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이 최고인민회의에서 ‘평양어 보호법’이라는 법을 채택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북한의 고유어를 보호하자는 취지같은 데 이미 북한 전역에 뿌리내린 남한말 사용을 막자는데 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남한 드라마는 평양 고위층들과 지방의 간부, 중산층들 속에서 많이 유통되었기 때문에 남한말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간부들과 그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1966년 주체성을 보장한다며 남한말과 구별되는 평양말을 만든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한류를 타고 남한의 발전상이 북한에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서울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이를 법으로 막겠다는 겁니다. 통일을 주장하는 북한당국이 오히려 분열을 추구하고, 가장 초보적인 인권인 말할 권리까지 통제한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 이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난 17일부터 이틀동안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최고인민회의는 미국의 의회에 해당하는 입법기관입니다. 이 회의에서 북한은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에 관한 남한 언론 YTN 보도를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YTN 22일자/ 북한아나운서] : (북한)우리의 사상과 제도, 문화를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 담보를 마련하는 데서 실천적 의의가 있다고 인정하고….
북한이 아직 시행령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남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서울말이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치겠다는 겁니다. 또한 자신들의 표준어인 평양말을 사용하지 않는 주민들을 법으로 단속하겠다는 의도로 남한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조한범 남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평양문화어보호법’은 결국 ‘남한말’, 그리고 외부 사조 유입으로 인한 북한 언어 사용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해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남한 영화와 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유입되면서 남한식 말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통제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겁니다.
<브릿지 음악> 그러면 언제부터 한류가 북한에 유입되기 시작했을까요?
한국문화가 본격 유입된 것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높았던 드라마는 “천국의 계단” “꽃보다 남자” “겨울연가” “유리구두” 등 사랑을 다룬 주제로부터 시작해 역사 드라마 “대장금” “정도전” 등 대하 드라마도 있습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이런 드라마들은 간부 자녀들과 부유층 사이에서 ‘알판’이라는 은어로 통하며 서로 돌려보았고, 거기서 나오는 남한 말투를 따라하고 심지어 남한 말투를 잘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겁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2008년 황해도의 러시아벌목장에 파견됐던 노동자들을 통해 북한 보위부원들도 남한말을 곧잘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50대 탈북민: 내가 2008년도에 새로 러시아에 들어온 사람들이 황해북도 사람들인데, 그 사람이 말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더라구요. 요즘 한국말하는 게 추세라고 예를 들어 사람들이 버스칸에 앉아서 한국말씨로 말하는 데 보위지도원이 옆에 서 있다가 “당연하지” 라고 하더래요. 그 정도로 한국 말을 많이 쓴대요. 보위원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니까, 그런말을 쓰겠지요.
그 보위원이 사용했다는 “당연하다”는 말은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한 남한에서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하는 ‘오빠’라는 말도 북한에도 유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오빠’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남자 친구를 부를 때 ‘동무, 동지’라고 부르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0대 탈북민: (북한에서는)동무라고 그러지, “우리 동무 아이가” 이렇게 말하지. 우리 아버지 꼴 되는 사람들은 ‘옛날 우리 친구’가 이런 말을 썼거든요. 그런데 우리 시대 사람들은 친구란 말은 안 쓰지 “나하고 아주 친한 동무가 하나 있는데”라고 말했지요.
한때 북한에서도 ‘친구’라는 말을 썼으나,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평양 문화어로 바뀐 다음에는 ‘동무’나, ‘동지’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또 남한의 속어인 ‘쪽팔리다’라는 말도 북한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50대 탈북민: 쪽 팔린단 말도 한국말이죠. 그거 북한 말로 뭐라고 하냐면 “껍대기 탄다” “이 새끼 껍대기 타게”이러지.
그리고 ‘쪼잔하게 논다’는 말도 북한에서는 ‘쬐쬐하게 논다’로 통하고 있습니다.
50대 탈북민: 쪼잔하게 논다는 말도 한국말인데 북한말로는 쬐쬐하게 논다, 구두쇠, 야, 이거 쬐쬐한 00네라고 하지요.
<브릿지 음악>
그러면 원래 남북은 다른 말을 썼을까요?
남과 북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1966년 김일성 주석은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 데 대하여”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평양말을 표준어로 할데 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친구’라는 말이 사라지고, ‘동지 동무’로 쓰게 되었고, ‘상대하다’라는 말은 ‘대상하다’라는 북한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1960년대 북쪽에서 간헐적으로 쓰이던 서울말을 모두 지우고 평양어를 만들었습니다. 결과 북한 평양어는 북한식 사회주의적 이념과 북한 사회 특유의 제도와 풍물을 가리키는 어휘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남한은 세계화에 깊이 편입되면서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보급된 결과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가 가속화되었다고 한국언어학계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류가 북한에 들어가면서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발전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서울말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브릿지 음악>
그러면 왜 북한은 평양어 보호법까지 만들었을까요.
북한당국은 근 2년간 남한말 사용을 통제해왔으나 여전히 근절시키지 않자 보다 강도높은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강도높은 통제를 벌였습니다. 남한의 하태경 국민의 힘 국회의원은 2021년 북한이 “남쪽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혁명의 원수라고 규정하면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2021년 국회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볍을 채택하고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한말 사용이 근절되지 않자, 이번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한 겁니다. 원래 북한에서 통제는 대부분 비판과 호상비판, 사상비판, 사상투쟁으로 승화됩니다. 여기서 진전이 없을 경우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북한에서 서울말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고 탈북민은 말합니다.
50대 탈북민: 감옥에 보내겠죠. 사상투쟁회에 참가할 거고, 그 다음에보위부에 등록될 거고 시범껨이 제일 세지요. 제일 무서운 게 시범껨이지 않아요? 맨 처음에 걸리는 사람들은 한국말 써가지고 정치범관리소에 가는 현상도 있겠지요.
하지만, “북한에서도 오빠라는 말은 자신의 친 오빠에게도 쓴다”면서 “그 법적 처벌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도 논란거리”라고 말했습니다. 문화는 사상,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 양식”이라고 인터넷 위키백과는 정의합니다. 결국 인간은 발전하는 세상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세계 10위권의 남한경제와 세계를 주름잡는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한류에 매혹된 북한 주민들의 한국어 사용은 어찌보면 순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은 남북통일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남한과의 차별화를 더 추구하고 있다고 탈북민들은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무작정 남한말을 쓰지 못하게 통제하면 북한 사회는 오히려 역사를 뒷걸음치는 격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50대 탈북민: 자기 오빠 보고도 오빠란 말 하지 말라는 소리지, 오빠란 말을 못 쓰게 한다면 그러면 ‘오라버님’이라고 써야 되는데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네.(웃음)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사 작성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