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거리 교화소 ‘불망산’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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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명시한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이 태어나 생명을 가지는 순간 자유와 안전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은 죄를 범하더라도 법앞에서는 인간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 생전에는 물론, 죽어서도 버림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화소와 구금시설에서 죄수들은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죽어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줄기의 연기로 사라지는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현장이 전거리 교화소로 알려졌는데요.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 알아보겠습니다.

함경북도 회령시내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70리 가량 떨어진 전거리 교화소. 가파로운 산골짜기 안에 위치한 전거리 교화소는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입니다.

전거리 교화소는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일대의 죄수들을 교화시킬 목적으로 1980년대 설치된 북부 일대에서는 가장 큰 교화소입니다.

이곳에는 형기를 받은 사람들이 수감되며,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북송된 탈북자들이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대표적 교화소로는 평안북도 남신의주에 위치한 백토리 교화소, 평안남도에 있는 개천교화소, 함경북도에는 전거리 교화소 등이 있습니다.

인민보안성 교화국이 관리하는 교화소 중에서 전거리 교화소 실태가 가장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유는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됐던 함경남북도, 양강도 지방의 탈북민들이 남한이나 미국 등에 나와 증언하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화소와 구금시설에서의 비인간적인 인권 침해 현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를 중지시키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거리 교화소에 관한 탈북민들의 증언에서 수감자들의 시체를 불태우는 불망산이 끔찍한 용어로 등장했습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전거리 교화소에 구금되었던 탈북자 김동남씨로부터 ‘불망산’에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질문: 전거리 교화소에 대해서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김동남: 우선 전거리 교화소는 이전에는 동(구리)생산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채굴하자면 계속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철길이 있습니다. 그 동맥이 철길 넘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면 그 철길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있을 당시 그 동광을 폐갱했습니다. 내가 있을 때 1개 반만 채광을 하고 나머지 반은 나무나 하고 강냉이 농사와 감자농사를 했습니다. 그걸로 교화생들이 먹게 했습니다.

제가 1999년 11월 갔다가 2000년 출소했는데, 면회도 규정이 있습니다. 일년에 두번 면회를 받아줍니다.

그런데 전거리 교화소에서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면회를 자주 와도 허락해주는 거지요. 그래야 그 사람이 목숨을 유지하고 형기를 마치고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조금 도움이 되거든요.

죄수들도 자기만 조금 똑똑하면 옆 사람들이 면회 들어온 것을 뜯어서 (간수들이)조금씩 주는 거지요. 하지만, 면회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거기서 병걸리거나, 일하다가 사고치거나 하면 무조건 죽어나가는거지요.

질문: 그러면 교화소 내 교정시설은 어떻습니까, 고문하는 게 있습니까,

김동남: 그 안에서 범죄가 이루어졌을 때, 반항하거나 했을 때 독방이라는 곳이 가둡니다. 때리거나 하는 것은 보통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리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맞았어도 죄수들이 보안과장에게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야기 했다가는 완전 왕따 시키는데요. 예를 들어 보안원이 어느 한 사람을 때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범죄자가 신고를 했다고 하면 다시는 보안원이 그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지만, 여러모로 일강도를 높인다든가, 면식을 자르던가, 이렇게 해서 죽게 만들거든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디다 해볼데가 없습니다. 왜냐면 공민권을 박탈당했으니까요. 경찰은 책임 안지지요.

질문: 죄수들은 거기서 매맞고 죽어도 공민권이 없기 때문에 해볼수가 없다는 겁니까,

김동남: 네 어디다 상소할수도 없고, 그 안에서 병으로 죽든, 맞아서 죽든 시체가 밖으로 나갈 수 없지요. 모든 게 다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부검할수도 없고, 예를 들어 전염병이 돌아서 죽었다고 하면 ‘불망산’이라는 곳에 가져다 불태워 보리면 끝이지요.

외부 사회에도 불망산은 적지 않게 알려졌는데요. 예를 들어서 병으로 죽거나 허약으로 죽으면 죽은 사람들을 지하에 놔둡니다. 그러다가 시체가 15구 정도 모이면 불망산에 나무를 쌓아놓고 거기다 시체를 올려놓고 화장해 버리는 거지요. 뼈까지 다 태워 버리는 거지요.

질문: 그러면 그걸 보셨나요? 아니면 들으셨나요

김동남: 그거 불태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비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수복이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12교화소에서 생활하던 사람인데, 그가 언론에 인터뷰하면서 전세계에 공개된 거지요.

질문: 전거리 교화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불망산이라는 곳에서 화장을 한다는 말씀이지요.

김동남: 그렇지요. 불망산 골안에서 모두 화장해서 없애버리지요.

질문: 그러면 (시체를) 땅에 묻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하셨나요?

김동남: 없어요. 그건 원래 규정상 없대요. 왜냐면 교화소 생활이 끝나고 나간 사람들이 그 지형을 다 아니는데, 그러면 다 파가지요.

전거리 수용소 수감자들의 시체가 불망산에서 소각처리됐다는 사실은 전거리 수용소 수감당시 ‘시체처리’에 동원됐다는 탈북자 이수복 씨에 의해 한국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탈북자 리수복씨는 지난 2012년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 1주년 행사에 참석해 자신이 '시체처리반'으로 있던 2000년 6월부터 2001년 1월까지 모두 850여구의 시신을 처리했으며 시신은 '불망산'에서 모두 태워졌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이밖에도 전거리 교화소에 3년간 복역했던 또 다른 탈북민 이모씨도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전거리교화소에서는 매달 평균 80∼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2007년 말부터 2010년 초까지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됐던 이숙향(가명·여)씨는 당시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 달에 70∼80명의 수감자가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 현재 전거리 교화소의 실태는 어떠할까?

지난 2017년 일본의 아시아프레스는 전거리 교화소를 출소한 30대의 탈북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성 수감자가 3일에 한 번씩 10구 정도 시체를 모아 손수레에 싣고 가까운 산으로 운반해 태워 처리하는데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교화소 식사량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으로 보이나, 워낙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에 영양실조와 전염병 때문에 사망자가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도 올해 6월 전거리 수용소의 ‘불망산’의 존재에 대해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의해 처형되거나 암매장 당하거나, 시체가 소각처리된 곳을 지도에 기록하는 등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인권단체입니다.

미국의 비정부 기구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2016년 10월 ‘전거리교화소 실태 보고서’를 발간하고, 북한 당국에 전거리교화소를 비롯한 모든 수감시설에 대한 국제적십자사(ICRC)의 접근 허용 등을 촉구했습니다.

비록 죄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각도 북한 전거리 교화소뿐만아니라, 개천교화소, 남신의주 교화소 등 북한의 구금시설에서의 비인간적 인권침해를 밝히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진행에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