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 전역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밤사이 최저 기온이 25도로 유지되는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도 많은데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무더위 쉼터를 마련해 주민들이 건강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복지관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요. 어르신들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은 봉사 단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남북 여성들이 함께 모여 경기도 파주에서 활동하는 여원봉사단은 매해 여름마다 지역 어르신들께 보양식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하필 봉사하는 날, 비가 왔습니다. 음식 마련하기도 음식을 나르기도 수월치 않았는데요. 그 현장,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인서트1: (현장음) 이쪽으로 오세요, 어르신.. / 전화번호 불러 주세요. / 010 5356~ / 이모님, 여기 와서 앉으셔. / 1년에 한 번씩 하는구나. / 네. 1년에 한 번이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삼계탕 봉사! 아침 일찍부터 삶기 시작한 닭이 푹 익어 그 냄새가 기분 좋게 코끝을 자극할 즈음, 어르신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방역 수칙에 따라 체온을 측정하고 신분증과 전화번호로 명단을 확인한 후 준비된 자리에 앉습니다. 먼저 도착한 분들은 떡과 과일을 드시면서 삼계탕이 나오길 기다리네요. 빈 접시를 보고 봉사자들이 다시 바빠집니다.
인서트2: (현장음) 할머니, 저기가 비어. 저기! / 바나나 한 접시 더~ / 바나나 여기 있어요.
어느새 자리가 꽉 찹니다. 혹여 어르신들이 곁들인 음식으로 배를 채울까 백춘숙 회장의 마음이 바쁩니다.
인서트3: (백춘숙 회장) 비가 오니까 여기 올라서겠습니다. 보이시죠? 이제는 거의 오신 것 같으니까 인사 말씀 드릴게요. 여원봉사단 회장 백춘숙 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힘든 시기를 이겨내라고 1년에 한번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데요. 맛있게들 드시고 끝으로, 종이쪽지들을 받으셨죠? 음식들을 맛있게 드시고 가실 때 간식 꾸러미 하나씩을 드릴 거에요. 그러니까 그 표를 잘 챙기시고 받아 가시면 돼요. 맛있게 드세요~
백 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이번엔 가장 끝에 있던 봉사자들이 바빠집니다. 드디어 대형 솥에서 팔팔 끓고 있는 닭을 꺼내 그릇에 담아낼 시간이니까요.
인서트4: (현장음) 조심해 조심! 미끄러워! / 오라 여기.. 저기 한 사람.. 쟁반 따라다녀~ / 한 사람 이쪽으로 앉으세요.
화구 뒤쪽에 봉사자 2명이 보입니다. 다가가 보니 설거지를 하고 있네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 때 종이컵이나 접시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원봉사단에서는 쓰레기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는 분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바로 여원봉사단의 감사를 맡고 있는 장영숙 씨입니다.
인서트5: (리포터) 안녕하세요. / (장영숙)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리포터) 오늘은 한 켠에 피해 계세요. 뭐 하세요, 지금? / (장영숙) 제가 다리 골절 수술을 해서 핀을 박았거든요. 그래서 앉아서 설거지 담당하려고 나서고 있어요. / (리포터) 수술까지 했는데 쉬시죠… / (장영숙) 안 나오면 안 돼요. 이게 얼마나 영광이에요. 그래도 자기가 (봉사)할 능력이 있으면 해야죠. 열심히 좀 도와주려고 나와서 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긍지감도 있고요.
깨끗이 씻은 그릇에 푹 삶아진 닭과 국물을 담습니다. 그 위에 송송 썬 대파 한 움큼을 올리면 대접할 준비가 끝나죠. 쟁반 위로 삼계탕 그릇 6개가 채워지면 봉사자가 가장 안쪽부터 순서대로 어르신들 앞에 놓습니다.
인서트6: (현장음) 뼈다귀는 어디다 둬요. / 그냥 여기다 두세요. 어차피 들어서 버리면 되니까. 맛있게 드세요. /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많이 드세요. / 삼계탕 하나! / 삼계탕 하나 주세요~
삼계탕 한 그릇을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십니다. 혹여 먹다가 남은 건 싸가려고 그릇을 챙겨나온 할머니도 계셨는데요.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냅니다.
예전 같으면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섰겠지만 코로나비루스로 여럿이 모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또 얼른 자리를 비워줘야 다른 사람들도 앉을 수 있으니까요.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어르신들! 덕분에 준비된 삼계탕이 빠른 속도로 소진됩니다. 어르신들의 식사 시간이 봉사자들에겐 잠깐의 휴식 시간인데요.
인서트7: (리포터) 제가 좀 놀라서 온 게 지금 펄펄 끓는 삼계탕을! 물론 고무장갑은 끼셨지만 그냥 막 나르더라고요. 오늘 어떤 역할 맡으셨어요? / (이현순) 저는 이제 삼계탕 담당! 닭 담당!
솥에서 펄펄 끓는 닭을 거침없이 건져내던 봉사자 이현순 씨입니다. 현순 씨는 평안북도를 떠나 2007년에 한국에 왔는데요. 여원봉사단과 함께 한지는 이제 5년 됐답니다. 음식 장사를 하다 보니 불을 다루는 주방 일이 익숙하다는데요. 그래도 이 더운 여름날, 화구 앞을 지키는 일은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인서트8: (이현순) 저희 부모와 같은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부모들은 다 북한에게 계시고 형제자매가 (북한에) 있다 보니까 조금이나마 한국에서 외롭게 사시는 우리 어르신들을 위해서 봉사하고자 하는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까 뜨겁지도 않네요, 손이. (웃음) / (리포터) 보니까 어제 닭 손질부터 하셨더라고요. / (이현순) 어제는 제가 못 했어요. 가게 일이 너무 바빠서 못 해서, 오늘 나와서 조금이나마 몸을 다해서 일하고 들어가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하는 거예요.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는 일은 어렵지만 설거지는 가능하기에 봉사하러 나왔다는 장영숙 씨, 식당을 운영하느라 평일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만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나 봉사 규모가 클 땐 최대한 봉사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는 이현순 씨까지! 이런 분들이 있기에 여원봉사단이 8년 동안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나 봅니다.
인서트9: (백춘숙) 다른 것은 저기, 쓰레기봉투에 넣고 음식물은 바구니에 담고! 다 드셨어요?
다들 서둘러 드시고 집으로 들어가셔서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담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가장 늦게 도착하셨던 임근옥 어르신에게 짧게 몇 마디 들어봤습니다.
인서트9: (임근옥) 이 동네 어르신들(에게) 삼계탕 대접하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활동 많이 기대되고요. 봉사단에서 제공해 준 삼계탕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명단에 있는 어르신들께 삼계탕을 모두 대접하고 배웅을 마친 뒤, 봉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비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웃는 얼굴로 함께 해준 단원들에게 백춘숙 회장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네요.
인서트10: (백춘숙) 올해 여원봉사단 회원님들이 뭉친 힘이 있었기에 성황리에 행사를 마무리 잘하는 것 같아 너무도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함께해 준 모든 봉사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수와 환호소리) 맛있게들 드시고요. 귀가길 사고 없이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 맛있게 드십시요~
-Closing-
삼계탕 150마리 중 130마리를 대접하고 남은 20마리를 봉사자 30여 명이 사이좋게 나눠 먹습니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도 삼계탕 봉사가 끝날 때쯤 멈추네요.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고, 애썼다고 봉사자들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빗속에서 먹은 삼계탕 한 그릇! 어르신들에겐 잊지 못할 한 끼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사 작성: 자유아시아방송 김인선 기자,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