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남한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화요일, 첫 출근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여럿이 모일 수 없었지만 올해는 인원 제한이 풀리면서 3년 만에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게 됐네요.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요. 그중 영화관람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올 추석, 개봉 영화 중 1위는 ‘공조 2’인데요. 현빈이 북한 형사로 나오는 영화죠.
남한에서는 영화 소재가 북한과 관련된 것도 있고 또 출연자가 탈북민이나 북한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북한 영화 자체는 거의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통 연구자들이 공부를 위해 찾아 보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요. 최근 제가 다녀온 이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북한 영화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현장음)참석하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남북통합문화센터 김보민 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유니 시네마 프로그램은 북한 영화를 매개로 남북한 사회, 문화를 읽어보며 남북 주민이 모두 공감할 기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이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 상영할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된 <한 녀학생의 일기>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곧바로 영화 해설, 관객 대화를 진행하오니 끝까지 자리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영화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은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대강당. 100개 이상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지만 사전 접수한 30명의 인원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석자들은 입구에 있는 명단에 사인하고, 앉고 싶은 자리에 자유롭게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요. 담당자의 간략한 전달 사항이 전해지고 영화가 곧바로 시작됩니다.
(현장음-영화)내가 아홉 살 때 누군가 나에게 네 소원이 무엇인가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내가 '우린 왜 우린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할머니가 땅 냄새를 좋아한다고 그런다고 말해주곤 하였다.
북한의 청취자분들에게는 익숙한 영화죠? 북한에서 관객800만 명을 모았다는 화제작 <한 녀학생의 일기> 입니다. 이 영화는 유니 시네마 모임에서 6번째로 상영되는 북한 영화라고 하는데요. 그동안은 어떤 영화들이 상영됐을까요?
(인터뷰-김보민)지난 4월 30일부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유니시네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2016년도 작품 '우리집 이야기'였는데요. 북한 영화에 나타나는 엄마와 가족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두 번째 영화는 2012년도 작품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였고 세 번째 영화는 '도시처녀 시집와요'였습니다. 이후로 '불가사리'에 이어 '한 녀학생의 일기'를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설풍경', '소방대원들'까지 두 편의 영화가 더 계획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선정할 때 최대한 다양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주인공들이 가진 직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어요. 특히 이번 상영작인 한 녀학생의 일기의 경우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저희 행사에서 꼭 상영하고 싶어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한 녀학생의 일기>의 주인공 수련은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지만 과학 탐구를 위해 집에 거의 오지 않는 과학자 아버지와 남편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과학원 사서 어머니로 인해 집안 사정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수련은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가정에 소홀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크죠.
(현장음-영화)사랑은 서로 주고받을수록 깊어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철면피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지워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나중엔 과학자로서 조국을 위한 사명감과 인생관이 담긴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자신 역시 이과 대학에 입학하며 부모님을 이어 과학연구사업에 한 생을 바쳐갈 결의를 굳게 다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는데요.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사회자도 있고 해설자도 있습니다. 해설자는 황해북도 출신의 김규민 감독이네요.
(현장음)유니시네마 진행을 맡은 진행자 이경미입니다. 반갑습니다. / 유니시네마에서 해설을 맡은 영화 감독 김규민입니다. 반갑습니다. / 저희가 매달 북한 영화를 만나고 있습니다. 북한 영화를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보시면서 북한의 사회와 문화상은 어떤지 함께 느껴보는 자리입니다. 영화 보시면서 궁금했던 것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영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영화 속에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들, 그 사회는 왜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지 우리가 다 알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볼까 합니다. 이 자리 함께하시면서 나 이거 궁금했다고 하시는 분들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해 주세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 ‘크로싱’의 조연출을 맡으며 영화판에 뛰어든 김규민 감독은 북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북한 출신이지만 남한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 감독은 북한 영화를 어떻게 소개할까요?
(현장음-김규민)북한은 한국과 달라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선전과 선동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 당국 또는 북한의 상황에 따라서 영화가 기획되고 제작되고 배급되는 시스템입니다. 남한처럼 감독이나 어떤 피디, 어떤 작가 스스로가 좋아서 만드는 영화가 아니고 대부분 기획해서 만들어져, 기획적으로 배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의 가장 장점이라고 해야 될 게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선전 선동의 부분만 빼면 사실 국내 영화하고 전혀 다른 거 없거든요. '한 녀학생의 일기'의 경우 대사가 기존 영화들보다는 굉장히 자연스러워졌어요. 특히 남자들 대사가 과장되지 않고 그냥 부드럽게 잘 나오게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많이 진보된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영화의 주인공 수련은 북한의 신세대 여고생으로 그려지는데요. 소위 말해 ‘요즘 애들’인 거죠. 웃음도 많고 꿈도 많지만 마음 속 깊이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고 있습니다. 수련의 아버지는 과학기술개발을 위해 연구에만 매진하느라 가정을 등한시하고 집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요.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아빠가 환영받지 못하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또 진로를 고민하는 수련의 모습은 남한의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은데요. 그래서일까요? 이 영화는 국제무대에서도 선보여졌습니다. 2006년 제60회 프랑스 칸 영화제를 시작으로 캐나다 토론토의 릴 아시아 국제영화제와 호주 멜버른 국제영화제 그리고 프랑스 실루엣 영화제를 거쳐서 2009년에는 이란 파질 영화제까지 전 세계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요. 하지만 김규민 감독은 영화 안에 내포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장음-김규민)북한에서는 영화를 단체로 가서 보기 때문에 관객의 숫자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보고요. 그리고 이 영화가 제작된 상황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하는 게, 이 영화가 제작되는 2000년 초반부터 남한에서 북한으로 엄청난 쌀이 들어가면서 북한에서 소위 식량난이 안정되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김정일이 가장 집중한 게 국제사회와의 어떤 교류입니다. 거기에 밑밥이 된 게 바로 이 영화죠. 영화제에서 시상해서 상영된 게 아니고요. 초청 상영작으로 상영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북한이 그때 당시에 국제사회와 미국, 일본, 유럽과 좀 더 돈독하게 나아가려는, 좋게 말하면 진보된 사회로, 발전된 사회로 갈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그니까 그런 시기에 이 영화를 사용한 거죠
-Closing Music –
김 감독의 설명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집중하는데요. 가장 주목된 부분은 수련의 아버지 직업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수련의 아버지는 미래를 알려면 과학을 알아야 한다며 수련에게 자신처럼 과학자의 길을 가라고 강권하는데요. 이런 내용을 영화로 담은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다음 시간에 김 감독의 설명으로 알려드릴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