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코로나 위기인데 북한은 왜 미사일 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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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19로 확산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항공, 철도, 버스 등 업종을 일시 중단하면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항공, 철도 운수업이 문을 닫고, 호텔과 극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이러한 업종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50년 만의 최저 실업률을 자랑하던 미국이 코로나 19 사태로 실업자가 14일 현재 1600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달 27일 트럼프 행정부는 약 2조 달러 규모의 코로나 극복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에 서명했는데, 이에 따라 실업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하게 됩니다. 패키지 시행령에 따르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미국인은 최소 매주 600달러, 즉 한달에 2400달러의 실업수당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도 코로나 위기에 따른 경제부양과 실업자 구제금으로 약 4천억 달러를 배정하고 시행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중국은 전세계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 진원지 책임 회피를 위해 “코로나 발원지 기록 조작에 들어갔다”고 미국 CNN 방송이 13일 보도했습니다. 중국 호북성 무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를 중국 당국이 초기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중국 정부는 “코로나 발원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유럽일 가능성이 높고, 지난해 12월 바이러스 발현 이후 발 빠른 대응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코로나 위기로 전세계가 침통한 시기에 미사일 발사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워싱턴 델레스 공황에 기내 서비스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탈북 난민 리사씨를 통해 미국에서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혹시 북한 어디서 오셨는지, 그리고 언제 탈북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 리사: 네 저는 어디서 살았는가 하면 함경남도 단천에서 살았고요. 1997년 12월에 (중국으로)넘어왔습니다.

진행자: 지금 미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김 리사: 저는 미국으로 와서 덜레스 공항에서 기내식을 포장해서 각 비행기에 납품하는 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 청취자분들에게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리자면, 북한에도 평양에 순안국제공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 순안공항에도 음식을 공급하는 업체가 있는데, 그런 음식을 포장해서 전세계로 나가는 비행기들에 공급한다고 보면 됩니까,

김 리사: 그렇지요.

진행자: 그러면 워싱턴 덜레스 공항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리사: 우리 회사는 거의 문을 닫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국내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운행되고요. 그마저도 하루인가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니저나, 수퍼바이저 그분들이 나와서 메꾸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사원들은 다 집에 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리사 씨가 하는 일도 평소와는 많이 줄어들었겠군요.

김리사: 그렇지요. 많이 줄어든 게 아니라 아예 거의 없어졌지요. 우리회사가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동남아 국가로 가는 비행기에 음식을 제공했는데, 코로나가 3월초부터 퍼지기 시작하면서 전부 다 캔슬 되었습니다. 줄줄이 쭉 캔슬 되어 그래서 안되겠구나, 4월에는 집에 있어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서 “집에 다 들어가야 되겠습니다”이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이게 도미노 식으로 많이 무너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그럼 리사씨 경우에는 직장을 떠나서 집에서 격리하고 있는데, 그러면 직장을 떠나서 집에서 격리하다 보면 일을 하지 못하면 생계 문제가 될 텐데요. 그러면 생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김리사: 회사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사이트를 다 배포했고요. 차로 이동할 때 혹시 경찰이나 단속기관원이 단속하면 보여주라고, 회사에서 메시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걸 단속원들에게 보여주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요, 그렇게 다 대비했고요. 그 다음에 직원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회사에 알리라고 했었고요.

진행자: 미국정부가 근로자들이 일하지 못하니까, 일을 못한 것 만큼 국가에서 보수를 주어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소린 데요. 그러면 중학교 초등학교도 다 문을 닫았는데요. 그러면 집에 있는 귀한 아들 탐과 같이 지낼 텐데요. 그러면 탐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김리사: 처음에는 우왕좌왕했는데, 그래서 저는 하루 일과를 써가지고 아침에는 탐이랑 공부하고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이)복습문제도 좀 주고 하니까, 그리고나서 탐이 축구를 좋아하니까, 축구 기술에 대한 것을 동영상을 보면서 익힐 수 있고요. 그리고 집안에 있는 가구를 다 치웠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탐이 집안에서 권투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그 안에서 에너지를 다 소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운동도 하게 합니다.

진행자: 아, 집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해서 운동할 수 있게 했군요. 그럼 8월까지 학교를 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봄학기 공부는 컴퓨터로 공부한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요?(네) 탐은 컴퓨터로 공부하고, 컴퓨터로 친구들과 화상 대화를 할 수 있고 어떻습니까,

김리사: 아이가 공부를 할 때 학급 애들과 컴퓨터로 소통을 하고 선생님과 대화도 하고 괜찮은 것 같습니다.

진행자: 아이와 함께 집에서 지내다가 혹시 밖에 나갈 일은 없습니까,

김리사: 애와 남편과 함께 어제도 프레더릭에 샘물을 떠오려고 산에 갔었는데, 어제도 취나물 캐러 갔었지요.그런데 취나물이 아직은 좀 작더라구요. 민들레를 뜯어서 해먹었고요. 쑥은 없어요. 여기 프레더릭에는 쑥이 없어서 있으면 떡도 좀 해먹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집에서 남편 간식으로 쿠키 같은 것을 만들어서 해주고 그렇습니다.

진행자: 여기 북한에서 먹던 달래나 산나물 같은 것은 없습니까,

김리사: 달래는 많지요. 그런데 미국 달래는 머리가 작아요. (아 참 미국 달래는 머리가 작지요…)희한 하더군요. 그래서 위에 잎만 잘라서 양념장만 해서 먹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북한에 계실 때도 전염병을 겪어 보셨나요? 북한과 미국은 어떻게 다릅니까?

김리사: 당연히 했지요. 콜레라에 저도 걸렸었어요. 1996년인지 97년 중반인지 제가 그때 걸린 것은 아예 제 몸에 있는 물을 다 쏟아내는 것, 그리고 우리 아빠는 발진티푸스 인지 걸렸었고요. 그런데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냥 물을 끓여 먹으라고 했었고요.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지시만 있었지요.

진행자: 그때는 그게 전염병인지도 모르고, 그냥 설사병이라고만 알고 있었고, 그리고 통계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리사 씨는 북한과 미국에서 전염병을 다 경험해 보셨는데, 코로나가 전세계적 위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얼마전 유엔사무총장이 지금 전쟁을 하는 나라들은 지금 당장 멈추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코로나라는 세계적 질병에 다 같이 대응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최근에도 미사일을 자주 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지금은 코로나 시기인데, 무슨 미사일을 쏘는가 하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리사: 그 우리가 1997년에 고난의 행군 때 다 죽을 때도 우리 사람들의 정신을 딴데 돌리려고 전군 전민 준전시 상태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전 아직도 생생해요. 다 굶어 죽는데, 군대들도 전쟁 난다고 미친놈들이라고 했던 생각이 나는데, 그러니까 지금은 내부가 완전히 와해 판이고, 다 죽거나 제가 보기에는1997년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한방씩 쏴 가지고, 내부 결속을 위해서 쏘는 것이지, 뭐 트럼트 대통령, 미국은 상관없다고 봅니다.

진행자: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정신 없는데, 여기다 대고 미사일을 쏘니까, 외부 사회에서 보기에는 지금 누가 북한을 위협하지도 않는데, 왜 미사일을 쏠까 하고, 그렇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은 북한 주민들이 더 잘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자, 코로나 위기 빨리 끝나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리사: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