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국의 월북과 북한의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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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인권관련 조약들과 협약에는 연좌제, 즉 가족 중 어느 누구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연대적으로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제도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연좌제는 왕족 통치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아시아 나라들에서 시행된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왕조에 반기를 둔 사람에 대해 본인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깡그리 제거함으로써, 복수의 근원을 원천적으로 뿌리를 빼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본색원’ ‘3대멸족’이란 무시무시한 말도 생겨났습니다.

현대 국가들은 연좌제를 페지했으나, 북한은 여전히 연좌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7월 6일 북한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는 한 70대의 풍채좋은 노인이 북한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찾아왔다고 선포하는 영상이 실렸습니다.

올해 73세로 알려진 고 최덕신의 아들 최인국이었습니다. 검은색 도리우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은테 안경을 낀 최인국은 고생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마디로 때깔도 좋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연합뉴스 녹취> 최인국: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 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희 심정은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인국씨는 북한에도 널리 알려진 최덕신의 둘째 아들입니다. 최덕신은 아내 류미영과 북한으로 망명할 당시 아들 최인국 등 가족을 모두 남한에 두고 망명했습니다.

최덕신도 1986년 북한으로 망명하면서 ‘민족의 얼’이 살아 있는 공화국의 품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최인국이 북한 매체에 나타나 북한 영주 소식을 밝히면서 최덕신 일가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탈남자 가족이 된 셈입니다.

외부 세계에서는 최인국의 북한 영주 소식보다는 그가 어떻게 부모가 평양으로 망명했는데도, 처벌받지 않고 나이 70에도 풍채가 좋은 노인으로 건재해 있었는지 더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최덕신은 남한군 군단장과 외무부장관을 지내다가 박정희 대통령과의 불화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를 원형으로 한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이 1990년초에 만들어져 북한에서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최덕신은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지내다가 1989년 사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 김동남씨는 최인국의 북한 입국은 북한으로서는 선전용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합니다.

김동남: 저도 SNS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최인국이 북한에 갔다고요. 우리로서는 떠오르는 것도 하나도 없는 인물이 왜 갔는지 그건 북한의 선전물 대상이라고 보고, 그 나이에 지금 북한에 가서 큰 선전물 대상이 될 것이고요.

그가 혼자 간 것도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고, 남한에서 비법적으로 갔기 때문에 앞으로 가족을 두고 논쟁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가족들 남겨두고 간 것도 북한에서 앞으로 또 어떤 모략을 꾸밀지 모르지요. 남한에서 합법적으로 보내지 않을 수도 있고, 보낼지는 나중의 일이지만 북한으로 보면 정말 아주 한국에 대고 좋은 선전 대상이지 않습니까,

김동남씨는 북한영화 ‘민족과 운명’에서는 최덕신이 김일성의 광폭 정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데 이용되었고, 지금의 최인국은 김정은 정권을 선전하는 데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동남: 요즘 대북제재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절대로 북한에 대고 머리를 돌리지 않을 때, 그 한 인간이 물론 북한이 좋다고 갔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은 크게 선전할 것이고, 최덕신의 아들이 왔다고요. 최덕신은 그래도 조그마한 이름이라도 있었지만, (최인국)그 사람은 조국을 위해서 바친 것도 없고, 제 아비가 바쳤지 그 아들은 덕만보고 지금에 간 것은 완전히 선전물 대상이지요.

최인국이 월북하면서 그가 혼자 간 이유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동부에 정착한 탈북자 안드레이씨는 “최인국은 자유민주주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해 산것만해도 남한에 감사해야 한다”면서 “이젠 남한에서 인생말년에 별 볼일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서 안일한 인생을 보내자고 월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덕신은 북한 김일성 회고록에도 등장합니다. 더욱이 최덕신을 원형으로 한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에도 등장하는데요.

최덕신은6.25 동란때 남한의 편에서 수많은 인민군을 죽이고,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군단장과 육군사관학교 교장, 남한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악질 반공분자였습니다.

김동남: 우리가 그때 영화를 볼때도 최덕신이 전쟁터에서 비록 사람을 죽이고 조국(북한)을 반대했지만, 김일성의 배려에 의해 영화에서는 고향을 그리는 모습을 부각시켰고, 죄를 짓고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식으로 선전했지요. 우리가 보기에 아, 저 사람은 전쟁터에서 북한 군인들을 그렇게 죽였어도 그 죄는 하나도 묻지 않고, 사랑하고 사회주의 조국에서는 다시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고 봤지요.

최덕신은 서독주재 한국 대사를 지냈다가 박정희 정권과 불화를 빚고, 1976년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어 미국 적응에 실패하고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1986년에는 북한에 물러 앉게 됐습니다.

이때 북한은 김일성의 광폭정치를 선전하는데 최덕신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최인국은 최덕신의 아들이라는 사실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더욱이 최덕신이 남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북한으로 갔기 때문에 연좌제로 처벌받을 법도 했으나, 이번 평양공항에 비쳐진 최인국의 모습에서 고생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김동남씨는 북한 주민들이 최인국의 모습을 통해서도 남한이 자유롭고 연좌제가 없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김동남: 남한 실정과 북한 실정은 원래 차이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가라고 해도 안갑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증거가 없으면 붙잡고 하지 않으니까, 자기 표현과 행동을 마음대로 하고, 그러나 북한과 같은 곳에서는 하루밤에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 가지요. 연좌제라는 것은 독재국가만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아닙니까, 다른 나라에는 말자체가 없습니다. 가족관계를 갈라놓고 연좌제로 처벌하는 곳은 오직 북한밖에 없지 않습니까,

현재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와 이종 사촌을 비롯한 친척들도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김정은도 북한법으로 치면 연좌제로 능히 처벌되어야 하는 탈북자 가족인 셈입니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과 그의 가족은 북한 법의 구속을 안 받는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시 김동남씨와의 대화입니다.

질문: 김정은의 친척들이 북한이 그토록 ‘철전지 원수의 나라’라고 미워하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좌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보십니까,

김동남: 북한은 수령에 대한 세뇌교육을 했기 때문에 3대째 그 누구도 반박도 하지 못합니다. 독재자들의 정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가족은 국가에서 내놓은 법은 지키지 않고, 자기 가족은 처벌받지 않고 독재자만 살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처벌받고 이건 북한에만 있는 특권이지요.

질문: 그러면 남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연좌제를 보셨습니까,

김동남: 없지요. 그런 것은 전혀 볼래야 볼수도 없고 어디 뉴스에도 못보았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본도 그렇고, 비록 선진국이 아니라고 해도 동남아지역 나라들에도 뭐 가족이 잘못되어도 한 본인만 처벌받고 다른 친척들은 처벌받지 않습니다. 가족관계를 갈라놓고 연좌제로 처벌하는 곳은 오직 북한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북한, 연좌제를 폐지하고 더 이상 한 사람 때문에 다른 가족이 고통받는 연쇄적 사슬을 끊어야 국제사회도 정상국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진행에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