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전 세계 이주 한국인 여성들이 모여 만든 여성 평화운동 단체 조각보에서 지난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Herstories: 다시 만난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했는데요. 책 발간에 이어 올해는 책을 쓴 주인공들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고향을 떠났지만 정착한 땅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사는 이민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한반도를 떠나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물론 북을 떠나온 탈북민들까지 포괄하는 의미죠.
조각보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을 모아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모임의 이름도 바로 ‘삶 이야기’.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180여 명인데요 그중 12명의 삶을 책 속에 담았습니다. 국경을 넘고 이주의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그들의 생명력이 전하는 삶의 찬가! 지난주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사회자)어떤 이야기들을 어떻게 들려주셨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서 제가 세 분께 질문형식으로 드리는…
토크콘서트는 사회자의 질문에 따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세 사람은 탈북민 홍영화 씨, 중국 동포 박연희 씨 그리고 사할린 동포 이정희 씨인데요. 오늘만큼은 책을 쓴 작가입니다.
이정희 작가는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하며 동포들의 이야기를 연재해왔다는 말과 함께 책 속에는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를 들려주는데요. 카자흐스탄 알마이타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산지대에 빙상 경기장이 있습니다. 그 경기장을 앞장 서 건설한 사람이 바로 고려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이정희 작가는 소개하는데요. 이 작가의 얘기, 직접 들어보시죠.
(이정희)제가 이 얘기를 왜 하려고 하는가 하면 그 나라(카자흐스탄)에서 나서 그 나라에서 크고 그 나라 공부를 하고 그 나라 말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타인이라는 감정을 평생 느끼고 살았거든요. 그분도 우리 같은 고려인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이타가 고산지대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도 산에 눈이 덮여 있거든요. 그 눈이 녹기 시작하면 물, 돌, 흙이 다 섞여서 시내로 흘러내려요. 그런데 알마타에서는 그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산을 폭발시켜서 그 부분을 메꾸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당시는 소련 시절이었는데 소련 학자들이 그만한 힘의 폭발물을 넣고 폭발을 시키면 인공 지진을 일으키게 된다고 우려했습니다. 알마이타가 지진 지대거든요.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와 아름다운 경관을 다 망가뜨리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한 10년 이상 모스크바도 다녀오고 연구를 한 뒤 결국 허가를 받았고 고산 빙상 경기장도 짓고 이후에 이곳은 이름 있는 휴양지가 됐습니다. 이런 얘기를 훗날 러시아 사람이 책으로 썼는데 주인공이 고려인이 아니고 러시아 사람이 됐어요. 그 후에 한 일 년이 지난 후에는 카자흐스탄 영화 제작소에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예술 영화를 하나 만들어 제작했는데 거기는 주인공이 카자흐스탄 사람인 거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 얘기가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여기는 러시아 사람 저기는 카자흐스탄 사람?' 하더라고요. 당시 저를 만났을 때 저한테 '너는 나를 러시아 사람이나 카자흐스탄 사람으로 안 만들겠지? 나를 고려인으로 묘사해 달라' 그러시더라고요.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중편 소설로 신문에 연재하려 했지만 고려인을 내세웠다가 민족주의자라고 낙인이 찍혀 신문사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회사 측의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이정희 작가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데요. 한국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였답니다. 7-8년이 지났을 때쯤에야 고려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발간할 수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콘서트 관객들에게 너무도 전하고 싶었다며 이정희 작가는 자신의 차례를 마무리합니다.
이 작가에 이어 황해남도에서 온 탈북민 홍영화 작가도 꼭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마이크를 드는데요.
(홍영화)북한에서 3만 5천 명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왔는데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사람이 10분의 1도 안 돼요. 우리가 대한민국을 희망에 두고 친정어머니 품으로 알고 이곳에 왔어요. 친정어머니는 나갔던 자식을 돌아오면 품에 안고 같이 눈물을 흘립니다. 부모라고 생각이 되면 자식이 암만 부족해도 내쫓는 부모는 없지 않나요. 제가 또 손녀딸을 둘 데리고 왔는데, 그 손녀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북한에서 왔다는 것이 학교에서 폭로가 된 후로 왕따를 당해서 13살짜리가 자꾸 죽겠다 했어요. 한국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캐나다로 가서 거기서 졸업하고 지내고 있어요. 손녀딸은 지금 살아 있어요. 말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르지만 그 나라에서는 북한에서 왔다고 해도 사람으로 인정을 해줘요. 그런데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홀대하니까 너무 섭섭해요. 우리 탈북민들도 잘못은 있습니다. 자기 위치에 설 자리, 앉은 자리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아요. 그러나 친정어머니 심정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한 번 더 등을 다독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박수소리)
탈북민들의 등을 다독여줬으면 좋겠다는 홍영화 작가의 말에 관객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합니다.
뒤이어 두 번째 토크콘서트의 주인공들이 소개되는데요. 그분들 중에는 저희 방송에서 출연 중인 마순희 선생도 계시네요.
(현장음)두 번째 토크입니다. 이번에도 작가 세 분을 모실 건데요. 이 선생님들은 처음에 삶 이야기 참가자였다가 이후에 사회자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세 분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북한 동포이신 마순희 선생님, 일본 동포이신 조미수 선생님, 우즈베키스탄 동포이신 장올가 선생님 세 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삶 이야기’ 모임은 여러 개입니다. 각각 탈북민, 일본 동포, 우즈베키스탄 동포 등 같은 출신들이 모임으로 묶이는데요. 이 모임에서 사회자 역을 했던 분들입니다. 이 세 분 모두 공통적으로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 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보니 가능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됐다”.
(현장음) 안녕하세요. 마순희입니다. 저도 삶 이야기에 처음 요청받았을 때에는 많이 주저했습니다. 사회주의권에서는 자기 얘기를 잘 안 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겸손하지 못하게 보기 때문에 자랑거리도 잘 말 안 해요. 또 남들이 모르는 가슴 아픈 얘기들은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여기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되나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작 참여해 보니까 스스로가 마음이 녹아내리더라고요. 앉아 듣는 사람들이 그 사람 이야기에 적극적인 감동도 보내지 않고요.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고요. 너무 격하게 공감도 안 합니다. 그냥 들어줘요.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참여하러 갈 때보다 끝나고 돌아올 때 발걸음이 더 가볍게 왔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공감해준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낀 뒤, 참여자들은 좀 더 용기를 내 모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회자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Closing Music –
함께 울고 웃으면서 가슴 속 깊이 박힌 응어리를 털어버리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기구한 여성들의 삶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 코리아 디아스포라 여성들로, 더 나아가 여성평화운동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강하고 아름다운 그녀들의 삶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