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김장전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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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자제했었던 일들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에 나가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죠. 답답했던 생활에서 오랜만에 자유로움을 느끼는데요. 개인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건 아닙니다. 봉사하는 현장들도 활기를 찾는데요.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할 수 있는 반찬 봉사와 연탄 봉사, 그리고 김장 봉사 현장이 대표적입니다. 11월부터 남한 전역에서 김장김치를 대량으로 담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김장 봉사가 시작됐는데요. 그중 파주의 한 곳을 <여기는 서울>에서 다녀왔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탈북민들 30여 명이 함께 한 김장 나눔 봉사 현장, 소개합니다.

인서트1: (현장음) 작은 걸로 쥐어 줘요. / 이것 좀 묻히지 말고 줘야겠는데요~~

2013년부터 매년 이맘때마다 김장 봉사를 해 온 여원 봉사단. 파주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로 이뤄진 여원 봉사단은 무려 9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그런 내공이 김장 봉사에서도 발휘되네요. 게다가 북한에서 1톤씩 하던 김장 전투 속도로 김치를 버무리니 9시에 집결해서 시작한 김장이 2시간이 채 안 돼서 마무리되는데요. 30여 명의 봉사자가 김치통 120개를 꽉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될까요? 봉사단원들은 한국에서도 김장을 전투처럼 해버립니다.

김장 봉사가 예정보다 빨리 끝난 덕분에 봉사자들에겐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지만 봉사단 임원진들은 더 분주합니다. 예년처럼 동네잔치로 온 동네 어르신들을 초대해 수육과 국수를 대접할 수는 없지만 조촐하게 오늘 수고한 봉사단을 위해서 국수와 수육을 준비하는데요.

인서트2: (현장음) 너무 씻지 마. 뻣뻣해 지니까. / 국수를 더 삶아야 돼요? / 수육도 삶아야 해요~~

봉사자들 뒤편에서 쉬지도 않고 절임 배추를 담았던 상자를 정리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낯익은 분이 계시네요.

인서트3: (리포터)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리포터) 우리 어르신, 소개 좀 해주세요. / 여원봉사단에서 함께 하는 지용근입니다. / (리포터) 사실은 여원 봉사단 취재할 때마다 항상 뵀었는데 번번이 인터뷰를 안 해 주시더라고요. / 아~ 어떻게 기억했어요. 크게 말주변이 없어서 못 하겠더라고요. / (리포터) 그냥 저랑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시면 됩니다. 다들 지금 잠깐 쉬는 시간 갖고, 담소도 나누시고 쉬고 계시는 있는데 혼자 또 뭔가를 부지런히 하세요. / 다른 분들은 (김장 봉사를) 처음 하니까 잘 모르지만 저는 몇 해 동안 봉사를 하다 보니 경험이 있어서 알아서 하는 거죠. 마무리 지으려고 깔끔하게 뒷정리하는 거예요.

66살 지용근 씨는 조선족으로 부인이 탈북민입니다. 부인을 따라 용근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13년째, 여원봉사단과 함께 한 지는 벌써 4년입니다.

인서트4: (지용근) 처음에는 우리 집사람이 여기에 가입했는데, 우리는 한 가족 부부이니까 처음에는 그냥 도와주는 식으로 나왔었어요. 그런데 마음이 끌려서 함께 참가하게 됐어요. / (리포터) 보통, (봉사 현장에) 오시면 어떤 일을 하세요? / (지용근) 저는 그냥 후군 일을 하죠. (오늘은) 절인 배추를 까고 주고 뒤에서 그냥 단도리를 해줘요. / (리포터) 뒤에서 하시는 일라고 하지만 절인 배추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무겁고 나르기도 사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지용근) 이건 봉사하는 일이라 즐겁게 하는 거죠. 즐거우면 힘이 안 들어요. (웃음) 그리고 힘쓰는 일은 여성분들이 못 하니까 당연히 남자들이 해야죠. 그리고 즐겁게 봉사를 하면 일이 힘든 것도 모릅니다.

지용근 씨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닙니다. 봉사한다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몇 년째 빠지지 않고 부인이 봉사단에 참여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했습니다. 때로는 아픈 몸을 이끌고 봉사하러 나간다는 부인의 모습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쉬라고 말려봤지만, 용근 씨의 부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용근 씨는 조금이라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는데 한두 번 그렇게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여원봉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겁니다.

인서트5: (지용근) 처음에는 솔직히 아무 수당도 없고 인건비도 없는데 왜 하나 싶었는데요. (직접) 하고 나니까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조금만 힘이라도 보탬으로써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끌려서 하게 됐네요. 단체 활동이니까 무조건 또 참가해야 된다는 개념도 있었어요. 또 하는 것도 즐겁고 봉사하고 나면 마음도 개운하고 내가 조금 힘을 보탬으로써 사회에 이렇게 이바지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요. 그냥 가만히 있기보다도 조금이라도 내가 보탬이 됐다, 이런 생각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요.

지용근 씨는 이제 나눔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김장 봉사는 해마다 빠지지 않습니다.

인서트6: (지용근) 이제는 서로 편안하게 의지하면서 서로 지팡이처럼 생각하고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있으니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우리 여원 봉사단이 더욱더 잘해서 자랑스럽게 더 힘을 많이 이바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도 우리를 많이 응원해 주시고 그러면 고맙죠.

여원 봉사단의 활동은 특히 지역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같은 탈북민 어르신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남한 출신 어르신들은 이제 그 진심을 압니다. 노인정 총무를 맡고 있는 안영애 어르신의 말입니다.

인서트7: (안영애) 저는요, 3단지 노인정 총무입니다. 맨날 여원봉사단체에서 많이 후원해 주고 노인들한테 잘해요. 이번에도 김치 담그면서 우리 노인들한테 많이 대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참가해서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꾸준히 활동하는 게 힘든데, 그래도 우리 (여원) 회원님들이.. 새터민 회원님들이 너무 잘해요. 여원 봉사 단원 모두 다 잘하니까 진짜 칭찬하고 싶어요. 진짜 이거 어디에다가… 진짜 국회에 올려서라도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안영애 어르신도 여원 봉사단과 7년째 김장 봉사를 함께 하고 있는데요. 같은 자세로 서서 김장 담그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고단한 일입니다. 굽은 허리에 한 시간을 꼬박 서 있느라 힘들었을 텐데 안영애 어르신의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웃을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다 함께 모여서 김장 담근 기분이 너무 좋아서라고 하네요.

인서트8: (안영애) 너무 좋지요. 나도 먹고 노인들 다 나누어 주니까 얼마나 좋아요. 저는 죽을 때까지 봉사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탈북) 동생들도 다 봉사 활동, 활발하게 너무 잘할 거예요. 앞으로도 꾸준히 봉사 잘하자~ 파이팅!

72살의 나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까랑까랑한 안영애 할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느덧 국수와 수육까지 완성됐네요.

인서트9: (현장음) 우리 주방에서 너무 고생하던 분들 이제 앉으셨네. 자~ 잠깐만 집중해 주세요! 항상 옆에서 힘이 돼 줘서 너무도 고맙고.. 오늘도 이 넓은 자리를 주방에서 마무리까지… 이 일선의 주인공들이 있기에 여원이 탄탄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의미에서, 고생들 많이 했으니 건배주를 하겠습니다. 앞에 다 잔들 하나씩 들어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건배~ / 수고하셨습니다.

-Closing-

배추 한 포기를 더 사려다 보니 봉사자들을 위한 상차림은 예년보다 조촐합니다. 그래도 김장 봉사 후에 먹는 국수와 수육은 그야말로 꿀맛인가 봅니다. 고춧가루가 묻은 마스크를 벗고 맛있게 먹는 봉사자들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네요. 이날 담근 김치는 혼자 사는 독거 어르신을 비롯해 소외계층 120가구에 전달됐는데요. 사랑으로 버무려진 김치가 그분들의 밥상을 겨우내 풍성하게 해주길 바래봅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