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한국에서는 9월 26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권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코로나에 대한 달라진 시선만큼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코로나비루스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던 시기에는 혼자 밥을 먹는 혼밥, 혼자서 영화를 보는 혼영, 혼자 공연을 즐기는 혼공까지! 혼자 생활하는 것이 안심이 되고 편했고 또 자연스러웠는데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혼자’보다는 ‘함께’입니다.
극장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북한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대강당에서 모여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데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북한 영화를 본 관람객들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느꼈을까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현장음) (사회자)한 여학생의 일기 이야기 보고 있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의 영화 취향과 여기 계신 분들의 영화 취향이 약간 다를 수 있거든요. 보시면서 흥미롭게 봤다거나 궁금한 게 있으시면 현장 질문 좀 받겠습니다.
‘한 녀학생의 일기’ 상영이 끝나고 사회자와 함께 황해북도 출신의 김규민 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을 받습니다. 영화 속에 담겨 있는 숨은 제작 의도와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북한 주민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관객 중에서 누군가 ‘한 녀학생의 일기’에서 이 장면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요.
(현장음-영화)다 됐어요. / 집안에 남정네 손이 없으니.. 둘중에 하나만 아들이었어도 좋으련만 이제라도 하나 더 낳아보려무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 네? 내 나이가 몇이라고..
관객은 이 장면에서 어떤 점이 궁금했을까요?
(현장음) (관객)영화 속에서 아들 얘기가 나오는데, 남아선호 사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한국에서 지금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낮은 출생률인데 북한은 어떤가요? / (김규민 감독) 일단 남아선호 사상은 제가 알기로는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아버지를 위한 헌신입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 하나 때문에 모든 걸 다 희생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로 북한의 가정에서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는 나라를 모시고, 나라는 수령을 모시고… 그런 설정이죠.
북한의 출산률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김 감독은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다자녀는 북한에서도 큰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현장음-김규민)저는 한국의 출산율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의 경우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다 자녀가 꽤 많았어요. 하지만 식량난을 겪으면서 거의 자식을 덜 낳는 쪽으로 변했거든요. 오죽했으면 군에 나갈 인원이 없어서 예전에는 키가 152cm 이하인 경우 군대에 나갈 수 없었지만 요즘은 146cm부터 군대에 나갈 수 있답니다. 일개 소총이 부착물까지 붙이면 136cm거든요. 그러면 총하고 길이가 똑같은 애가 지금 군대 가 있는 거예요. 그 정도로 북한 역시 출산율이 굉장히 낮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한국에서 육아 부담과 경제적인 불안정이 출산율 저하의 이유로 꼽히는 것처럼 북한도 비슷하다고 이해했는데요.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북한은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답니다. 뭐가 다른 걸까요?
(현장음-김규민)생활이 어려울수록 자식을 많이 낳는 게 인간의 본능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애를 많이 낳아도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벌어먹고 살 수 있다면 애를 많이 낳는 쪽으로 흘러가요. 하지만 북한의 경우 애를 많이 낳아도 그만큼이고 안 낳아도 그만큼이고 못 먹고 못 사는 거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내가 뭔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과로 돌아올 때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지만 북한 같은 경우에는 내가 최선을 다해도 그 결과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애를 낳는 게 사실은 짐이 돼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내용, 혹은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김 감독은 영화가 담아내지 못한 북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그 모습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관객이 있습니다.
(인터뷰-고종희)저는 한국에 온 지 15년 됐고 이름은 고종희라고 합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보다 북한영화가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내용은 당에 대한 것으로 여전히 변하지 않았네요. / (리포터)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 (고종희)오늘 영화는 식탁에 입쌀밥도 올라오고 먹는 밥상이 푸짐하게 올라온 게 완전히 생활하고 다른데… 지금 북한의 실정과 완전히 틀려요. 영화 속에서는 북한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요.
북한 출신이라면 잘 알지만 남한 출신 사람들이 영화에서 본 장면이 북한의 모습이라고 생각할까 종희 씨는 걱정이 앞선다고 합니다. 북한 출신의 감독이 영화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분명, 영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있을 것 같다고요. 그래서 종희 씨는 영화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 영화에 대해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인터뷰-고종희)한국 분들이 되게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참 많이 물어보는데 봤는데 그건 한국 사람들의 수준에서 알고 싶은 걸 물어보는 것 같아요. 북한 사람들은 먹지를 못하고 있어요. 탈북하는 이유가 먹지 못해서, 제가 나올 때는 진짜 굶어서 죽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저는 그래서 한국에 왔는데 그런 부분은 영화에 전혀 개입되지 않았으니까 알 수가 없죠. 그런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고 충실한 과학자가 되라, 당을 위해서 생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영화이다 보니까 현실하고 완전 다른 거예요. 어이없는 영화죠. 영화에 사상을 많이 개입시켜 놓았습니다.
종희 씨가 보기엔 북한 영화에 비해 한국 드라마, 영화는 훨씬 사실적이랍니다. 종희 씨는 한국에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요. 남북한의 현실을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써 북한 영화를 보면 더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합니다.
(인터뷰-고종희)남한 드라마 보면 다 사실적이잖아요. 사는 것도 맞고 자동차 타고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도 맞고 집에서 식사하는 것도 맞고, 다 맞는 부분을 촬영하는데 북한은 모두 다 틀리니까 우리가 볼 때 가면을 쓴 것과 같다고 보는 거죠. / (리포터)그 사실을 북한에 있을 때도 아셨어요? / (고종희)알지만 북한에선 영화나 문화는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저희 삼촌이 기록 영화 촬영사였는데 내가 '삼촌, 왜 그렇게 영화는 잘 사는 것처럼 나와?' 물어보니 '영화는 20년 앞서서 가서 앞선 문화생활을 우리가 촬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남한의 드라마, 영화 보면서 남한도 못 살지만 영화는 그렇게 나오는 줄 알았어요. 북한에서 영화 볼 때 일본 귀국자들에 대한 영화 나오고 남조선 영화도 가끔씩 보면 여자들이 차 몰고 다니잖아요. 또 아파트, 멋있는 집에서 전기솥으로 밥하고 세탁기 돌리는 모습이 다 가짜인 줄 알았어요. 우리 북한처럼 못 살면서 문화니까, 그저 보여주기 위해서 20 년 앞당겨서 문화를 홍보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그대로인 거야. 그게 틀려요.
-Closing Music –
영화전문가 김규민 감독도, 비전문가 고종희 씨도 북한 영화를 통해 전하는 공통적인 얘기는 화면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희 씨는 영화보다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달라고 당부했고요. 김 감독은 영화감독답게 북한 영화를 보되, 이렇게 봐 달라고 당부합니다.
(인터뷰-김규민 감독)저는 개인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북한 영화를 봤으면 좋겠어요. 뭔가 목적을 가지고 보게 되면은 받아들이는 것도 있지만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예를 들어서 '난 정말 북한이 좋아'라는 목적을 가지고 보게 되면은 그 영상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좋아 보여요. 하지만 '북한이 싫어'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면은 그 영화 집중되겠어요? 다 거짓말 같아 보일텐데… 그래서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보시고 궁금한 것들은 많이 질문하시면 그게 좀 더 바람직하지 않겠나 …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북한에 대해 그리고 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중요하겠죠. 남한 영화, 드라마…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극 속의 주인공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길 바랍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