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경우 발생할 효과를 점검해 봅니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 위원장이 최근 1주일 넘게 공개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요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는데요.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 의미와 기대 효과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지난 16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은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일정이 조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타스 통신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등에 의하면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보좌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히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과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시기, 장소 문제를 현재 협의 중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지난 15일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도 김정은이 10월 말이나 11월 초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방문 장소도 모스크바 혹은 블라디보스토크가 유력하다는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중앙일보는 최근 ‘김정은 1주일째 두문불출, 이달 말 푸틴과 회담 준비?’라는 제목의 보도를 하기도 했죠.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저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현재 북한이 미국과 벌이고 있는 비핵화 대화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은 선 비핵화를, 북한은 선 신뢰구축을 요구하면서 거의 양보 없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핵무기 제거 작업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우군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중국은 이미 김정은이 세 번이나 찾아 가 북한 편으로 돌려놓으려고 애를 많이 썼고 일정한 성과도 거둔 것으로 평가됩니다. 여기에 현재 미국과 다투고 있는 러시아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북한 비핵화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김정은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한 단계 끌어 올리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는 현재 시베리아 동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북한은 이런 러시아에 값싸고 순종적이며 숙달된 노동력을 투입하여 외화도 벌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발전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를 외교적 측면에서 북한 편으로 만들고 외화도 벌고 친선관계도 발전시키자는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러시아가 한반도 주변 4강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러시아의 행보가 한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거든요. 왜 그런가요? 그리고 북한에게 러시아는 외교적 측면에서 어떤 존재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러시아 외교가 한반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주요 이유는 러시아가 이전 구소련 때보다 힘이 작아지고 영향력도 훨씬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급격하게 힘을 잃었습니다. 군사력도, 외교력도, 경제력도 미국에 비할 바 없이 감소하였습니다. 이는 한반도 전체, 남한과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북한에게 있어서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는 그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배신하고 사회주의에서 탈선한 나라, 경제적으로도 북한을 전혀 도와줄 수 없는 나라, 군사적으로는 북한을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 나라 정도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푸틴이 등장한 후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고 천연가스와 원유 등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천연자원의 값도 상승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에 시리아(수리아) 문제, 크림반도 문제,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판이한 입장을 보이면서 대결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북한은 미국과 맞서고 있는 러시아를 당연하게 자기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북한의 군사력과 국방 공업의 모체는 구소련입니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가 향후 군사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왕쥔성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 세계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신화통신에 "소련 시절부터 정치적 특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보완 관계에 있다. 앞으로 두 나라는 양자, 다자적으로 협력할 여지가 많고 잠재력도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저 역시 미러 분쟁이 심화될수록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더 밀접해질 것으로 평가합니다.
박성우: 사실 더 큰 관심사는 미국과 북한의 2차 정상회담이 언제 열릴 것이냐는 문제인데요. 그런데 일정이 좀 늦춰질 것 같습니다. 우리 청취자들께서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배경을 설명해주시죠.
고영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진 AP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김정은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다음 회담 계획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2차 회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공화당 후보들을 돕기 위해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후가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에서 미국 중간선거를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선거는 대통령 임기 중간에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일부를 교체하는 것이라서 ‘중간선거’라고 부릅니다. 미북 정상회담을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에 진행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선거가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실시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한 중간 평가의 의미를 가지는 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년간 내치와 외교에서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미북 정상회담 결과가 나쁠 경우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선거 유세를 하는 등 선거에 많은 노력과 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 역시 가능합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한반도 관련 소식을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남북의 관광객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이 있었죠. 이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남한, 북한, 그리고 유엔군사령부 3자 협의체가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난 16일 만나 세계에서 가장 삼엄한 지대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3자 협의체는 이날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이번 주까지 완료할 남북한 양측의 공동경비구역 지역 지뢰제거 작업 결과를 평가하고 판문점 초소의 병력과 무기 철수, 상호 감시장비 조정, 비무장화 조치의 상호 검증 등 세부적인 절차를 협의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을 방문하는 남과 북,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남쪽, 북쪽 구역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정전협정의 정신에 따라 군사분계선 표식물도 없었고 자유롭게 양측을 넘나들 수 있었으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 표식물로 콘크리트 턱을 설치하고 남북 초소도 각각 분리됐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상징이던 판문점에서 남북 비무장과 자유 왕래라는 '작은 통일' 실험이 시작되려 하는 것입니다. 독일 통일도 동독과 서독의 자유 왕래가 시발점으로 하여 이뤄졌습니다. 북한 비핵화가, 북한 변화가 이루어져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박성우: 요즘 비무장지대 남북 양측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인데요. 위원님께서도 지적하셨지만, 남북 간 평화 정착을 위한 일들이 성과를 내려면 결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