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최근 들어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 수가 코로나비루스 유행 이전인 2019년 수준의 80-90%까지 회복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코로나비루스의 직격탄을 맞으며 관람객의 수가 급감했던 극장가가 활기를 띠고 있는데요. 다음 달 5일,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예정돼 있어 영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영화를 통해 낯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넓은 세계를 알게 되고 주인공을 통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사고의 영역을 넓히게 됩니다. 그게 바로 영화의 매력이죠. 이념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소재가 다소 무거워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영화의 장점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대강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 30여 명이 모여 북한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토론하는 데요. 그들의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저희가 매달 북한 영화를 만나고 있습니다. 북한 영화를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보면서 북한의 사회와 문화상은 어떤지, 느껴보고 감독님과 영화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영화 속에 숨겨 있었던 이야기들, 그 사회에서 왜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지 우리가 다 알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볼까 합니다. 감독님, 오늘 봤던 영화 제목이 뭐였죠? / 한 녀학생의 일기요. / 개인적으로 현실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북한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 상영이 끝나고 사회자와 함께 황해북도 출신의 김규민 감독이 영화를 본 관람객들 앞에 자리를 잡습니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 ‘크로싱’의 조연출을 맡으며 영화판에 뛰어든 김 감독은 북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요. 오늘은 본인의 영화 얘기가 아니라 북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김규민 감독은 지난 4월부터 한 달에 한번, 북한 영화 해설자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데요. 영화 제작 당시 북한의 시대상과 제작 배경, 제작 의도를 설명합니다. 특히 김 감독은 영화 속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북한 주민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북한 영화 해설자로 이 자리에 함께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답니다.
(인터뷰-김규민)북한 영화라는 것 자체가 선전 선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잖아요.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을 모르고 그냥 본다면 어쩌면 우리가 실제 봐야 할 것보다는 보지 말아야 할 것에 더 치중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자는 것이 관객과의 대화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감독은, 북한 영화는 ‘저 영화가 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녀학생의 일기’의 경우 과학 탐구를 위해 집에 거의 오지 않는 과학자 아버지와 남편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과학원 사서 어머니를 둔 주인공 수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련은 처음엔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과학자로서 조국을 위한 사명감과 인생관이 담긴 아버지를 존경하게 됩니다.
(현장음-영화)아버지, 어머니가 걸어온 한 생의 길. 그것은 정의였어요. 헌신이었어요. 세월이 끝까지 아버지 장군님을 받들려는 열렬한 심장이었어요.
수련 역시 과학연구사업에 한 생을 바쳐가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는데요. 이런 수련의 변화가 바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랍니다. 현장에서 김규민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장음-김규민)만약에 북한의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면 절대로 영화로 안 만들었어요. 북한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대학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요. 출신 성분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돼요. 그렇게 가는 대학인데 그걸 과학자로 간다? 영화에서도 나오는데요. 아빠가 30년 가까이 성공하지 못하고 밑에서 고생하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이 굉장히 적었어요. 그리고 북한에서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갈 수 있는 대학이 기초과학 분야입니다. 물리, 수학, 화학 학과는 그 부분에서 똑똑하기만 하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머지 학과는 절대로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출신 성분을 바꾸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기초과학 대학으로 갔죠. 2천년대 초반의 북한은 핵 개발을 한창 할 때예요. 핵 개발하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과학자 아닙니까? 그런데 간부 집 자식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은 과학을 안 하려고 했던 거예요.
한국에서는 대학에서 기초 과학을 공부한 후 본인의 의지대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정해진 수순이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도 물리학처럼 기초과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졸업 후 군인이 되고, 길주 등 핵 기지국이 있는 비밀 기지국에 갇혀 지낼 수도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입니다.
(현장음-김규민)김일성 종합대학교 물리학부에 진학한 친구가 있는데 졸업하는 동시에 군인이 되더라고요. 군인이 돼서 어디로 사라졌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길주 같은 핵 기지에 가서 연구하는데 공식적으로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으로 하는 거였어요. 학식을 가진 과학자가 본인이 싫어서 연구를 안 하면 벌칙정도 되겠지만 군인이 안 하면 군법이 적용될 수 있어요. 대부분의 물리학과 졸업생들이 군인 신분으로 기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연구한다고 해서 월급을 엄청나게 타고 개인의 명예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봐야 주는 것은 정해져 있고 비밀 기지에서 갇혀 살아야 되니까 외부와의 접촉들이 단절되죠. 그러다 보니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1999년인가, 98년 쯤에 모든 학교에서 각 학생들의 특기에 맞는 대학으로 진학시키고 각계의 특기생을 그 해당 과에 입학시키라고 했거든요. 과학 분야의 애들을 다른 데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쪽으로 보내야 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거든요. 그만큼 북한에서는 과학기술에 필요한 인재가 필요했는데 그 인재들이 부족하다 보니까 이런 영화도 나오게 된 거죠.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북한의 아파트에 대해서도 궁금해합니다. <한 녀학생의 일기>의 주인공 수련은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원이었고 영화 후반부에 연구 성과물을 인정받게 된 수련의 아버지 덕분에 아파트에 살게 되었으니까요.
(현장음-김규민)제 사촌이 이제 아파트를 받았었어요. 그래서 놀러 갔었는데 화장실에서 밖이 뭐예요. 창문으로 밖이 보이는 게 아니고 벽과 벽의 틈이 보이는 거예요. 그냥 쌓아 올리는 게 우선이다 보니까 이게 어그러진 거예요. 그만큼 질적인 수준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평양 같은 경우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요. / (사회자) 그런데 감독님이 북한에 계셨던 건 벌써 꽤 오래 전이잖아요. 지금은 좀 상태가 많이 좋아지지 않았을까요? 아파트에 전기도 좀 들어오고. / (김규민) 그때 당시와 지금이 거의 같아요. 뭐가 바뀌려면은 전기가 들어와야 하잖아요. 전기가 들어오게 되면 가장 크게 바뀌는 게 인공위성 사진이에요.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한반도 북쪽의 인공위성 사진은 지금까지 변한 게 없어요.
이 말에 또 다른 관객이 손을 들고 질문을 건네는데요.
(현장음) (관객) 이 영화를 2006년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궁이에 나무를 때고 집안에 부뚜막이 있더라고요. 한 30~ 40년 전 제 시골 외갓집의 모습인 것 같아요. 지금의 북한 농촌 모습도 비슷할까요? / (김규민 감독) 저 정도 모습이면 잘 사는 거죠. 사실은 거짓말이 많습니다. 평양시를 가도, 저렇게 잘 사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아요. 특히 부뚜막이 없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남한은 가스난방이 되고 온수난방이 되지만 북한에서는 불을 때야 난방이 되거든요. 불을 때야 밤에 뜨뜻하게 잘 수 있고 불을 때야 뭔가를 해 먹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바뀔 요건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도 저게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Closing Music –
김 감독의 답변에 귀 기울이며 남한 관객들 사이에 앉아있는 탈북민 관객도 있습니다. 평양 출신의 고종희 씨인데요. 한국 정착 15년차 랍니다. 영화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 영화를 통해 종희 씨가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다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김규민 감독의 북한 영화 해설, 그리고 남한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북한 주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