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26일은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중복'입니다. 아침 기온이 25도 안팎이고 한낮엔 33-34도를 웃돌면서 남한 전역이 뜨거운데요. 폭염에 지친 시민들을 위해 각 지역마다 창발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한 여름 나기를 돕고 있습니다. 시원한 물을 넣어두고 지나는 사람 누구나 꺼내 마실 수 있도록 산책로 한가운데에 냉장고를 설치한 지역도 있고요. 버스정류장에 평균 5도 정도 열을 낮춰주는 의자를 설치한 지역도 있습니다. 횡단보도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곳곳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에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데요. 개인들도 폭염을 피하는 저마다의 비법이 있죠. 특별한 방법으로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탈북민들이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에서 만나봤습니다.
(현장음)종이컵이 없어요. 종이컵이. / 더 안 해도 돼요? / 떡이 다 들어간 것 같아요. / 들어갔다고? / 어. / 수박 3개? / 하나만 더 들어가면 돼요.
아파트 한 켠에 이동식 그늘막이 설치되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과일에 떡에 여러가지 먹거리를 준비하는 모습인데요.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사실, 한국에선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양식을 챙겨 먹는데요. 저마다 선호하는 보양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원기 회복에 좋은 보양 음식으로 메기를 먹는 사람도 있고요.
(일반인 인터뷰)여름에는 이열치열이라고. / 매콤하면서도 칼칼한 음식을 먹으면 땀도 쫙 나고. 시원한 느낌도 들면서 힘이 솟아서 좋아요. / 그래서 추어탕이나 메기 매운탕을 초복, 중복, 말복 중에 꼭 한번은 챙겨 먹고 있는데요. 국수나 수제비를 넣으면 아이도 같이 먹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 (딸)메기라고 해서 이상할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까 생각보다 맛있었고요. 냄새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국물은 좀 매웠지만 수제비랑 같이 먹으니까 먹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다음에는 뜨거운 국물 대신 다른 음식으로 먹었으면 좋겠어요.
문어나 낙지, 미꾸라지 혹은 장어나 오리를 보양식으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한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보양식은 바로 각종 한약재와 함께 닭을 푹 삶아 내는 삼계탕! 그런데 점점 물가가 올라서 삼계탕 한 그릇 가격도 부담이 됩니다. 서울에서는 삼계탕 한 그릇에 10달러가 훌쩍 넘는데요. 전복이라도 한 마리 들어가면 20달러 이상입니다. 집에서 직접 해 먹으려 해도 재료 값 역시 만만치 않아 복날 대표 보양식인 삼계탕은 금계탕이 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경우 삼계탕을 직접 해 먹기도 또 사 먹기도 쉽지 않아진 거죠.
그래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파주의 한 아파트에 탈북민들이 모였습니다. 파주 지역의 탈북민 봉사단체 여원봉사단은 무더위에 입맛이 없고 물가상승에 먹거리를 줄이는 어르신들을 위해 삼계탕을 준비하고 120여 명의 어르신들을 초대했는데요.
(현장음)여기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 네. / 이분한테 신분증 보여주시고. / 네.
붐비지 않도록 12시부터 시간을 조금씩 순차적으로 배정한 덕분에 자리는 여유 있습니다. 집에 가서 드시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경우 냄비를 챙겨오면 그 안에 담아 드리기도 하네요.
(현장음)여기 앉으세요. / 네 / 앉으셔. 여기 빨리 깔아드려. / 삼계탕 더! / 냄비 안 가져오셨죠?
자리 잡은 어르신들 앞에 차례차례 삼계탕 한 그릇이 배달됩니다. 김치와 곁들일 간식으로 쉼떡, 수박, 과자까지 차려져 어르신들 입맛을 사로잡는데요. 꽤 많아 보이는 음식들이 싹싹 비워집니다.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과 잠시 얘기 나눠봤는데요. 먼저 70살 허연옥 어르신입니다. 6.25 전쟁 당시 개성에서 피난 나온 실향민이라 탈북민들에게 더 정이 간다고 하는데요.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여원봉사단 백춘숙 회장이 살고 있고 인연이 깊다고 합니다.
(인터뷰-허연옥)꾸러미 같은 거랑 빵 같은 거, 이런 거를 봉사단에서 나눠주더라고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진짜 열심히, 정말 잘 하더라고요. 나는 육식을 별로 안 좋아하고 야채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어울리면 (고기를) 조금 먹는 거죠. / (리포터)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드시면 더 맛있어요? / (허연옥)맛있죠. 더 맛있죠. 같이 먹으면 좋잖아요.
무더위로 사라졌던 입맛에는 맛있는 음식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여럿이 함께 모여 먹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양 손을 써가며 닭살을 바르고 맛있게 드시는 또 다른 어르신은 83살, 김월순 할머니입니다.
(인터뷰-김월순)그 멀리 타국에서 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워요. 사실 나도 그쪽 사람이거든요. 장단. 한 발만 넘어가면 북한인데 거기는 아직 들어가지를 못해요. 그런데 세상에, 여기 와서 작년 여름에 처음 탈북민 봉사단 회장을 만났어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까 너무 고맙고 반갑더라고요. 이 동네에 온 지 지금 십 년이 다 되가는데 작년에 처음 만났어요. 그동안 왜 못 만났을까 하고 내가 말했지. 그랬더니 나를 정말 부모처럼, 형제처럼 그렇게 챙겨요. 높은 데 올라가면 이렇게 붙들고 가고 또 화장실에 가면 꼭 붙들어서 가고 너무 잘해줘요. 하다 못해 시원한 냉수를 떠가지고 나와도 꼭 나더러 나오라 그래요. 그러니까 너무 고맙지.
그늘막 아래에 풍기는 냄새는 삼계탕뿐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정이 넘치는 사람 냄새가 가득합니다.
(현장음)맛있게 드세요. /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많이 드세요. / 삼계탕 하나! / 삼계탕 하나 주세요. 여기 있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삼계탕 한 그릇을 싹 비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봉사자들은 힘을 얻습니다.
(탈북민 봉사자)오늘 봉사자들간의 호흡도 좋았고 어르신들도 맛있게 드시고 간다고 해서 기분이 짱 좋아요. (웃음소리)
덕분에 120마리가 넘는 삼계탕이 배식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되는데요. 마지막에 도착한 분이 계십니다. 거의 끝나가는 모습에 잠시 앉기를 망설이는데요. 봉사자들은 재빨리 어르신을 자리로 안내하고 음식을 준비합니다.
(현장음)많다고 그러셔서. / 아니야. 넉넉히 담아. 마지막이니까…
어느 정도 그릇을 비워갈 때쯤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오늘 먹는 삼계탕이 주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인터뷰-박경호)저는 이 앞에 310동에 사는 박경호라고 합니다. 내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뇌수술을 받았는데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요. 기억력이 거의 없다가 요즘 조금씩 되살아나는 편입니다. 오늘은 나와서 식사하라고 해서 나왔어요. 이 더운 여름에 정말 좋은 보약이에요. 육체의 보약도 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보약!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거, 그게 제일 소중한 거지. / (리포터) 지금 보약 한 사발씩 다 드시고 계신 거네요? (서로 웃음)
-Closing Music –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보양 음식을 꼭 챙겼습니다. 그런데 모든 보양 음식은 만드는 과정에서 손이 참 많이 갑니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 관리를 하려면 좋은 영양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이 함께 곁들여지고, 그러면서 좋은 기운이 전해져 보양 음식이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무더위에도 뜨거운 삼계탕을 만들어 낸 탈북민 봉사자들의 건강한 여름나기 비법도 들어봤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전해드립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