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나흘간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남한에서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을 여행지를 소개하는 정보들도 쏟아져 나오는데요. '여행'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행복하고 신이 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누구는 일상을 떠나 낯선 장소,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설레고 누구에겐 온전한 휴식이 되기도 하고요. 누구에겐 그저 떠나는 것에 의미가 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려면 손전화 보조배터리, 옷, 세면도구 등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은데요. 달랑 주사위 2개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부산부터 평양까지 말입니다.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소모임 ‘비링크드’ 가 만든 ‘한반도 마블’은 주사위를 굴려 종이판 위의 한반도를 여행하는 게임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현장음) 나부터.. / 1, 2, 3, 4, 5, 6, 7, 8, 9, 10. 인천. 인천 주세요. / 3원입니다. / 3원이요.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대로 게임판 위의 말을 움직여 도착하는 도시의 땅을 구입하기도 하고 다른 참가자가 구매한 땅을 지나가면 이용료를 내기도 하면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사람이 이기는 남한의 보드게임 ‘부루마블’. ‘한반도 마블’도 유사합니다.
‘한반도 마블’ 게임판 위의 지역은 한국과 북한의 지역을 선정했고 남북한 지역 각각 13곳씩, 총 26개 지역과 3개의 산, 한라산, 금강산, 백두산을 담았습니다. 지역 카드 뒷면에는 지역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담아 남북한 도시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데요. 지역 카드를 읽고 기억할 수 있도록 퀴즈 카드도 준비했습니다.
(윤혜민) 어! 더블. 여덟 칸. 하나, 둘, 셋, 넷. 어라? 하나, 둘, 셋, 넷. / 아~ 재난재해. / 재난재해 나오면 이제. / 그렇죠 재난재해에서 나오려면 퀴즈를 풀어야 하고요. / 퀴즈를 내겠습니다. ‘낙동강은 땡땡 지방 전역을 흐릅니다. 땡땡 지방은 소백산맥의 남쪽 지방을 일컬으며 현재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와 북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이 흐르는 땡땡 지방은 어디일까요?’ / 네? (웃음소리) 이게 뭐야? / 경상남도랑 경상북도를 우리나라 말로. / 아~ 영남! / 오~~
남북한 지역을 알아가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게임을 만들고 또 해보면서 ‘비링크드’ 구성원들은 북한의 지역 이름과 특성 이상의 것을 배웠습니다. 바로 낯설고 무관심했던 것들에 대한 반성이었는데요. 윤혜민 씨의 얘깁니다.
(윤혜민) 저희가 만든 ‘한반도 마블’이 누군가에게는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그 가능성이 저는 개인적으로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과 성인 그 경계의 나이에서 내가 이렇게 사회적 가치를 담은 보드게임을 팀원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저 개인적으로는 가장 뿌듯했고, 이 게임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특히 저희와 같은 청년들이 낯설다고 느껴지는 것이나 무관심하다고 느껴지는 걸 수시로 돌아보고 환기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갖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희 게임이 거창하지만, 타인과 사회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게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종이판에 올라갈 북한 도시는 그야말로 ‘공부’와 ‘자료조사’를 통해 선정했습니다. 북한 도시는 기껏해야 ‘평양’과 ‘개성’ 정도만 알고 있었고 언론에 주로 소개되는 지역일수록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됐기 때문입니다. 김현지 씨와 장진호 씨의 말입니다.
(김현지) 뉴스 매체로도 많이 접할 수 있던 지역들이었으니까 개성, 평양은 알고 있었어요. 또 8개 도의 이름 정도만 대략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안에 어떤 도시들이 있지 어떤 행정 구역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 지식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 (장진호) 저도 사실 거의 몰랐던 것 같아요. 평양, 개성 아니면 역사책에 나오는 고구려의 수도, 발해의 수도 정도만 알았지, 지금 북한에 어떤 곳이 있고 어디서 어떤 산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나마 알고 있었던 게 ‘핵실험장이 어디에 만들어졌다더라’, ‘어디서 몇 차 핵실험을 했더라’ 이런 걸로만 접했던 것 같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개성, 평양, 신의주는 알아도 강계, 평성, 해주, 남포, 무산 같은 북한 도시는 잘 모릅니다. 북한 청취자들도 종이판 위의 남한 도시 중 단양, 진도, 구미, 전주는 잘 모르시죠? ‘비링크드’ 구성원들에게 ‘한반도 마블’을 만들면서 접해본 북한 도시 중 가보고 싶은 곳을 물었습니다.
(김윤지) 저는 서포항 유적이 기억에 남아요. 거기가 옛날 구석기, 청동기,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발견됐다고 해요. 남북한은 그때는 분단되지 않았으니 그때의 유적을 같이 발굴하고 역사 공부하는 것에는 모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인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요. 그래서 북한지역 조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서포항 유적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윤혜민) 북한 지역을 조사하면서 강계에 포도술공장이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거기서 북한을 너무 무관심하게 바라봤던 게 느껴졌어요. 남한 쪽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없는데 이런 멋진 곳이 있었어? 하면서 나중에 북한에 갈 수 있으면 강계 포도술공장 가서 한번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장진호) 저는 고려시대나 발해시대 유적들이 인상 깊었어요. 사실 북한 하면 완전히 다른 나라이고 우리랑 전혀 연관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유적지들을 보면 우리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구나, 지금은 분단되어 있지만 100년 전만 해도 같은 나라였다는 게 실감 나서 인상 깊게 보였습니다. / (김현지) 남포에 있는 와우도 공원이 있는데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와우도 공원이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두었더라고요 생태계를 주로 한 관광지 같아 보였어요. 우리가 한강 공원 가듯이 와우도 공원도 나중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돗자리 펴고 맛있는 것 먹고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관광지로서 우리가 와우도 공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대로 북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남한 지역도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또래들과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윤혜민 씨와 김현지 씨의 이야깁니다.
(윤혜민) 자료를 수집하면서 강계 지역의 포도술공장을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강계에 있는 내 또래의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전주 한옥마을에 데려가서 같이 막걸리를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김현지) 강릉은 저희 ‘한반도 마블’에도 있는 장소입니다. 자연 경광도 많이 어우러져 있고 맛있는 것들도 많아서 자연 휴양지로서 방문할 수 있는 곳이 강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추가로 하나 더 얘기해보자면. 북한의 와우도 공원도 섬 휴양지니까 비슷하게 가평 쪽에 있는 남이섬에 가서 다양한 활동들 해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청년들은 ‘한반도 마블’을 통해 북한지역과 남한지역에서 공통점을 찾고 언젠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그리고 청취자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도 있다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장진호) ‘한반도 마블’을 위해 조사를 하고 공부하다 보니까 우리가 다르게 살고 있지만 같은 한민족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지금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목소리로만 소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언젠가 상황이 좋아져서 같이 웃고 떠들고 저희가 만든 ‘한반도 마블’도 같이 하는 사이가 오면 좋을 것 같아요. / (김윤지) 정말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같이 재미있게 게임하고 같이 그냥 옆에 있는 친구처럼 수다 떨고 같이 고민 얘기하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찾아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현지) 들리는 제 목소리가 듣고 있는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것들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가 저기 사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여 주면 좋을 것 같아요.
-Closing Music –
(윤혜민) 제가 살고 있는 남한 사회나 북한 사회나 어느 곳에나 편견은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낯설게 보니까 선입견도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분명히, 저희가 만든 보드 게임도 그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서로가 갖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저희가 서로의 편입견을 깨고 그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자유롭게 어딘가를 누비면서 이야기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주사위 2개로 하는 게임 판도 좋지만, 게임 대신 실제로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도 분명 오겠죠. 그날을 기대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