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을 믿되 검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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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남북 정상이 ‘9월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먼저 가장 큰 관심사는 핵 문제였습니다. 합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지난 19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북 쌍방이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김정은이 이런 입장을 전 세계로 영상이 공개되는 석상에서 육성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공동선언 제 5조 1항에서 북한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할 것이며, 5조 2항에서는 '미국이 6·12 미북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은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다"며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습니다.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는 김정은이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했던 사항이나 북한이 독자적으로 밟아왔던 폐기 절차를 유관 국가 전문가의 참관하에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종전 입장에서 진일보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언급하면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인 것은 마음에 걸립니다.

이번 평양 회담에서 나올 것으로 희망하였던 북한이 보유 중인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등을 낱낱이 밝히는 '핵 신고' 명단 제출이나 국제 사회의 사찰을 받겠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현재 북한이 핵탄두 20~60개와 핵시설 40~100곳을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지도부에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에 대한 신고부터 하라는 압박을 가해 왔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 신고 절차를 밟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명세서 제출이 비핵화의 첫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수많은 핵시설 중 하나인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그마저도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북한 비핵화 부문에서는 4월 27일 남북 판문점 선언, 6월 12일 미북 싱가포르 합의에서보다 더 큰 진전을 이뤄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군사부문 합의는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지난 19일 평양 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 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뒤이어 그 자리에서 한국의 송영무 국방장관과 북한의 노광철 인민무력상 사이에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가 채택되었습니다.

남북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육해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 증강,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상대방에 대한 정찰 행위 중지 등의 문제를 '남북 군사 공동 위원회'에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계속하여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을 완충 수역으로 설정하며, 해당 수역에선 포병·함포 사격 및 해상 기동 훈련을 하지 않고, 모든 포의 입구를 덮개로 막고 포 진지의 포문들도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11월 1일부터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 연습도 중지하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내에서 포병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 훈련을 중지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북한 민경초소들과 한국군의 모든 GP, 즉 감시초소들을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군사분계선 1㎞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전방 초소 각각 11곳도 시범적으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상 관계로 모든 합의 내용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남북한 군대가 모두 양보를 하였고 한국군의 양보가 조금 더 많은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 더 양보를 많이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이제는 서로 싸우지 않고 전투나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으로 합의한 게 중요합니다.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조금 더 많은 양보를 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더 추동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성우: 남북관계 부문에서도 많은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도 해 주시죠.

고영환: 지난 9월 19일 남북 정상은 다양한 남북 교류와 협력 사업에 합의했습니다.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며 서해에는 경제 공동 특구를 동해 지구에는 관광 공동 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키로 했습니다.

또한 동해와 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금년 내에 갖기로 합의했으며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금강산에 지어진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시설을 조속히 복구해 개소하고, 화상 상봉과 영상 편지 교환도 빠른 시일 내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의 노후 철도를 현대화하는 사업에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방북한 한국 경제인들을 만난 리룡남 내각 부총리는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인사를 받고 "현재 우리 북남 관계 중에서 철도 협력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한다"며 "앞으로 1년에 몇 번씩 와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협력사업들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유엔 제재나 미국 등 국가들의 독자제재들도 없어질 것이고, 이 경우는 철도나 도로 연결, 북한 철도 및 도로의 현대화,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서해지구 남북 공동 경제 특구 등이 숨 가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환한 길이 보이는데 왜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박성우: 미국의 반응이 중요한데요. 이번 합의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시간으로 지난 19일 0시 4분에 사회관계망서비스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김정은이 최종 협상에 부쳐질 핵 사찰을 허용하는 것과, 국제 전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로켓과 핵실험은 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도 "북한에 대한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며 "그(김정은)는 평온하고 나도 평온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저는 김정은이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여러 차례의 접촉 기회들에서 미국과,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고 보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로 해서 멈추어 섰던 미북 회담이라는 수레가 다시 굴러갈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된 것으로 저는 평가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믿되 검증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이번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 중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들어 있는데요. 그 전에 풀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모든 게 잘 풀려서 서울에서는 비핵화의 시작을 축하하는 회담이 열리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