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다시 시작! 통일을 이야기하다 (2)

0:00 / 0:0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면 생각을 못 했던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그렇지만, 나이가 한참 어린 친구들이 정곡을 찌르는 충고를 해주기도 하죠. ‘통일’이라는 주제는 어떨까요?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얘기하면 이 오랜 과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단법인 한민족통일여성협의회가 주최한 ‘전국통일스피치대회’에는 초등학생부터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나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데요.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다녀왔습니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22명의 연사가 펼치는 통일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안녕하세요. 대전동 산중학교 3학년 유도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남한말, 북한말 중에는 외래어, 한자, 문화, 예술 용어 등 다른 것이 많다는 거 아세요? 경찰을 '안전원'이라 하고 손자를 '두벌 자식'이라 하고 화장실을 '위생실'이라고 한데요. 우리랑 완전히 다르죠? 우리가 자주 먹는 라면은 '꼬부랑 국수'래요. 또 학교나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모서리 먹기'라고 한답니다 이렇듯 내포된 의미는 같은데 말이 너무 달라서 나중에 통일이 되어도 남북한 사람들이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가올 통일을 위해서라도 우리 남한 사람들부터 서로 다른 말이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어린 초등학생부터 나이 많은 어른들까지 다요. 그래서 저는~

22명의 연사는 서울을 비롯해 수원, 하남, 이천 등 전국에서 올라왔습니다. 다들 휴일을 반납하고 행사장을 찾아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는데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는 달라도 통일을 얘기하는 열정은 같습니다.

통일 교육이나 견학했던 자기 경험을 토대로 친구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작은 통일운동가’도 있고 연기와 노래가 장점인 자신의 특기를 살려 통일에 관련된 영상 제작을 하고 또래 친구들에게 전파하겠다는 ‘통일 유튜버’도 있습니다. 탈북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엄마를 보고 탈북민을 돕는 ‘의료종사자’의 꿈을 꾸는 친구, 또래 친구들과 예술 문화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고등학생도 있습니다.

연사들이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청중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는데요. 이번 순서는 12번째 연사로 무대에 오르는 탈북청년 김정민 씨입니다.

(김정민) 안녕하세요. 저는 2년 전에 자유를 찾아 남한에 정착한 탈북청년 김정민입니다. 한국에 먼저 정착한 가족의 도움으로 남한에 입국했고 학업과 직업을 병행해야 성공적으로 남한에 정착할 수 있다는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듣고 서울사이버대학교 국제협력-북한 전공에 입학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통일관, 건전한 안보관, 균형 있는 북한관을 갖추려고 합니다. ‘먼저 온 통일’로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10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교수가 되려고 합니다. 현재는 남한 사회와 국민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으며 남북교류나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알릴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정민 씨는 자신의 발자취가 앞으로 통일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는 커다란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단체에서 활동해보면서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결국 통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이렇게 당부합니다.

(김정민) 통일이 되면 북한이탈주민은 두 체제에서 모두 살아보면서 체제에서 오는 차이를 직접 경험했고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이해시킬 수 있는 핵심역량입니다. 3만 5천여 명의 탈북민들 모두가 통일 리더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남북한 청년들이 하나가 되어 통일 준비의 선구자가 되어야 함을 인식하면서 그 선두에 제가 서야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여 저는 앞으로 하루하루를 통일을 위한 준비로 살 것이며 더 나아가 교육자로서의 저의 꿈을 실현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 온 지 2년 됐다는 정민 씨는 27살, 늦깎이 대학생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대학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사이버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학업을 이어가는 바쁜 시간을 보내는데요. 지인의 추천으로 이번 통일스피치대회를 알게 됐답니다.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정민 씨에게는 감동이었고 동시에 고민이 됐답니다.

(김정민) 지인의 추천으로 대회를 알게 됐는데요. 제목이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더라고요. 자신만의 준비를 하는 거잖아요. 그 작은 말에 감동하고 나도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많은 것을 보고 자랐고 한국 와서 다시 0에서부터 배우고 있는 단계인데요. 통일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거나 나 혼자 학점만 잘 받으면 되고 좋은 데 취직해서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솔직히 안 할 수는 없더라고요. 하지만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편안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정민 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살려 자신의 의견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민 씨는 자신을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통일 청년’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다 담진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며 미처 못 한 얘기를 여기 전합니다.

(김정민) 지금 한국에 3만 5천 명이라는 우리 고향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 모두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일하고 있고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 있죠.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서 또는 여기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들을 위해서, 자기 꿈을 위해서, 자는 시간을 뒤로 하고 먹는 시간을 뒤로 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사시는 분들은 제 곁에도 많아요. 그런 분들을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이 먼저 품어 주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만 5천 명을 품을 수 없는데 북한의 2,500만 명이라는 인구를 어떻게 품을까요?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앞으로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통일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남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면 정민 씨는 탈북민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김정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부딪혀라! 부딪혀서 이겨내지 않으면 영원히 이길 수가 없고 살 수가 없어요. 움츠리지 말고 힘든 순간을 부딪쳐서 꼭 이겨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해결되고, 꿈을 꾸고 있다면 실현될 것이라는 이런 말씀을 해주고 싶네요. 부딪혀라!

-Closing Music –

한반도에 핵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지금, 어쩌면 통일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날 무대에 오른 22명의 연사가 한결같이 전한 말처럼 우리는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통일’을 위해 작지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봅시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