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북한 주민이 모르는 고르바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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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지난 8월 30일 미하일 고르바쵸프 전 소비에트연방 대통령이 9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고르바쵸프는 소련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 동서독 통일을 용인해 서방에서는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평가받지만, 공산진영에서는 그를 ‘배신자’라고 혹평하는 등 엇갈리고 있습니다. 북한도 구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자 그 책임을 고르바쵸프에게 돌리고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과연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고르바쵸프 전 소련대통령의 생애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러시아의 타스 통신, 스푸트니크 통신 등 러시아매체들은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장례식이 거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남한 연합뉴스 보도를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연합뉴스 녹취/ 9월4일>소비에트연방,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이자 냉전 종식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해외 언론들은 고르바쵸프 장례식이 수천명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치뤄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르바쵸프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뤄지지 않았고, 현 푸틴 대통령은 바쁜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고르바쵸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갈립니다. 추모객들은 그를 “러시아를 민주화하고 개방시킨 인물”로 기렸다고AP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현 러시아 지도부가 고르바쵸프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지 않은 것은 그의 유산을 기리는데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고 이 통신은 해석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국가들은 고르바쵸프를 ‘냉전해체의 주역’이라고 평가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냉전체제를 종식한 주역인 그의 사망에 “용기 있는 지도자”였다고 추모했습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도트위터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던 시기에 소련을 개방하려는 그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으로 남아 있다”고 적었습니다. 고르바쵸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근 40년간 지속되었던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핵전쟁 위협을 줄이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국가들과 소련을 앞세운 공산국가 대립은 극심했습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도 냉전의 산물이었습니다. 핵무기 개발과 군비경쟁을 둘러싼 양진영의 군사적 대립은 물론 정치와 이념 대립도 극에 달했고,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도 서로 따로 치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1985년 3월 소련공산당 총비서에 오른 54세의 고르바쵸프의 목표는 소련경제의 부흥과 세계 평화였습니다. 고르바쵸프가 물려받은 소련은 부패했고, 사람들은 알코올에 찌들어 사회질서는 심히 문란했습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고르바쵸프는 페레스토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내 반개혁파의 반발에 부딪쳤고, 발트해 연안 3개국의 독립요구, 소련의 영향권 하에 있던 동구라파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정권이 축출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금주 캠페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알콜 판매로 엄청난 세금을 걷던 소련 경제도 휘청이게 되었습니다. 소련 정부가 금주 정책을 실시하자,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러시아인들은 아세톤, 메탄올과 같은 건강에 해로운 알코올 대체제를 마시고 중독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소련의 보건의료 분야 지출에도 심각한 부담을 안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고르바쵸프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냉전 종식과 핵무기 감축 등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만나 양국 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초석을 쌓았고, 1989년 12월에는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과 사실상 냉전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198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철수시켰고, 1989년 말에는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었고,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에서 연쇄적으로 사회주의 간판을 내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동서독 통일을 수락했고 이를인정받아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소련의 해체를 반대하는 구 소련 국민들과 공산 진영에서는 고르바쵸프를 ‘배신자’로 혹평합니다. 북한도 고르바쵸프를 비판하는 방송을 내부적으로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승철 대표 : 1991년에 소련이 망했을 때 북한도 독재 체제이니까,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소련의 지도자가 수정주의 배신을 했다" 뭐 이런 식으로 고르바쵸프를 언급을 했는데, 간부 강연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 강연에서는 고르바쵸프를 강조하지 않았어요.

소련이 해체된 해인 1991년 러시아 벌목공으로 시베리아에 파견됐던 김 대표는 당시 소련의 시골 상점에서 사탕 과자, 기름 등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소련은 망했어도 여전히 북조선 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떠올렸습니다. 공산 진영에서는 고르바쵸프를 나쁘게 평가하고 있지만, 이와 달리 개혁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조지 부시 미행정부에서 러시아 정책을 담당했던 다니엘 프리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가능한 일, 즉 소련을 개혁하려고 했다”며 “비록 실패했지만 조국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지금도 고르바쵸프가 없었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통일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통일되더라도 평화적인 통일이 아니라 피를 흘렸어야 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군화발에 짓밟혀 위성국가로 되었던 로므니아, 뽈스까,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 벌가리아 등 나라 엘리트 지식인과 군인, 종교인, 사업가, 토지 소유자,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노동자와 농민들은 스탈린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고르바쵸프에 대해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 :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독재에 의한 탄압, 압박, 인권유린, 경제위기와 부정부패를 이해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통해 공산권 세계를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 놓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 인민을 포함한 동구라파 사람들은 언젠가 자유를 되찾을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르바쵸프 전 대통령이 주목받는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옛 소련의 영광’을 꿈꾸는 푸틴은 올해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했고, 지금까지 알려진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사망자 9천명, 러시아군 사망자, 4만5천명,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600만명이 넘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고르바초프재단을 통해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며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푸틴은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르지도 않을 뿐더러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나왔습니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은 선전 선동에 취약하다”면서 “사람들이 정권이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을 하게 되면 은밀하게 숙청하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내놓고 말을 하지 못한다” 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 : 고르바쵸프는 변화를 위해서 시발을 뗏는데, 러시아가 아직도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버린 것 같지만, 내용에 들어가서는 버리지 않고 계속 인민들을 통제하고, 탄압하고, 여론 조직하고, 심리전 하고 주민들을 세뇌하는 등 러시아는 아직도 한단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러시아 사람들이 못살고, 푸틴과 같은 독재자가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동서 냉전의 종식을 이끈 고르바쵸프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세계는 러시아에 전쟁이 아닌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이 보장되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미하일 고르바쵸프 전 소련 대통령의 생애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기사 작성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