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국민대학교 한반도 미래연구원에서는 2015년부터 탈북민들의 애환을 담은 실제 이야기를 노래와 춤을 어우르는 공연인 뮤지컬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동안 11번째 공연을 선보였는데요. 제목은 ‘희망을 걸어드림’
전화로 탈북민들에게 문의를 받고 도움을 주는 콜센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요. 제목처럼 전화선을 타고 희망이 전해질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소개합니다.
(현장음) 노래 - 언니가 떠나던 날. 꿈을 꿨어요. 노란 나비가 주위를 맴돌고 화려한 정원에 날 데려갔죠. 그곳엔 경쾌한 음악과 향긋한 꽃내음 가득. 언니가 보고픈 날에는~
콜센터 상담원들과 전화선을 타고 만나는 사람들.
뮤지컬 ‘희망을 걸어드림’ 무대 위에는 식량난으로 가족을 잃었던 아픔을 간직하고 상담소 직원으로 일하는 이진아, 탈북민 자녀라는 걸 숨기고 살아가는 최수영, 의욕이 넘쳐 약간 부담스럽지만 가슴은 따뜻한 콜센터의 터줏대감 남시훈 대리 그리고 모든 의욕을 잃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장희진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눈물 나는 사연들 속에서도 극의 분위기만큼은 결코 무겁지 않았는데요. 연출자 진성웅 씨는 의도적으로 밝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진성웅) 저희가 다루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한국에 와서 정착을 잘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거예요. 무엇보다 심각한 이야기는 진지하게 다루되 그 외의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좀 밝게 풀려는 부분들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게 만들어야죠. 주 관객층이 젊은 20대 대학생들이기 때문에 대학생들 눈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설득하려고 그 방향으로 잡아서 만들었습니다.
상담 콜센터에는 가끔 예상 밖의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도 걸려옵니다.
(현장음) 따르릉. 네. 희망을 드리는 콜 상담 센터 입니다. / 이봐! 내가 이달 14일에 환갑인데 생일선물로 여자 좀 소개해 줘. 내가 왕년에 로동신문 사회면에 이름도 낸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여자들이 본체 만체한다니까. 괜찮은 편에 북한 여자 하나 구해다 줘. / 네. 저희는 그런 사사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곳이 아닙니다. / 늘 그딴 식으로 말하더라.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래? 환갑이 어때서?
여자친구를 구해달라고 앞뒤 따지지 않고 떼를 쓰는 어르신. 상담사의 설명에도 막무가내입니다. 상담 센터의 고참이 전화를 바꿔 받습니다.
(현장음) 네. 희망을 드리는 콜 상담 센터입니다. / 북에서 마누라만 데리고 왔어도 이렇게 전화를 하겠냐고. 아무튼 고분고분한 동양 사람이 낫겠으니까 고운 북한 여자로 당장 주선해 봐. / 어르신~ / 뭐야? / 벌써 생신이세요? 1년 진짜 빠르다. 그죠? / 에이… 또 너야? 어떻게 전화를 하면 매년 네가 받냐? 아직도 거기 다녀? / 제가 또 여기 고수잖아요. 그러는 어르신은 아직도 여자친구 없으세요? / 너 이 자식. 직장 안 옮기냐? / 오래오래 다닐 겁니다. 그나저나 저희가 항상 말씀드리는 것처럼 저희는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다. 혹시나 친구를 원하시면 다음 달에 탈북민 행사에 나오셔서 직접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 / 친구는 무슨! / 진짜 운명은 친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 에라이~ 행사가 언제라고? / 제가 문자 넣어드리겠습니다. / 올해도 너 때문에 퉁쳤네! / 생신 축하드립니다!
다양한 사연. 다양한 탈북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데요. 극 속의 이야기는 실제 콜센터에 걸려온 진짜 상담 전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렇게 여자친구를 찾는 어르신도 계신다는 얘기죠. ‘희망을 걸어드림’ 극을 본 관객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얘기하는 등장 인물은 희진과 보이스 즉 목소리입니다. ‘보이스’와 희진의 전화 통화는 작가의 창작으로 만들어낸 상황인데요, 조아라 작가의 설명입니다.
(조아라) 남쪽으로 다시 내려오고 싶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 그리고 북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전화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극 안에 나와 있는 설정은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이 작품을 봤을 때 거부감이 없는지,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메시지 전달이 거칠지 않은지에 대한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더욱더 팩트와 개연성의 부분에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진 그리고 남으로 오고 싶다는 보이스의 전화, 전화로 걸려오는 탈북민들의 다양한 고민들, 사소하게는 ‘콜센터로 월요일에 전화가 가장 많이 걸려와’ 하는 그런 대사까지 모두 사실에 기반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사실에 기반한 메시지니까 ‘희망을 걸어드리죠’ 하는 인물들의 대사가 관객분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희진은 전날 콜센터에 전화를 하고서 급했는지 콜센터로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도움 요청은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식량난 때문에 돈을 벌고자 아이를 두고 탈북한 희진은 중국에서 북송을 피해 남한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요. 기댈 곳이 절실했던 그녀는 나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희진에게 어린 딸과 빚을 남겼습니다. 희진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현장음) 북한으로는 다시 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 네. 하지만 잘 정착하실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관심분야나 잘하는 것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직업 교육이랑 여러 가지.. / 제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면 적성검사, 진로상담 이런 것도 준비돼 있습니다. / 속 편하게 일해서 그런가? 모든 게 참 쉽네. / 그런 게 아니라 일단 먹고 살길부터 찾아야 하잖아요. / 도저히 말이 안 통하네. 다들 남한 사람들이란 말만 번지르르. / 저기요. 희진 씨.. 사실 저도 5년 전에 탈북했거든요. 저도 여기 혼자 넘어와서~~
희진은 같은 탈북민인 상담사 진아와 얘기를 나누면서 뾰족했던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그리고 바쁜 상담소 직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오늘에만 여러 번 콜센터에 전화해 돈을 달라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현장음) 따르릉 / 여보세요. /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혹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습니까? / 네. 천만 원이 어려우면 오백이라도 보내줄 수 없습니까?
그는 이번에도 무작정 돈을 요구합니다.
(현장음) 따르릉 / 여보세요. /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혹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습니까? / 네. 천만 원이 어려우면 오백이라도 보내줄 수 없습니까? / 여긴 그런 데가 아니라서.. / 진짜 급해서 그럽니다. 진짜 다 갚겠습니다. 은혜 잊지 않고 다 갚겠습니다. / 빌려드리고 싶지만 저도 돈이 없어서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려고 했던 사람이라.. / 조선으로 오고 싶었다고요? 탈북하고 싶은 사람을 봤어도, 다시 조선으로 오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어쨌든 어디 돈 빌릴 곳 없습니까? 제가 탈북해서 남조선 가면 바로 다 갚을 수 있는데.. / 설마 지금 탈북 중입니까? / 네. 지금 중국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돈이 더 있어야 남쪽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세상에… / 저.. 정말 꼭 가야 합니다! / 왜 꼭 오려고 합니까? / 아내가 거기에 있습니다…
-Closing Music –
아내가 남한에 있다는 남자. 희진도 북한에 딸이 있습니다. 남자는 남한으로 올 수 있었을까요? 희진은 정말 북으로 갔을까요? 극의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