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용소 추상작품 폴랜드 현대미술관에 전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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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치범 수용소와 이름없이 숨진 영혼들 묘사한 추상 작품 6점 전시한 김공산 작가 인터뷰-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추상적으로 형상한 미술작품이 옛 공산국가였던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바 현대 미술관(Ujazdowski Castle Centre of Contemporary Art)에 전시됐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과 이름없이 숨진 꽃제비들을 묘사한 작품은 삼베 조각을 불로 태우는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김공산 작가는 2018년 영국에서 있었던 'Passion For Freedom Awards' 전시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미술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그 중 북한인권 실상을 담은 추상작품이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입니다.

이 전시회는 8월 27일부터 내년 1월 16일까지 진행되게 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이번 시간에는 김공산 작가를 전화로 연결해 작품이 전시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김공산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김공산 작가: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바, 북한에서는 와르샤와라고 부르는 데요.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뽈스까의 수도죠. 이 옛 공산국가에서 Political Art 즉 정치 예술이라는 미술 전시회를 통해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표현한 작품을 출품 하셨는데요. 김 작가님의 작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까?

김: 6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자: 먼저 이 전시회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 유럽사람들은 인권 자유 같은 선진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정치적인 전시회는 없어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영국, 덴마크, 폴랜드에서 큰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이슈,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슈들을 다룬 예술가들,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는 기획 전시회인데, 전세계적으로 29명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 제가 거기에 포함된 것입니다. 물론 정치 뿐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탄압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전시회입니다.

기자: 전시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김: 이미 8월말부터 시작했고요. 내년 1월 중순까지 열리게 됩니다.

기자: 그러면 전시된 작품들은 그 기간에 가서 볼 수 있는 겁니까?

김: 네 아무나 가서 다 볼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 정치범 수용소와 꽃제비 실상을 담은 작가님의 작품이 전시되게 된 어떤 동기가 있습니까?

김: 제가 10년 넘게 북한을 주제로 작품을 해왔는데, 2018년도에 영국의 인권단체 'Passion For Freedom'에서 자신들의 10주년 행사 기념으로 예술종합적인 미술전시회 공모전을 냈습니다. 이것도 세계적인 작가들 상대로 했는데, 제가 거기에 응모를 했습니다. 저의 작품은 북한 수용소에 관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분들이 그 작품에 특별상을 수여하고 저를 거기에 초대를 했는데, 그때 제가 참여하지 못하고 작품을 보내고 받기만 했습니다. 그후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그 다음에는 덴마크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서 재작년에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폴랜드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영국의 'Passion For Freedom'에 출품했던 작품이 특별상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기자: 작가님의 작품이 유럽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김: 작품의 6개 중에 3개가 정치범 수용소 작품이고요. 조각처럼 마대를 손으로 말아서 형태를 만든 것인데요. 그 작품의 특징은 형태가 없는 추상 작품입니다. 그냥 그대로 추상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달지 않으면 그게 무슨 작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목과 기법을 보면 아, 이게 작품이다고 알게 됩니다. 제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제가 북한 작품을 하긴 해야겠는데, 북한에 가서 실상을 본 적이 없고, 또 실제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만나서 들어본 소리도 없고 매스컴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소식은 아주 많지만, 실제로 제가 경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걸 사실화로 그리거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결국은 추상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추상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고 그 아픔과 고통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중 태우는 방법을 제가 찾게 되었습니다. 이 태운 작품을 사람이 보게 되면 마음이 굉장히 어두워지고, 충격을 받고,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 분위기에서 북한과 연결하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북한의 모든 사실들과 오버랩이 되면서 각자의 모든 사람들 안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작품을 만들 때 느꼈던 그 느낌을 보는 사람도 느끼게 되는 그런 작품인데, 세 작품은 수용소 작품이고, 두 작품은 북한에서 종교탄압으로 돌아가신 분들, 기독교인들인데 순교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작품이고, 또 다른 한 작품은 이름없이 죽어간 분들, 그 이름없이 죽은 분들이 셀 수 없지 많지 않습니까? 그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 수 천개를 하나하나 태우는 작업을 해가지고 벽에 크게 걸었습니다. 그 작품이 제일 큰 작품인데 이렇게 6점 나가 있습니다.

기자: 네, 태우는 작업이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 네, 굉장히 어렵습니다. (울먹이며)구멍을 내는 것이 있고 밖에서 그슬리는 작업이 있는데, 마대는 천 중에서 가장 거친 천이 마대인데, 이 마대는 인간의 가장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걸 동글동글하게 말았어요. 단단하게 말아서 롤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이분들의 인생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 천개, 제가 수 만개는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많이 만들고 나서 그것을 캔버스나 나무 판넬에 붙여서 그것을 토치(torch)라는 것으로 밖에서 태웁니다. 그슬리거나 타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멍을 내는 작품들은 하얀 캔버스를 잘라서 초불로 태웁니다. 그게 타면서 여러가지 모양을 내면서 마대가 탑니다. 그렇게 캠프 작품도 나왔고, 이름없이 사람들의 죽음을 표현하는 작품도 나왔는데, 그렇게 태울 때 눈물이 많이 납니다. 연기가 많이 나서요. 그래서 울면서 합니다.

기자: 정치범 수용소나 꽃제비를 담은 이러한 주제는 일반인들은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그리고 상상하기 쉽지 않은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 네, 저희 아버지가 실향민이셨고,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보면서 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제가 작품을 하게 되면서 뭘 작품에 담을 것인가, 작가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게 작가의 의무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해왔고, 제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통일을 바라는 그 마음을 작품에 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크로싱'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통일에 대한 작품은 '생수의 강'이라든가, '임진강'이라든지 이런 강 작품을 해왔는데, 제가 '크로싱'을 보고 나서 '아, 고난의 행군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탈북하다가 두만강, 압록강을 넘다가 죽고, 중국에 숨어살고 있구나'이런 사실들을 갑자기 다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체를 하지 못해서 "아, 나는 작품 밖에 할 게 없구나"하고 그때부터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태운 게 나온 겁니다.

기자: '크로싱' 영화는 남한에서 제작된 영화인데, 거기서 영감을 받으셨군요. 그런데 이번에 전시회 측에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도움도 많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김: 네 주최측에서 도움을 조금 준 게 아니라, 전부 다 해주었습니다. 그 분들이 엄청난 무게의 작품을 비행기로 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운송료, 보험 등을 자기들이 부담하고, 집에까지 배달해주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막식에 참가할 때 경비도 다 대주고 호텔 비용도 다 대주겠다는 것을 안받았습니다. 어쨌든 모든 작가들에 대한 비용을 다 대주었다고 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작품을 모두 몇 점을 창작했습니까?

김: 제가 2009년에 (워싱턴 DC소재의) Arts school을 졸업하고, 제가 만든 게 약 30점이 됩니다.

기자: 만약 이 작품들이 판매가 되면 그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하려고 하십니까?

김: 글쎄요. 제 작품을 사려고 했던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그 작품들을 집에 걸어 놓으면 그 북한 분들의 영혼들이 자기 영혼을 너무 눌러서 자기가 너무 살기 힘들고, 잠자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서 걸어놓을 수가 없어서 못 사겠다고 하셔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개인들이 사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예를 들어 만약 어떤 박물관에서 계속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서 사겠다고 하면 팔면 좋지요. 하지만 아직 그런 곳은 없습니다. 만약 이걸 어느 박물관에서 산다고 하면, 저는 북한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분들, 선교하는 분들을 위해서 후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려고 합니다.

기자: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 지금처럼 계속 통일되는 그날까지 추모 작품을 할 것이고요. 그리고 통일된 후에는 밝은 작품이 되겠지요. 그 때는 아마 태우는 작품을 안할 것입니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와 현대 미술관에 북한 인권실상을 담은 미술작품이 전시된 소식과 김공산 작가로부터 작품이 전시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사이방송 정영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자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