등록을 하시죠. / (리포터) 경쟁률이 상당할 것 같은데 대상자를 어떻게 선별하세요? / (백춘숙) 왔다가 못 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에 또다시 할 때 넣어드릴게요’라고 보내죠. ‘아우~ 해주세요’하고 억지 부리는 분들은 별로 없어요. 마감됐다고 하면 알겠다고 가시니까요.
4 종류의 반찬을 20인분 이상 준비하려면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재료를 준비하고 나르는 사람, 음식을 만드는 사람, 조리된 음식을 반찬통에 넣는 사람,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사람까지. 봉사자 12명이 휴일을 반납하고 함께합니다.
(현장음) 맛있는 냄새나. 맛있는 냄새나? 야들야들하니까 맛있네…
백춘숙 회장과 함께 최종적으로 간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윤정숙 씨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마늘과 소금 등 꼭 필요한 양념을 넣고 버무리는데요. 양이 많다 보니 골고루 양념을 섞는데도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힘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반찬 만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네요. 정숙 씨는 여원봉사단에 오늘 처음 왔답니다. 탈북민이 아닌 남한 사람인데요, 아무리 봐도 첫날답지 않게 익숙합니다.
(윤정숙) 뭐 하는 단체인가 궁금해서 와봤어요. / (백춘숙) 막 들이대 아주. (웃음) / (윤정숙) 막 들이대서는 안 되는데… (웃음) 저는 음식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요 원래. 식당에서 음식을 했어요. 한 80명 정도의 음식을요. 제가 좀 잘 어울려요. / (리포터) 우연한 기회에 함께 한 오늘 이 자리가 어땠나요? / (윤정숙) 좋은 취지의 자리고 시간이 되면 참석하고 싶은 자리입니다. 주민들한테도 너무 잘 하고…
윤정숙 씨처럼 우연한 인연으로 여원봉사단과 인연을 맺는 봉사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또 한 명의 남한 사람, 김나현 봉사자도 있습니다.
(인터뷰-김나현)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 일반 직장인이고요 김나현이라고 해요. 백 회장님 페이스북에서 봉사하시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저도 봉사도 해야 하고 아이 둘이 다 커서 시간도 있었거든요. 직장인이라 매일 시간이 있지는 않아서 주말에 할 수 있는 봉사를 찾고 있었는데 백 회장님이 올려주신 페이스북을 보고 왔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이분들이 탈북민들이라는 건 모르고 왔어요. 와서 다가갈 수 있을까 가까이 갈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었는데 친절하시더라고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은 옛말입니다. 왼손과 오른손,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좋은 일은 적극적으로 알려야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답니다.
여원봉사단 역시 인터넷을 통해 활동 모습을 전하는데요.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정된 봉사에 대해 안내하고 그때그때 함께 할 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습니다. 그 안내를 보고 시간이 되는 봉사자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죠. 본업에 지장이 없어야 진심으로, 또 오래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이런 원칙 덕분에 코로나 시국에도 멈춤 없이 봉사활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나현 씨 같은 새로운 봉사자들이 참여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요.
(인터뷰-김나현) 이게 기다려지는 이제 봉사가 된 거예요. 한 달에 한 번이고 주말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봉사가 이게 있으니까 굉장히 좋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봉사 못 했었는데 여원봉사단은 계속하고 계시더라고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 일정을 올려주시는 걸 계속 보고 ‘회장님, 제가 직장에 있는 시간이라 못하는데 이날은 돼요. 이날은 가도 될까요’ 이렇게 해서 저는 지금 봉사에 나오고 있어요.
나현 씨가 탈북민들이 주축이 된 여원봉사단과 반찬 봉사를 함께 하게 된 또 다른 이유! 백 회장이 전하는 이 말 때문입니다.
(인터뷰-백춘숙)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봉사밖에 없어요. 우리가 문 두드린다고 해서 옆집에서 문 열어요? 안 열잖아요. 빈손으로 가면 절대 안 열어요. 제가 한 발 한 발 다가간 이유가 ‘옆집에서 뭘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두드리면 열어요. 지금은 진짜 어르신들이 내 엄마보다 더 반가워할 정도로 맨발 벗고 나오셔요. 좀 넉넉하게… 작게 하면 마음이 좀 불편해 내가 적게 쓰고 적게 먹어도 뭐나 넉넉하게 해서 가는 손들이 가볍지 않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봉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Closing Music –
봉사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일을 말하는데요. 여원봉사단은 그 의미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나누며 남한 주민, 북한 주민 구분 없이 어울릴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는 사람들… 그렇다면 반찬 봉사는 행복 나눔이 되는 셈이겠죠? 행복을 나누는 반찬 봉사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