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최성용 이사장 “천륜을 지키게 해달라”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따뜻한 여름이 지나고 아침엔 찬 기운을 제법 느낄 수 있는 10월도 절반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얼어붙고 이산가족들의 만남의 기약도 예측할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겠지만, 헤어진 가족들의 심정은 다릇습니다. 6.25 전쟁으로 발생한 1천만 이산가족과 더불어 남북 대결속에 헤어진 가족들 중에는 납북자들도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지금도 북한에 끌려간 아버지를 그리는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이사장에 대한 사연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최성용 이사장 :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김정은 위원장한테 호소합니다. 우리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천륜을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55년 동안 아버지 제사상도 못 올린 이 자식의 한을 김정은 위원장이 풀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 55년 전 북한에 끌려간 아버지를 그리는 최성용 이사장입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자유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최 이사장은자유아시아방송국을 찾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색바랜 사진 몇장이 들려 있었는데요. 한장은 1967년 6월 5일 서해 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아버지 최원모씨의 사진이었고, 다른 사진은 북한으로 납북된 31명의 남한 출신 어부들이 원산시와 묘향산을 배경으로 찍은 관광사진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예술영화 ‘혈육’을 보셔 아시겠지만, 그 영화는 고기잡이 나갔다 북한으로 표류되어 간 남한 어부들의 북한 생활을 다룬 것입니다. 당시 영화의 주인공처럼 북한으로 표류되어 간 뒤 돌아오지 못한 남한 어부들은 516명에 달한다고 최 이사장은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납북자들이 북한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한 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금강산과 묘향산 단체관광을 시켰는데, 당시 찍은 사진을 북한 보위부에 거액의 뇌물을 주고 샀다고 최 이사장은 설명했습니다.

최성용 이사장은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자들은 이제는 나이가 많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곧) 돌아가시니까 빨리 생사 확인해야 한다고 남한 정부가 요구해야 한다라고 건의했는데, 북한이 또 남한을‘선제타격하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이산가족, 납북자 문제가 또 뒷전으로 밀리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납북자 귀환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김정은 위원장에게 요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최 이사장 : 이제는 직접 대통령이 육성 으로 김정은한테 천륜 문제를 풀고 생사 확인을 하자고 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지금 송환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것만이라도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가족 상봉 등 차차 해나가자고 직접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 제가 강력하게 요청할 겁니다.

그는 “천륜을 가지고 대화하자”라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일본 납북자 문제와 함께 남한에 있는 516명의 납북자 문제도 함께 해결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하려고 미국까지 왔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최 이사장은 일본 정부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시인을 받았고, 5명을 고국을 귀환시키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수차례 해왔지만 한번도 회담의제로 상정되지 못한 점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습니다. 최성용 이사장이 납북자 문제에 전격 뛰어든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평양으로 송환되던 때였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2000년 9월2일 판문점을 거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평양으로 갔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는 6.25 전쟁을 전후해 남조선에 파견되었다가 체포된 이후 감옥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빨치산, 남조선 로동당, 북한군 포로와 남파 간첩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북한에 송환된 뒤, 부총리급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북한매체는 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수십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도 죽지 않고 돌아온 장기수들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했습니다. 무사하게 북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최 이사장은납북자 가족들과 함께 판문점에 나가 비전향 장기수들이 가는 길을 막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최 이사장 : 저는 2000년에 비전장장기수를 김대중 정부가 보내면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는 날 김용갑 국회의원을 같이 모시고 우리 가족 400명이 모여서 비전향장기수들을 가는 걸 막았습니다. 판문점에서 그때 저희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장기수 보내라, 하지만 납북자 국군포로 한 명이라도 받아오자"이렇게 요구를 했습니다.

그들은 상호주의 원칙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들과 맞교환하자는 제안을 한국정부에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 이사장은 직접 납북자들을 구출하는 활동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최 이사장 : 납북자 구출이 9명이 와 있습니다. 제가 8명을 3국에서 직접 인계를 해서 대사관에 직접 넣어서 고국 땅에 안착시켰습니다. 중간중간 국군포로 12명을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저를 상을 줘야 할 국가가 정부가 통일부 장관이 나를 고소하고삐라 보낸다고 통일부 장관이 또 고소하고 납북 피해자 가족을 이렇게 아프게 했습니다.

또 북녘의 동포들에게 납북자 피해 사실을 알리는 삐라를 보내는 활동도 전개했다고 합니다. 삐라를 보낸다고 한국정부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 최 이사장은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수십 년간 생사확인조차 안되던 납북자 8명과 국군포로 12명을 남한으로 구출해왔습니다. 또한 북한의 협조자들로부터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 남한에서 학생때 납치된 김영남이란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한 요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 이사장은 납북자 문제를 가지고 유엔에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 전후 납북자 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무대응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최 이사장은 이제는 자신도 70을 넘은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며 죽기전에 “천륜이라도 지키게 해달라” 호소하며 울먹였습니다.

‘천륜’이란 부모와 자식, 형제나 자매 등 혈육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합니다. 천륜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데요. 생명을 준 혈연적 관계인 동시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장 순결한 관계라고 합니다. 특히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민족은 조상대대로 부모에 대한 효도는 지극합니다. 즉 부모가 세상을 뜨면 제사를 지내고, 추석이면 가족과 함께 조상을 찾아 술을 붓는 것이 하나의 전통적인 관례로 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적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끼리도 서로 서신을 주고 받고, 왕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은 분단 이후 편지거래는 고사하고, 서로 전화로 안부도 묻지 못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발생한 1천만 이산가족에 이어 516명 납북자 문제, 그리고 3만5천명의 탈북민들로 이어지는 분단의 가족들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은 55년전 북한으로 끌려간 아버지의 그리며 살아가는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이사장에 대한 사연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