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백암령만 넘자” 이 구호는 양강도 대홍단군 감자농장에 집단 배치된 제대군인들의 소박한 바램이라고 합니다. 과거 양강도 출신 처녀들의 구호였다면 지금은 대홍단 감자농장에 무리배치되는 제대군인들과 그 아내들의 구호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홍단 감자농장에 제대군인들이 첫 봇짐을 푼때로부터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1999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홍단 감자농장을 세계적인 감자농장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세우고 제대군인 1천명을 투입하면서 감자농사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와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지어주었다는 대홍이와 홍단이 이름이 대홍단벌에 넘쳐난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지만, 산설고 물설은 고산지대 벌판에 제대군인들이 정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고향으로 도주한 제대군인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북한은 또 제대군인들을 ‘방침제대’란 명목으로 투입한다고 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북한의 방침제대와 남한 제대군인들에 대한 대우를 비교해보겠습니다.
[한국국방 TV 녹취]: 22일부터 이틀간 박람회장을 방문한 장병들은 2만 여명. 국방부는 국가에 충성한 군 장병들을 성공적인 취업활동을 위해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김혁태 과장/ 국방부 전직지원정책과): 새로운 일자리, 본인이 갖고 싶은 일자리에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국방부 및 유관부처에서 적극 우리 제대군인들을 위해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녹음은2017 년에 제대를 앞둔 남한 군 장병들의 제대후 취업할 수 있도록 알선하기 위해 취업 박람회, 즉 취업 전람회를 조직했다는 한국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한국국방부는 제대한 이후 군장병들이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한국 산업인력공단, 즉 북한으로 치면 노동과와 같은 국가기관과 협력하에 취업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군 장병들은 국내 취업뿐 아니라 해외취업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한국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설명합니다.
[한국 산업인력공단 관계자]: 꼭 국내취업만 눈을 돌리지 마시고 해외로 눈을 돌려서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남한 육군 장병의 군복무 기간은 현재는 21개월, 2020년 부터는 18개월, 즉 1년 반으로 줄어듭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제대군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학으로 가거나, 또는 취업을 할 수 있습니다. 취업을 하게 되면 일한 것 만큼 노임(월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남한 군인들의 군복무 기간과 제대후 진로는 북한 군인들과 많이 다릅니다.
우선 북한군인들은 10년동안 의무제로 군복무를 해야 하고, 경보병과 호위사령부 등 특수병종에 복무했던 제대군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기 집으로 가는 경우가 드뭅니다.
제대를 앞둔 군인들이 가장 마음을 졸이는 순간은 ‘방침제대’ 명령입니다. 즉 김정은의 명령으로 탄광이나, 광산, 감자농장과 같이 어렵고 힘든 분야로 무리배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방침 제대는 대홍단 감자농장을 들 수 있습니다.
199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홍단벌에 세계적인 감자농장을 건설한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인력을 채우기 위해 제대를 앞둔 군인 1천명을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준 제대군인들 가운데 도주자가 발생하자, 2015년과 2016년 사이에도 천여 명의 제대군인들을 양강도 대홍단군 감자농장으로 집단 배치했던 것으로 양강도 출신 탈북민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 양강도 소식통은 2014년에 2백여명, 2015년에 450여명, 그리고 2016년에 300여명의 제대군인들이 대홍단군 감자농장에 속속 배치됐지만, 대부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고향이나 처가가 있는 쪽으로 도주하는 제대군인들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은 제대군인들이 현지를 쉽게 이탈하지 못하도록 후보당에 입당시켜 보냅니다. 그러나 어떤 제대군인들은 6개월에서 3년동안 노동당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양강도 대홍단군에서 노동력을 해결하지 못하고 제대군인들을 연이어 투입하는 것은 이 지방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출산율도 낮았고 영양실조로 일찍 사망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도 대홍단 벌에 감자 흉년이 들어 제대군인들의 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본의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양강도에서 지난달 20일 감자 1킬로그램은 북한돈 2천원으로 올라 시장에서 일시적 혼란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감자 농사가 안된 것은 올해 여름에 폭우 등으로 피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지에 적응하게 될 주민들의 심리적 동요가 클 것이라고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말했습니다.
북한은 기존에 있던 제대군인들이 도주하면, 다른 제대군인들을 재투입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의 방침제대와 남한군인들의 제대에 대해 탈북자 김동남씨와 대담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지금 대홍단 감자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대군인들입니다. 이 제대군인들은 2000년초에 집단 배치된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거기가 싫어서 달아나면 그 빠진 자리를 다른 제대군인들로 채운다고 합니다. 북한의 군인들은 10년씩 군사복무를 하고 “이젠 집으로 가게 되겠구나” 하고 기다리는 찰나에 무리배치를 당하는데, 혹시 이런 무리배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김동남: 우선 북한에는 집단적인 무리배치가 종종 있지요. 방금 이야기 한 것처럼 대홍단 감자농장에 노력 배치를 하자고 하자면 그 지방 사람들로는 부족하니까, 집단적으로 제대를 앞둔 군인들을 밀어 넣어 줍니다.
대홍단 벌은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약 2~3km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멉니다. 이걸 어떻게 사람이 인력으로 합니까, 기계가 해야 하는데, 경제가 따라가지 못하니까, 북한에는 그렇지 못하니까,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요.
질문: 집단배치, 무리배치라는 것은 인민군대에서 종종 나타나는데, 제대군인들을 탄광, 광산, 발전소 건설장에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군인들이 10년동안 청춘을 바쳐 군대복무를 했는데, 무리배치되어 가는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김동남: (실망)그거야 말할 수 없지요. 벌써 일단 제대 명령을 받고 집단 배치지가 정해지면 문건은 도에까지 갑니다. 거기에 이름만 대면 바로 바로 다 하도록 명단에 이름이 다 있는데, 제대군인들의 마음 속에서 눈물이 나지요. 10년동안 군대생활을 힘들게 하고 또 가족과 헤어져서 독신생활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여자를 얻고 가정을 꾸려야 하고 앞이 캄캄한거지요.
질문: 보통 제대군인들의 꿈이 입당하는 것 아닙니까, 입당하고 대학추천 받는 것이 군대 가서 10년 동안 복무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인데요. 이렇게 집단 농장, 탄광, 광산으로 무리 배치되어 가는 그 심정은 참 안타까울 텐데요. 그래도 배치지로 갈 때 그 사람들에게 후보당원증은 주는 것 같더라구요.
김동남: 그렇지요. 그런데 그게 아주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슬과 같은 것입니다. 저도 군 복무를 하고 후보당에 입당하고 왔는데, 우선 노동당 생활문건이 모두 배치지에 갑니다. 그런데 그 배치지로 가는 동안에 도에 막대한 인맥이 있으면 문서를 빼낼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웬만한 사람들, 시군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도에 인맥이 있을 수 있습니까, 혹시 100명 가운데 한두명이나 인맥이 있겠지요. 어차피 배치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안가겠다고 뻗쳐도 어떻게 안갈 수 없습니다.
질문: 그런데 방침제대, 즉 김정일 김정은의 방침으로 가는 제대군인들이라면 거기서 빠지면 걸립니다. 유일사상체계에 걸리는 거지요. 그러면 남쪽이나 미국의 경우,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어떻습니까,
김동남: 일단 남한에서는 우선 자기가 희망하는대로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의 경우에는 제대될 때에는 그 걱정 때문에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거지요. 북한에서 사관장 같은 사람들은 대학을 가는데, 일반군인들은 대체로 집단 배치 당합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는 거지요.
혹간 감자농장, 탄광, 광산으로 무리배치되었다가 빠져나오는 제대군인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은 거의 없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진행에 정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