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 회담이 연기됐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미북 고위급 회담의 시간과 장소가 발표된 지 30시간 만에 회담이 연기됐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지난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미북 고위급 회담이 연기됐습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6일 진행된 중간선거 직후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 미북 고위급 회담이 연기됐으며, 양측의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미 국무부가 지난 5일 고위급 회담의 일시와 장소를 공식 발표한 지 약 30시간 만에 회담이 연기된 것입니다.
미 국무부는 미북 중 어느 쪽이 회담 연기를 요청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고위급 회담 연기 배경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사실 일정은 항상 바뀐다. 어떤 때는 일정 변경을 외부에 공개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공개하지 않기도 한다"며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이다. 그게 전부이다.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이 연기된 배경에 대해 "미국은 북으로부터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설명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에게 알려왔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부터 회담 연기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았다"며 "회담 자체가 결렬된 것이 아니라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까지 미국은 북핵 사찰과 검증에 필요한 ‘핵 목록’ 신고를 요구해 온 반면에 북한은 '선 제재 완화'를 주장해왔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선 비핵화를, 북한은 선 신뢰구축을 요구해 온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비핵화에서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시간을 끄는데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고조되어 왔고,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거나 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을 보여 온 게 이번 미북 고위급 회담 연기의 기본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간 선거를 끝낸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하는 성과가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은 미북 회담을 강행할 이유가 없고 김정은으로서도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가 워낙 커 당장 회담을 해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6.12 싱가포르 회담 이후 짧은 시일 내에 끝날 것 같았던 북한의 비핵화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성우: 이번 미북 고위급 회담이 연기되면서 다른 중요한 정치 일정들도 순차적으로 밀려버린 양상입니다. 위원님도 언급하셨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해 올해 안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힘든 것 아니냐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왜 그런지,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은 여전히 열리느냐’는 질문에 김정은과의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개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년 언젠가"라고 했다가 "내년 초 언젠가"에 열릴 것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고위급 회담 연기와 관련하여 "잡혀지고 있는 여행들 때문에 우리는 미북 고위급 회담 일정을 바꾸려고 한다"며 "우리는 다른 날 만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일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하기 위해 오는 9일께 출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통령이 언급한 여행들은 이를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하여 "그러나 우리는 북한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는 서두를 게 없다. 우리는 급할 게 없다.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북한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미국은 급할 것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원래 일정대로 하면 10월에 폼페이오-김영철 회담, 11월에 트럼프-김정은 회담, 12월에 김정은의 서울 방문이 순차적으로 진행됐어야 합니다. 그러나 첫 단추인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이 향후 날짜도 잡지 못하고 연기되었고, 11월에 진행될 것으로 예견되었던 트럼프-김정은 회담도 내년 초 언젠가로 미뤄졌습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올해 12월 서울 방문 일정도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올해 안에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매우 어려워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미국과의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 당국은 내부 단속과 체제 결속을 다지는 모양새입니다. 그 배경을 설명해주시죠.
고영환: 그렇습니다. 북한의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7일 '자력자강은 공화국 불패의 힘의 원천'이라는 기사에서 "적대 세력들의 끈질긴 제재에도 자력자강 정신만 있으면 세상에 못 해낼 일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속하여 "오늘의 세계에서 남의 도움을 바라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민들에 대한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6일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하여 "이달 초 북한이 전민 무장화, 전국 요새화 방침을 내세우면서 전시태세 훈련을 다그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 공장과 기업소 노동자들은 다음 달까지 교대로 직장을 비우고 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지난 2일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장은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제재 완화' 기조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며 미국을 공격했습니다.
북한이 제재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면서 자기 힘을 믿으라는 자력자강 정신을 강조하고 전시훈련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핵화 속도가 늦어지는 데 따라 내년도 북한의 인민생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박성우: 북한 내부 소식을 하나 더 살펴보죠. 김정은 초상화가 등장했네요. 그 의미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4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김정은이 환영하는 평양 순안 비행장 영상 중 김정은과 디아스카넬 의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김정은의 대형 초상화가 비행장에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그의 전임자들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는 전국에 걸쳐 걸려 있지만, 김정은은 오랜 기간 동안 동등한 위치의 지도자가 아닌 후계자로 그려져 왔다”며 “북한은 김정은의 첫 공식 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을 공개함으로써 김정은을 개인숭배 집단의 새로운 레벨(급)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김정은의 대형 초상화가 공식 외부장소에 내걸린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을 김일성, 김정일 반열에 올려세우는 작업의 시작일 가능성이 그 첫째입니다. 둘째는 이전에도 북한과 매우 가까운 나라 수반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김일성과 상대 나라 대통령의 초상화들을 걸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그 전례에 맞추어서 이번 쿠바 의장의 방문을 계기로 김정은의 초상화를 걸었을 가능성입니다. 어쨌든 이번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은의 급수가 김일성, 김정일의 급으로 올라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박성우: 미국과의 대화는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내부를 단속하며 김정은 신격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