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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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오늘은 가을을 배달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자전거 바구니에 주운 낙엽을 가득 채워서 달리고 있었는데요. 바람이 불면 나무 아래 낙엽이 눈처럼 날리는 남쪽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비루스로 갑갑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가을을 맞아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주는 다채로운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지난 10월 중순 남북 예술인들이 함께 마련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인서트1: (현장음) 연주 소리 + 박수 소리 + 네. 잘 들었습니다. 10월에 듣는 기타 소리는 더 좋은 것 같지 않나요 여러분? 이렇게 세 명은 저희가 자주 만나서 기타 치면서 놀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렇게 우리끼리만 놀지 말고 공연 좀 해보자 해서 이렇게 공연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남북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이번 음악회는 두 명의 탈북민 기타 연주자와 한국의 재즈 밴드가 함께 합니다. 전체적인 기획과 진행은 탈북 방송인이자 손풍금 연주자 조미영 씨가 맡았는데요.

단순하게 연주곡에 대한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자연스럽게 남북한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무대와 객석을 이어주는 가장 큰 매개체가 있는데요. 바로 '기타'입니다.

인서트2: (현장음) 70년대부터 80년, 90년대까지 예술 분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가 김정일이 문화예술 부분을 지도하는 시기여서 진짜 막강하게 예술인들을 많이 내세워줬어요. 혁명적 예술인이라고 부르거든요. 왜냐하면 당의 목소리를 우리 예술인들이 선동자 역할을 해야 되기 때문에 돈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예술인으로 키우고 싶어하고 그리고 또 우리 민족이 좀 흥이 많잖아요. 여기(한국)처럼 클럽이나 뭐 노래방이 이렇게 흔하지 않으니까 집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선율도 치고 반주도 하고 기분 좋으면 북통도 두드리고 하면서 놀기에 너무 좋은 악기다 보니까 기타가 많이 대중화가 되었고요. 또 이제 김정은 말씀에도 '대중화를 해라' 그래서 손풍금과 기타가 북한에서는 대중적인 악기로 이렇게 해서 소학교부터 시작해가지고 음악 소조가 다 있어서 손풍금과 기타는 거의 북한 주민들이 조금씩은, 다 조금씩은 안다고 볼 수 있어요.

기타와 관련된 북한의 이야기에 이어 두 탈북민 기타 연주자들의 연주가 시작됩니다. 그 중 '엘 빔보'라는 곡인데요. 스페인어로 어린아이라는 뜻입니다. '올리브의 목걸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알려진 '엘 빔보' 잠시 감상해 보시죠.

인서트3: (연주곡- 엘빔보)

남이나 북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타… 남한에서 기타는 낭만의 악기로 추억됩니다. 북한에서는 친구들끼리 모이는 자리엔 빠지지 않는 감초로 기억되는데요. 미영 씨와 연주자들은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인서트4: (조미영) 북한에서 기타가 참 인기가 많다는 말씀을 먼저 드렸었는데 북한 사람들이 기타를 가장 많이 치는 노래는 북한 노래는 아니에요. 한국 노래 엄청 많이 연주를 하셨었죠. 은지 씨는 그 기타로 그 동네 오빠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인가요? / (유은지) 동네 오빠들이 통기타 들고 나와서 연주를 하면 주변에 여자아이들이 모여 가지고… / (조미영) 보통은 그렇죠 / (유은지) 기타 쳐주세요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 반대였거든요. 제가 치고 있으면 기타 소리 들으려고 (오빠들이) 왔었는데, 남한 가요가 진짜 인기 많았어요. '애모'라든지 '바람바람바람' 이런 거 있잖아요. 저희 북한 곡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남한 노래였던 거예요. / (조미영) 맞아요. 주체의 바람… 우리는 이렇게 불렀어요. (관객 웃음)

북한에서 남한 노래인 줄도 모르고 불렀다는 '바람바람바람'은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1980년대 남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문밖에는 귀뚜라미 울고 산새들 지저귀는데 내 님은 오시지는 않고 어둠만이 짙어가네
저 멀리에 기타 소리 귓가에 들려오는데 언제 님은 오시려나 바람만 휭하니 부네
내 님은 바람이련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어둠 속에 잠기네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날 울려 놓고 가는 바람
​노랫말에도 기타가 등장하는데요. 이 공연에선 남한의 재즈 밴드와 함께 근사한 연주곡으로 선보였습니다.

인서트5: (현장음 – '바람바람바람' 연주곡)

북한에서 예술단 활동을 하며 공연 경험이 많은 이진아 씨도 남한 노래에 대한 추억이 있답니다.

인서트6: (이진아) 손풍금을 하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종이에다가 가사를 베껴 가지고 오더니 이 곡을 좀 배워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슨 곡이니?' 하니까 '이게 남한 노래인데 이거를 좀 배워달라'는 거죠.

'니가 니 악기로 하면 되지 왜 나보고 배워 달래' 하니까 아코디언으로 치면 감정이 안 나온대요. 그래서 코드 짓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 해서 그때 '잊혀진 계절' 뭐 이런 노래도 좀 했어요. 그리고 가사를 보면 북한 노래에 없는 가사! '잃을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이렇게 운다, 슬프다 이런 가사 표현이 북한 가사에는 없거든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사 말이 너무 잘 와닿고 우리가 매료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진아 씨의 말에 미영 씨는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남한에서 하는 공연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날만큼은 북한에서 몰래 숨어서 듣고 불렀던 남한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겠다고 하는데요. 빨라진 미영 씨의 말의 속도에서 간절했던 마음이 잘 전해집니다.

인서트7: (조미영) 누구보다 그 가사를 잘 이해하고 있고 또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한국 노래에 대해서 갖는 애정은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정말 너무나도 당연하게 듣고 쉽게 듣는 그런 한국 가요들이, 북한 사람들한테는 정말 마음 졸이면서 불안에 떨면서 너무 간절하게 들었던 그런 음악들이거든요. 그래서 한국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더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그런 곡들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북한에서 몰래, 불안에 떨면서 불렀던 노래들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정말 마음껏 한 번 불러제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릴게요. (박수소리) + 진아 씨가 부르는 노래

노래를 부르는 진아 씨, 곁에서 함께 기타 연주를 하는 은지 씨, 사회를 보는 미영 씨 그리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남북한 사람 모두가 잠시 추억에 빠져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한의 재즈밴드와 함께 하는 연주로 음악회 분위기는 다시 달라집니다. 어느덧 공연은 절정에 이르는데요. 미영 씨가 관객석에 있는 탈북민 중 한 사람을 무대 위로 초대합니다.

인서트8: 사실 코로나로 정말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연락드리기가 사실 망설여졌어요. 그런데 연락을 드렸을 때 기꺼이 한달음에 다 여기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여러분들이 저에게 소중한 인연이라는 말씀드리고 싶고 감사의 마음을 이번 노래에 담았습니다. 저희 이 관객석에 제가 한국에 와서부터 인연을 맺은 탈북민 언니가 계세요. 북한에 계실 때 선전대에서 노래를 정말 잘했는데 무대로 모셔서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losing- (B.G – 심장에 남는 사람)

똑같은 노래인데…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노랫말인데도 다르게 느껴진다는데요. 마지막 남은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