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개선에 도움되는 일 하겠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발표한 북한 제3노동교화소에 대한 분석보고서 작성에서 자문역할을 수행한 탈북민 김두현씨로부터 토성리 교화소에 구체적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신의주가 고향인 김두현씨가 미국으로 오게 된 과정과 현재 하고 있는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김두현씨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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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북한인권위원회 자문위원 탈북민 김두현 씨.

김두현: 네 안녕하세요.

기자: 현재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를 해주시죠.

김두현: 네, 저희가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여러가지가 있긴 한데요. 저는 지난해부터 그곳에서 일해오면서 리서치 프로젝트도 하고, 기사 번역도 하는 등 여러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미국에는 언제 왔습니까?

김두현: 2015년에 유학생 비자로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한국에 가서 한 5년 살았지요. 그리고 미국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그리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오게 된 것입니다.

기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신 겁니까?

김두현: 네 저는 유타주에 있는 밸리 유니버시티라는 곳을 졸업했고요, 제 전공은 국제정치학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온 것이 유타이고 이곳에서 대학도 갔고 올해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기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인권관련 활동을 하는 것을 북한 청취자분들이 들으면 부럽기도 하고 또 궁금하고 호기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김두현: 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특히 탈북자들에게 있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아시다싶이 북한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필요도 없었고 영어를 배워 뭘 합니까? 영어로 된 책을 읽을 기회도 없고, 영어로 된 영화를 볼 기회도 없고, 해외에 나갈 기회는 더더욱 없고,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이고 그렇다고 학교에서도 영어 대충 하면 다 패스 하지 않습니까. 선생님들 자체가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있어요. 국어, 수학이라든지, 혁명력사 같은 것이 더 중요하지요.

저도 한국에 처음와서 2~3년 동안 미국에 올 생각을 않하다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진짜 너무 어려웠어요. 한국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서 영국 문화원이라는 것을 운영하는데 그곳에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영어 강의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일이 끝나면 저녁에 그곳에 다니기도 하고, 강남에 있는 사교육 영어학원에도 부지런히 다녔고요. 그런데 한국어를 쓰는 곳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게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자: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셨네요.

김두현: 네, 한국에 있을 때 영어를 정말 빡세게 해도 어느 정도 늘고 안 늘더라구요. 그래서 짐을 다 싸가지고 그냥 무턱대고 미국에 와서부터 몸으로 부대끼고 또 제가 찾은 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다른 언어를 배우자면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요. 언어를 배우는 데 빠르다고 생각이 되요.

기자: 자, 그러면 김두현씨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그리고 북한에서 반미교양도 많이 받았을 텐데 미국에 오니까 어땠습니까?

김두현: 한국에 왔을 때 첫번째 모든 것이 다 충격이었지요. 물론 한국도 미국도 모두 잘 사는 나라이지만 미국에 와서 제가 느낀 첫번째 감정은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아주 많은 부분에서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 역시 미국이 국제사회 리더로서 왜 이렇게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지 느꼈고 시민사회의식, 교육시스템 이런 것들에서부터 미국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주변 미국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희가 북한에 있을 때는 미국 사람에 대해서 반미교양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사람도 아니지요. 그냥 ‘미제승냥이’라고 했지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도 직장 다니면서 미국 사람 만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처음에 와서 미국사람이라는 말보다 ‘미국 놈’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미국인, 미국사람이라는 말이 없어요. ‘미국 놈’이 한 단어예요. 입에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혹시 북한에서 했던 그런 농담 아시죠?

“미국 놈때문이지뭐”, “못사는 것도 다 미국놈 때문이야” 사실 북한에서 학교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일이 좀 잘 안되면 “이거 다 미국놈 때문이야”이런 말을 잘 하지 않습니까?

그런 미국놈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가지고 제가 여기 와서도 “미국놈 때문이야”라고 했다가 저 혼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어요. 그게 사실 미국 사람이 나빠서,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제 몸에 배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굉장히 관대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뛰어나요. 참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이 여러가지 요인이 있긴 한데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궁금했던 부분도 있어요.

평생 제가 미국을 나쁘게 배웠는데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한번 가서 봐야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역시 와서 너무 감동 받았고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 미국에, 그리고 미국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보면 보면 “아 저 사람 사대주의자 다 됐네?”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미국 사람들 덕분에 공부를 다 하고 졸업하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게 다 미국 사람들 덕분인데 북한에 있는 친구만큼 저에게는 미국 친구가 많습니다. 좋습니다.

기자: 자, 그러면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을 지도 모를 북한의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김두현: 네 요즘 너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강냉이 밭, 논밭에 모두 군인들이 보초를 선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고난의 행군시기 있었던 그런 풍경인데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북한 상황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꼭 어떻게해서나 살아남고 또 서로 좀 도와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고난의 행군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도 우리는 그냥 다 지나다녔지 않나요? 다 자기만 사는데 초점을 맞추었지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 그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갔던 사람들, 저를 포함해서 모두 괴물들입니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물론 그런 상황이 오면 안되겠지만, 어떻게하나 인간애가 좀 발휘되어 서로가 보살피고 해서 다 살아 남아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기자: 그러면 앞으로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김두현: 당연히 제가 탈북자이니까 저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고, 운이 좋게도 살아 남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다가 잡혀서 북송되어 감옥에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또 국경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같이 목숨을 걸었지만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와서 공부도 하고 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어떤 미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제가 고향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잊고, 내가 원하는 삶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좀 양심에 찔리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때문에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든지 꼭 제 고향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겁니다.

그게 인권활동이 될 수도 있고, 인권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쨋거나 북한 사람들의 삶을 좀 더 낫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인권 상황이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일을 할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기자: 북한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미국에서 이뤄가리라 기대하면서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두현: 네 감사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미국 유타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미국 북한인권 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 김두현 씨의 활동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진행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