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습니까?
고영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 김정은과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은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바라온 6·12 회담과 관련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거기서 만나길 매우 고대했지만,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인해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썼습니다. 계속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므로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매우 거대하고 막강하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핵 능력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북회담의 향후 개최 가능성은 열어 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세계, 그리고 특별히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큰 번영, 부유함을 위한 위대한 기회를 잃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진실로 역사상 슬픈 순간"이라고 하면서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말하면서 여지는 남겨두었습니다.
이상한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관련해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안 할 것이다. 회담이 안 열리면 아마도 회담은 다음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고, 23일에는 기자의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느냐'는 질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두고 볼 것"이라며 "무엇이 되든, 싱가포르에 관해 다음 주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언가 미북 사이의 물밑 접촉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었습니다.
최종 타격은 지난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발표한 담화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희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담화에서 “미국 부대통령 펜스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고 말했습니다. 담화의 백미는 “저들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 앉자고 청한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과연 미국이 여기서 얻을 수 있다고 타산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회담 파기에 직접적인 불을 댕긴 것입니다. 회담 내용을 놓고 미북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최선희 부상의 대미 초강경 발언이 미국을 분노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 외무성 혹은 북한 최고지도부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세평가에서 오판하면서 미국을 휘두르려 한 것이 이번 미북 정상회담의 파기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박성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미국 정부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최선희 부상은 지난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펜스 부통령을 ‘무도하다’고 비난하면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넘긴다면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는 초강경 입장을 밝혔습니다. 계속하여 최 부상은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있다”며 미국과 미국 대통령을 협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뉴욕 군사학교 시절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는 “나는 도비어스 교관을 다루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 방법이란 내가 그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리는 것이었다”며 “힘이 센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이 도비어스도 약점을 발견하면 뒤통수를 노리는 습관이 있었다. 반면 상대방이 강하지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눈치채면 상대방을 남자로서 대접했다”고 썼습니다.
자신이 김정은을 대화 파트너로 존중한 만큼 김정은도 자신을 그렇게 대해주길 바랐던 기대가 무산되면서 결국 회담을 파기하였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입니다. 미국은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참아 넘기려 한 것 같으나 최선희가 ‘끔찍한 비극’이니 ‘핵 대결장에서 만나자’는 식의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자 북한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으며 이런 태도를 보이는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 지도부도 당혹스러울 것 같은데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지난 24일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실험장을 폐기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최선희 부상을 내세워 미국을 자극했습니다. 그러자 미국 시간으로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파기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북한은 김계관 제1부상을 통하여 다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25일 김계관 제1부상이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했다며 “조선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장의 폐기를 마친 것이 24일 오후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이 나온 것은 한국시간으로 24일 밤 일입니다. 그런데 25일 아침 김계관 제1부상이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사실상 미국에 ‘회담을 하자’고 요청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으로 보아 매우 신속한 반응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외교관을 지내봐서 아는데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북한 외무성, 당 중앙 위원회, 국무위원회는 밤을 새우며 회의를 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김정은의 결재를 받아 김계관 성명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지도부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지금 평양 분위기는 최대로 긴장된 상태일 것입니다.
박성우: 향후 한반도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24일 성명으로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파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북한도 김계관 명의이기는 하지만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회담을 하자고 요청한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일정한 냉각기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북한이 미국을 다시 한번 자극하거나 제3국이 북한 편을 노골적으로 들거나 하는 경우 미북 정상회담은 물 건너가고 긴장 상태, 유엔의 제재 국면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박성우: 한동안 순풍이 부는 듯하더니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한반도를 둘러싼 정국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