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최근 유엔제네바에서 열린 북한인권에 관한 보편적인권정례검토(UPR)를 앞두고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열악한 북한인권개선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탈북인권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 최민경 대표도 있습니다. 그는 올해 7월 ‘북한탈출기’라는 책을 펴내 북한인권을 알리기도 했는데요. 오늘 탈북기자가 본 인권 시간에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감금피해자 가족회는 어떤 단체이며,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최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제가 북한감금피해자 가족회 대표로서 저부터 인신매매를 당했고 그 다음에 4번이 강제송환을 당했어요. 우리 단체 회원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교화소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이며 고문 피해 당사자들이고 가족이니까 그 가족들까지 피해자 당사자들이 가족까지 다 포함하고 있어요. 정식 법인 등록을 한 게 2023년도 12월이에요. 등록된 회원들은 지금 160여 명이고요.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최민경 대표]: 기본 우리는 생존자로서 북한의 만행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역사에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증언자들을 통해서 역사에 잊혀지지 말아야 되겠고, 그 다음 두 번째로는 우리가 그 실상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제3국에서 태어난 출생자들은 정체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에 정착을 잘하도록 하는 게 우리 두 번째 과제이기도 해요.
북한인권상황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증언자들은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북한은 아시다시피 연좌제로 처벌을 하잖아요. 우리 탈북민들 혼자 나오신 분들이 굉장히 많고,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증언을 하고 기록하는데 노출은 못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기록은 남겨야 되니까 이름, 나이 그런 개인 정보를 노출하는 게 제일 힘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자신의 탈북과정에 대해 최민경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저는 초창기에 탈북을 한 사례예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에 배급이 다 끊기고, 그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이 굶어 죽고, 파라티푸스라는 전염병에 걸리면서 아빠를 잃었고, 그러면서 제가 정말 180도, 360도로 머리가 바뀌어 가지고1997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간 다음 겨울에 중국에 탈북했다가 4번이라는 강제 북송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북송 때는 중국 베이징 올림픽 때인 2008년도 그때 대대적으로 중국 공안이 탈북자들을 검거를 했어요. 그때 제일 마지막에 북송이 됐을 때 우리 중국의 시골에서 탈북여성 34명이 북송이 됐어요.
최대표는 강제북송되어 회령의 12호 교화소에 끌려갔다고 말합니다. 거기서 탈북여성들은 탈북연한에 따라 형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북한이 어떻게 형을 집행하는가 하면 (탈북)브로커는 최장 10년을 줬어요. 이 사람들은 면회 자체도 못하게 그렇게 형벌을 내렸고, 그 다음에 교화형도 중국에서 10년 이상 산 사람들은 최장 5년, 그 다음에 10년 이하 산 사람들은 3년 형을 내렸어요. 제일 작은 게 3년형인 거예요. 그래서 저도 3년 형을 받았고, 34명이 다 전거리에 들어갔어요. 2009년 전거리에서 들어가니까, 그 안으로 쓸어 들어오는데, 마지막에는 300명까지 꽉 차 가지고 여자 교화소를 우리가 새로 짓기 시작하여 2009년도 9월에 완공을 했거든요. 맨날 식전 작업하고, 강제 노동에 내몰리고, 그래서 그냥 반죽음이 됐던 거예요.

최대표는 전거리 12호 감옥 실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제일 처음 문제는 짐승도 그런(감옥밥) 거 안 먹어요. 들어가면 배고파서 그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제일 많고, 그냥 맥없이 죽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위생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까. 전염병이 휩쓸었어요. 그때 말하면 국제적으로 '사스'라고 하는 전염병이 북한의 말로 '열병'이라 하는 전염병이 휩쓸었어요. 40도로 열이 오르내리고 그냥 무리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그때 당시에는 화폐 교환을 하여 그냥 철창 없는 감옥인 거예요. 바깥에는 화폐 교환 때문에 완전히 대혼란이고, 교화소 내에서는 열병으로 전국의 교화소가 다 멈춰선 걸로 저는 알고 있어요. 교화소 내에 12개 반이 있었어요. 거기서 두개반은 병반과 허약반이 있는데, 거기서 병반은 말 자체로 시체실에 가는 반이란 말이에요. 그 다음에 거기서 조금 나은 게 허약반인데 그냥 (죽어서)쓸어 나가는데, 저와 같이 갔던 34명 중에 다 죽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열병에 걸려서 시체실에 버려졌거든요. 버려졌을 당시에 (몸무게가)27kg 로 턱도 다 떨어지고, 극심한 영양실조로 시체실에 버려져 가지고 살아남아서 석방되었지요.
최대표가 석방된 것은 북한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내린 대사면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당시 2010년도 9월 9일을 맞으면서 김정일이가 완전히 뇌중풍이 와서 그럴 때인데, 2010년 9월 9일 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령으로 우리도 알지도 못하는 김정은이를 후계자로 추대를 하면서 대사면을 내린 거예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2008년도에 3년형을 받고 들어갔죠. 제일 작은 거예요. 3년형을 받고 그때 석방 맞을 때는 2년 3개월 지난 때인데 약간 회복이 되어가지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가지고, 출소 당시에는 27kg로 걷지도 못하고 석방을 바로 맞았죠. 그래서 9개월을 감면을 받은 거죠. 그렇게 되어 김정은이라는 존재를 그때 우리가 알았고 김정은이 누구인지 북한 주민들이 모르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때 대사면 받을 때는 같이 갔던 34명 중에 다 죽고, 6명이 살아남았는데 4명은 대한민국에 와서 재회를 했고요. 2명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최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민경 대표]: 저는 살아남은 정말 생존자로서 사명을 가지고 기록을 남기고 얼마나 억울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정말 두만강 압록강에서 떠내려오는 시체는 다 북한 사람이죠. 그리고 저기 내몽고 사막에서 초창기에는 루트가 없어 가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정말 이름도 모르고 낯선 곳에서 죽었잖아요. 그리고 교화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몫을 다해서 정말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 기록을 남기고 다하려는 것은 저를 비롯해서 우리 증언자들의 마음입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오늘 시간에는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 최민경 대표로부터 12호 전거리 교화소 실태와 앞으로 계획에 들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