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들의 애환이 담긴 실제 이야기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공연, 뮤지컬로 만들었습니다. 전화로 탈북민들에게 문의를 받고 도움을 주는 콜센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편의 음악 드라마인데요. 제목은 ‘희망을 걸어드림’. <여기는 서울>에서는 극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세 번에 걸쳐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현장음)언니를 만나면 좋은 집, 포근한 이불, 푸짐한 식사, 향긋한 커피. 이 모든 걸 선물해 주고 싶어요. 언니가 거기서는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걸 보고 먹을 때 항상 생각나요. 만나지 못할 우리의 꿈. 우리의 끝. 우리 언니.
탈북민 출신의 상담소 직원 이진아. 식량난으로 언니를 잃었던 그녀의 노래가 공연장에 울려 퍼집니다. 모든 의욕을 잃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며 상담소를 찾은 희진에게 진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진심을 담은 진아의 설득에 희진도 격해진 감정을 추스릅니다.
(현장음)저희 언니를 만난 것 같아요. 저희 언니도 앙상해서는 저를 지킨다고 말은 앙칼지게 잘했거든요. / 그렇습니까? / 다시 언니를 만난 기분이네요. 이거 제 명함이요.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연락해도 괜찮고, 술 한잔 드시고 싶을 때도 연락하세요. 말동무 해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저도 가족을 만난 기분이에요. / 이렇게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러려고 콜센터 일 하는 건데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희진… 진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상담소 전화벨이 울립니다. 계속 울리는 전화를 무시할 수 없어 희진은 그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선 너머의 남자는 무작정 돈을 요구하는데요.
(현장음)혹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습니까?
한국으로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남자, 극 중에서는 ‘보이스’라는 인물인데요. 그는 아내를 찾기 위해 남한으로 와야 한답니다. 두 사람은 짧은 통화였지만 보이스의 부인이 희진과 함께 탈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현장음)그쪽이 넘어갈 땐 어땠습니까? 언제 넘어갔어요? / 저… 3년 전 한겨울에 넘어왔습니다. / 정말입니까? / 네, 왜요? / 우리 집사람도 3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 중국을 통해서 건너갔습니다. / 어! 그때 중국에서 만난 사람 몇 명 아는데.. / 혹시 리은수 모르십니까? / 리은수? 혹시 특징이 있습니까? / 눈썹 위에 큰 점이 있고요. / 점을 본 것 같기도 하고.. / 우리 집사람일 수 있어요. 보통 점이 아닙니다. / 혹시 또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 네. 다리를 절어요. 아세요? 본 적 있어요? / 네.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희진을 통해 들은 소식은 절망적이었습니다. 탈북을 함께 했던 일행 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됐는데 다리가 불편했던 보이스의 부인은 제대로 피할 수 없었고 잘 못 됐다는 것입니다.
(현장음-노래) 섬뜩했던 그날 밤 누군가의 배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생지옥. 어제까지 곁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신기루가 된 아득한 오후. / 불안했던 매일 밤. 혹시 잘못될까.. 아닐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보이스는 잠시 절망에 빠지지만 이내 희진을 격려합니다. 자기 아내가 못 간 길을 힘들게 갔으니, 부디 잘 살아내라고 말이죠.
(현장음)있잖아요. 부탁이 있는데요. / 네 / 힘들게 살아낸 그쪽이라도 정신 차리고 잘 사시오. 자책감 그런 거 갖지 말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생각도 말고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고~~
전화선을 통해 희진에게 힘을 준 보이스의 역할을 맡은 배우 최현빈. 그는 이번 역할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최현빈)보이스라는 역할은 탈북하는 과정에 힘듦과 고난을 보여주면서 그런 경험을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것 같아요. 제가 이 극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가 있었고 탈북민들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직도 많이 모자라지만…
보이스와 희진은 멀리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가까운 곳에 북에서 온 우리의 이웃, 친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배우들 역시 뮤지컬을 통해 뉴스 보도로만 접하면 탈북민들의 사연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요. 장희진 역할을 맡은 배우 김우현 씨의 말입니다.
(김우현)희진이라는 역할이 밝고 긍정적인 상황도 아니고 되게 슬프고 뭔가 억눌려 있고 약간 분노도 있는데요. 그런 정서를 갖게 되기까지 '이 인물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길래 이랬을까'를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제가 그 인생을 실제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좀 조심스럽긴 하거든요. 너무나 힘든 상황을 겪은 인물이니까요. 그렇지만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고 그 상황들을 지나온 다른 인물들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대본 자체가 거의 실제 이야기에서 따온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실화라는 것을 되새기기도 했고 연습하면서 이 감정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저럴 수도 있겠구나, 계속해서 발견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극의 마지막은 콜센터상담사가 된 희진이 다시 보이스의 전화를 받는 장면입니다. 북한에 두고 온 희진의 딸 진주의 소식과 함께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공연은 마무리되는데요.
(현장음)엄마~ / 진주야…
관객석엔 탄식과 함께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속엔 또 다른 희진이들이 앉아있는데요. 공연의 극본을 쓴 조아라 작가의 말입니다.
(조아라)제가 관객석에 앉았을 때 제 주변에 캐릭터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탈북민 관객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이 함께 관람하니까 감회가 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나이대가 50대 이상인 관객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산가족 장면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많이 우시더라고요. / (리포터) 이번 공연을 통해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게 있을까요? / (조아라) 이게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메시지이니까, '희망을 걸어드리죠' 하는 캐릭터들의 대사가 관객분들에게도 좀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Closing Music –
조아라 작가는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탈북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희망을 걸어 주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배우들은 극 중 희진이에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김우현)모든 순간 가운데서 포기를 하지 않고 살아내느라 너무 수고했고 고생 많았어. 앞으로는 희진이 그 자체로서 더 많이 사랑받고 사랑하고 또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게. / (최현빈) 많은 고난들이 있었지만 용기 잃지 않고 딸을 찾거나 이곳에서 적응하거나 하는 그런 노력들을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희진에게 희망을 전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