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재일본조선인귀국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근 10만명의 째포, 즉 재일본귀국동포들이 북한땅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지상천국’이라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속아 북한을 찾아갔던 귀국동포들은 3등 국민 취급을 받았다고 북송교포 출신 탈북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구사 일생으로 탈북에 성공해 일본에 정착한 북송교포 출신 탈북민들이 65년전 귀국 동포들을 실어 나르던 니이카타 항구에서 매년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속히워 간 10만명의 귀국동포들과 고난의 행군을 전후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돌아간 귀국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리소라 북송피해자지원단체 ‘모두 모이자’의 사무국장으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현장음> 지난 14일과 15일 양일간에 거쳐 일본 니이카타현에서는 재일북송인권65주년 니이가타항 추모식과 북한인권계몽국제포럼 2024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재일북송피해자지원단체 ‘모두 모이자’의 리소라 사무국장은 2024년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0주년을 맞아, 65년전 재일본귀국동포들이 첫 북송선에 올랐던 그 항에서 추모식을 진행하게 된 것은 매우 의의 깊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재일조선인귀국사업, 남한에서는 재일교포북송 사건으로 알려진 재일한인 북한보내기 사업은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84년사이에 북한과 재일조선인총련합회 (총련)그리고 일본정부 간에 의해 진행된 사건입니다.
이 북송사업으로 근 10만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갔으나, 이들이 도착한 곳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옥’이었다고 다수의 북송교포 출신 탈북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북한에 들어가 ‘적대계급’에 속하는 3등국민 취급을 받았고, ‘간첩’ 또는 ‘반동’으로 몰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당간부나 안전원 등 권력계층에는 넘보지도 못했고, 기껏해야 기술직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시절에는 일본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교포들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10만명 중 구사일생으로 탈북해 일본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끌려간 사람들과 죽은 영혼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지내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행사를 주관했던 리소라 국장을 전화로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먼저 북한의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본인 소개를 좀 해 주시겠습니까?
리소라 사무국장: 저는 10년 전에 북한을 탈북하여 가지고 현재 일본에서 살면서 북한 인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올해가 근 10만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북송된지 65주년이 되는 해가 아닙니까, 이 날을 맞아 어떤 행사를 진행했는지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리소라 국장 :재일북송선이 1959년 12월 14일에 처음 출항했습니다. 일본의 니이가타항이라는 데서요. 그래서 저희들 '모두 모이자'단체는 12월 14일 첫 배가 떠난 날을 '재일북송인권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그 배가 떠난 그 장소 그 시간에 저희들이 추모식을 합니다. 추모식과 결의 모임을 하고 국제 포럼을 하는데 추모식은 북한에 의해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의 영혼을 기리고, 그 다음에 현재 피해자로 있는 분들을 빨리 구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러한 결의를 다집니다. 그 다음에는 시민사회분들을 향해 북한 인권 시민 계몽에 관한 국제 포럼을 하거든요. 해마다 이틀에 걸쳐서 이제 하루는 추모식을 하고 하루는 국제포럼 이렇게 진행합니다.
기자 : 14일 15일 양일간에 거쳐 행사가 진행되었군요. 그러면 니이가타 항을 행사 장소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리소라 국장 :네 니이카타 항의 중앙부두에서 약 10만 명이 북한으로 북송됐습니다. 그래서 그 니이가타 중앙부두에서 10만명이 북송된 바로 그 자리에서 저희들이 추모식을 합니다.
기자 :현재 일본으로 탈북한 탈북민들 가운데 그때 당시 그 부두를 출발해서 올라갔던 그 생존자가 있습니까?
리소라 국장 :있죠. 일본에 지금 현재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은 한 200명이 계십니다. 그리고 재일북송으로 약 10만 명이 갔는데 여기에서 탈북이라는 자체의 힘으로 자유 세계로 돌아오신 분들은 약 100명밖에 없어요. 10만명 중에 0.1%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 생존자들이 배를 직접 타고 가셨던 분들인데, 회원으로 돼 있으시거든요. 이번에 그 당사자들을 현장에 모시고, 많은 지역사회 사람들, 니이가타 현 정부 각계 각층 또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참가해서 저희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호소를 한 겁니다.
기자 : 기자:가와사키 에이코 (모두 모이자)대표도 니이가타 항을 통해 북송된 것 아닙니까?
리소라 국장 :가와사키 에이꼬 대표는 17살에 북한으로 갔다가 북한에서 43년을 살고 탈북하여 구사일생으로 일본에 도착했죠. 도착한 날부터 올해 20년이 되는데 계속 북한 인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기자 :가와사키 대표가 자기가 갔던 그 부두에 다시 돌아온 그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리소라 국장 :너무 억울하죠. 17살에 가서 그 인생의 절반 43년 청춘 다 북한에 다 묻은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억울함을 말할 수도 없고, 그 다음에 또 살아서 돌아오지도 못한 그 수많은 희생자들, 현재도 북한에 지금 계시는 분들은 참담하죠. 그 분은 정말 니이가타 항구만 서면 저절로 통곡이 나오고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막 열심히 정열적으로 최선을 다해 활동을 하시는 거죠. 본인이 살아 돌아온 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 이 문제를 제일 앞장에 서서 외치고 계시고 재판이나 그 어려운 재판이나 지금 우리 메모리얼 파크 활동 그게 선두에서 지금 이끌고 계시는 거죠.
기자 :하시는 단체 이름 그리고 언제 세워졌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리소라 국장 :저희 단체는 이제 2014년 11월 14일에 결성됐고요. 단체 이름은 '모두 모이자'라고 합니다. 이 단체가 왜 2014년에 결성됐냐면 2014년 2월에 유엔에서 북한 인권 COI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그 보고서에서 북한에 의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결론이 났거든요. 범죄라고 하면 그냥 말로 외치는 게 아니고 재판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 물어야 되고 피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 복구를 해야 된다. 이게 자유 세계의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이 그 COI 보고서를 기반으로 해서 법적 책임 규명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를 결성하게 됐고 지금 그 활동을 쭉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활동은 북한에 의한 인권 범죄를 법정에서 책임 규명을 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요. 그 다음 두 번째 활동이 니이가타에 북한 인권 메모리얼 파크를 건설하여 북한에 의한 인권 침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그걸 통해서 기억되고 역사의 교훈으로 계속 남아 있게 하는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리소라 국장 :당면한 활동 계획은 내년 1월 말이나 2월 초에 마지막 재판이 일본법정에서 열리면 국제적인 연대로 빠르게 착수할 거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조총련을 피고로 한 재판에 들어갈 것입니다. 김정은을 피고로 한 것은 김정은에게는 지휘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겁니다. 그렇지만 조총련은 뭐냐면 인권 피해의 집행자며 방조자, 협조자의 위치에서 이 사람들의 잘못을 물을 겁니다. 그다음에 내년에 분단 80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단체는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해결하기 위한 그러한 국제 활동을 전개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모두 모이자'의 이소라 사무국장과 이번 행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리소라 국장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