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리움은 노래를 타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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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북한 인권 실태를 국내외에 알리고 탈북민 교육 등에 앞장서는 민간 단체 물망초에서 합창단을 운영하는데요. 탈북 여성들로만 구성된 합창단으로 창단된 지 올해로 7년이 됐습니다. 물망초 재단에서는 매년 12월, 후원자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여는데요. 올해는 지난 7일 여의도에 있는 전문공연장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현장, <여기는 서울>도 함께 했는데요. 지난주에 이어 물망초 합창단의 공연 실황과 합창단원들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이분들께서 오늘 음악회를 주관해 주셨어요. 따뜻한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소리)

관객석을 꽉 채운 사람들 사이로 주한 외교사절들의 모습도 보이는데요. 사회자가 무대 위로 누군가를 불러냅니다. UN 서울 인권사무소 관계자, 제임스 히난 사무소장입니다. 이번 물망초 음악회는 내년의 UN 인권선언 75주년을 서막처럼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제임스 히난) On December 10th every year we celebrate human rights day. And the day celebrates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which is now 74 years old~
(매년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선언일입니다. 올해로 74주년을 맞이하는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날 인데요. 지금부터, 그러니까 오늘부터 내년까지 12개월 동안 저희는 2023년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기념하는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모두를 위한 모든 인권이라는 메시지를 물망초 합창단만큼 잘 전달할 수 있는 분들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망초 합창단은 음악을 통해 인권을 알리는 정말 많은 영광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저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모습을 필요로 합니다. 모두의 존엄, 자유,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냅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졌던 작은 모임이 물망초 합창단의 첫 시작입니다.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노래하며 저마다의 아픔을 위로했고 이제 아픔을 딛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는데요. 우뚝 선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 음악회입니다.

그런데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걸까요? 합창단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하는데요. 합창단원 이장복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장복)제가 북한에서 12년도 3월에 나왔어요. 금방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니깐 할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요양보호사 공부도 하고 다른 부업도 하며 지냈는데 친구를 통해서 물망초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합창단이 아니었거든요. 친구가 물망초에서 노래 교실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노래도 마음껏 못했는데 한국노래 좀 불러볼까 싶은 마음에 가게 됐어요. 가보니까, 노래도 부르고 호흡이 맞는 친구들도 있어서 너무나도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2015년 창단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이장복 씨는 한국 정착 후 3년간,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고향에 남아있는 딸 생각에 죄책감과 함께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갔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시작된 물망초합창단과의 인연이 장복 씨의 일상을 달라지게 했다는데요. 그녀의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이장복)한국에 와보니까 너무나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고요. 먹을 것도 많고, 북한에서는 불도 못 켜고 있는데 밤에는 불도 켜고요. 또 사는 집은 우리 북한으로 말하면 고위급들이 사는 집을 주더라고요. 화장실에도 더운물, 찬물 다 나오고 너무나도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 좋은 곳에 내가 가족과 같이 안 오고 나 혼자 잘 살자고 왔는가 싶더라고요. 딸 생각이 나고 우울증이 심해서 방황하는 식이 됐어요. 그러던 중 친구가 노래 교실에 가보자 해서 갔는데 거기서 이렇게 친구들도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하면서 제가 이렇게 변화된 거예요. 그전에는 말하기도 싫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싫고 그랬는데 노래를 하면서 힐링이 되고 기다리게 되고 건강도 좋아졌어요. 하루하루 다니다 보니까 노래도 잘하게 되고 계속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지금은 내 친정집이고 내 집인 것 같아요.

이장복 씨의 거주지는 경기도 화성인데 초창기 물망초 사무실은 서울 사당 쪽에 위치해 있어서 가는 데만 2시간 30분이 걸렸답니다. 매주 금요일, 요일은 정해졌지만 합창 연습이 오전일 때도 있고 오후일 때도 있었기에 장복 씨는 합창 연습에 따라 근무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오전 연습일 때는 오후 근무를 하고, 오후 연습일 때는 오전 근무를 하며 합창 연습에 참여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는 있었지만 음악회 무대를 생각하면 연습에 빠지거나 포기할 수 없었고 오히려 더 큰 즐거움이 생긴다며 장복 씨는 활짝 웃습니다.

(이장복)우리가 이걸 정말 1년 내내 연습해서 노래 불러서 단 한 번의 연주회로 가는데 그걸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즐거운 거예요. 저는..

음악회에서 선보이는 노래 모두가 소중하지만 장복 씨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노래를 ‘집밥’을 꼽았습니다.

(이장복)북한에서는 집밥에 대한 특별함이 없거든요. 대충 먹고 없으면 굶기도 하고 다른 거 장사해서 먹기도 하고 그래요. 여기 오니까 먹을 게 많고, 집밥 먹겠으면 먹고 나가 먹고 싶으면 나가 먹고 그러잖아요. 얼마나 생활이 좀 발랄하고 좋아요. 그다음에 엄마야 누나야 노래도 좋고 다 좋아요. / (리포터) 그중에서도 집밥이라는 노래가 가장 좋다~

이장복 씨가 꼽은 이번 물망초음악회 최고의 노래 ‘집밥’, 어떤 노래인지 잠시 감상해 보시죠.

(현장음)노래 - 집밥

노랫말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가 합창 단원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장복 씨는 ‘집밥’이라는 노래를 최고로 꼽았지만 다른 단원, 최정선 씨는 ‘못 잊어’라는 노래를 꼽았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가족을 생각하고 같은 상처가 있는 단원들이 화합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 많아도 고향은 잊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게 합창 단원들의 가장 큰 변화이자 성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단원들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7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데요. 그 중 한 사람, 최정선 씨…

개성 출신의 정선 씨는 올해 78살입니다. 합창하면서 다양한 드레스도 입어보고 간단한 동작이지만 율동도 해보며 더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최정선)이번에는 티셔츠를 화려한 색깔로 입게 되니까 너무 좋았어요. 더 색달랐던 것 같아요.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서 합창단원들이 너무나도 입은 옷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단원들 모두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까지, 보는 사람도 밝아지는 다양한 원색의 셔츠를 입었습니다.

(공연실황)물망초 합창단 노래 – The sound of music

합창단이 준비한 노래는 영화음악 ‘Sound of music – 음악의 선율’ 인데요. 관객들은 단원들의 경쾌한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며 함께 박자를 맞춥니다.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노래인데요, 노래 들려드리면서 인사드립니다. 물망초 음악회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주에 전해드릴게요.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이현주,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