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국답게 행동해야’

7일부터 이틀간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한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7일부터 이틀간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한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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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둘러싼 중국의 입장을 살펴봅니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시점이 묘한데요. 이번 방중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이틀에 걸쳐 김정은이 중국 대련을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43일 만에 중국을 김정은이 다시 방문한 것은 그만큼 다급한 사정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급한 사정이란 최근 미국 정부 고위 간부들의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가 심해진 것과 연계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일 “우리는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언급한데 이어 지난 5일에는 존 볼턴 미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의 회동 결과를 소개하면서 미 백악관은 “모든 핵무기, 탄도 미사일, 생물, 화학무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라는 공유된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요구 수준을 높이는 모양새입니다.

또한 이란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나라들이 2015년에 맺은 이란 핵폐기 협정이 불완전하다고 비판해 오던 미국 정부는 지난 8일 이란 핵협정에서의 탈퇴를 선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전임 행정부에서 서명한 끔찍한 협정인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키로 했다”며 “이란 핵협정은 일방적이며 재앙적이고 끔찍한 협상으로 애초 체결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의 핵 및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협정 탈퇴가 가까운 시일 내에 진행될 미북 정상회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매우 분명한 신호를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폐기에 덧붙여 생화학 무기까지 없애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북한이 당황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지난 6일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방증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보였던 김정은은 미국 고위관리들이 핵, 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언급하면서 혼란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급해진 김정은이 그래서 중국을 43일만에 또다시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같습니다. 집권 후 중국 지도부를 맹비난하여 왔던 김정은이 체제가 극도의 위험에 빠지자 중국에 찾아가 도와달라고 자세를 낮춘 것입니다. 역시 믿을 곳은 한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중국밖에 없다는 인식을 김정은이 했다는 소리입니다.

박성우: 앞으로 있을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변수가 더 커졌다고 봐야 하나요?

고영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은의 중국 대련 방문과 시 주석과의 회담으로 북한의 비핵화 공식이 복잡해지는 양상입니다. 남한, 북한, 미국 간 북한 비핵화 과정에 중국이 끼어들면서 미국이 주장해 온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에 예상치 않은 변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25년 동안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기만하면서 핵무기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유의하면서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미국식 방법이 단기간 내에 일시적으로 북핵을 폐기한다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입니다. 핵을 폐기한 후 이를 검증하고 그다음에 제재를 풀고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맞서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김정은은 시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안보 위협이 제거돼야 한다"며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통한 비핵화를 강조했습니다.

김정은은 이번 대련 방문 시 "조중 사이의 마음속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이어졌다"고 발언했고, 시진핑 주석은 "두 나라는 운명 공동체, 변함없는 순치의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순치의 관계'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미국이 핵과 미사일 그리고 생화학 무기의 폐기를 요구하면서 북한을 압박하자 북한이 중국과 밀착하며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 역시 미국과의 싸움에서 북한이라는 적절한 외교적 카드를 하나 덤으로 얻어 낸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중국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 북한 비핵화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이 제재를 뒤로 풀어주는 경우 북한 핵폐기가 요원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대국답게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박성우: 좀 더 구체적으로 여쭤보죠.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엔 북한도 중국을 싫어하는 듯했지만, 중국도 마찬가지로 북한을 경원시하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현시점에서 북한을 끌어안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과거 김일성 주석은 중소관계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양다리 외교를 펼쳤습니다. 김정은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중국과 미국 사이의 모순을 이용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지도층은 멀리 있는 미국보다는 가까이 있으면서 북한에게 개혁, 개방을 하라고 압력을 넣는 중국을 싫어하면서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심지어 외무성 간부들은 중국보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을 사석에서 즐겨하곤 했습니다. 중국 지도부도 김정일 지도부, 김정은 지도부가 중국을 경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편을 드는 것은 북한 지도부가 붕괴한 이후 압록강변에 한미 연합군이 나타나는 것이 중국에게 악몽으로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 현 지도부가 붕괴하기 전이라도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가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을 멀리하는 것 역시 중국 지도부에 있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싫든 좋든 현 김정은 지도부를 품에 안고 다독이면서 현 상황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대책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요즘 또 하나 눈여겨 볼 게 일본의 움직임입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회담할 때, 일본도 동북아 안보 논의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그 배경은 뭐라고 해석하면 될까요?

고영환: 일본 언론들은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핵 폐기 문제에서 이른바 ‘재팬 패싱’, 즉 일본 건너뛰기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남한, 북한, 미국, 여기에 중국까지 합세하는데 일본은 빠져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가까워지는데 일본은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도 끼지 못하고, 남북, 미북, 중북 정상회담은 진행되었거나 예정돼 있는데 반해 일북 정상회담은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북 정상회담이 잘되고 미북관계가 잘 풀리는 경우 일북 정상회담이나 일북관계 정상화는 당연히 뒤따른다는 점입니다. 현재 북한에게 거액의 원조를 줄 수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이른바 식민지 배상금을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액수가 무려 1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이 비핵화만 한다면 한국, 미국뿐 아니라 일본 자금도 거액으로 들어가면서 북한 경제는 초호황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결단만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박성우: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제 중국은 자기 자리를 온전히 차지한 것으로 보이고요. 일본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