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시 ‘냉면’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어느 고위급 관료가 지난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남한의 재계 총수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좀 무례한 발언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는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청취자들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지난 9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 방문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 방북 시 북한 측이 평양 옥류관에서 연회를 차렸고, 그 연회장에 참석하였던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대통령 특별 수행원인 한국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식탁에는 한국, 아니 세계 굴지의 대기업인들이 리선권과 같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의 대기업 회장이 냉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은 후 ‘냉면 사리를 추가로 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는데, 그때 리선권 위원장이 문제의 그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연회에 참석했던 한 참석자는 "굳이 그렇게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데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전했습니다.
리선권의 이 발언은 지난 10월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평양 옥류관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냉면을 먹는 자리에 리선권 위원장이 나타나 정색을 하고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는 소리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느냐"는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질문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답변하면서 한국 사회 전체에 알려졌고, 냉면 한 그릇 주면서 사람을 그렇게 면박 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한국 사회가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성우: 리선권 위원장의 발언이 ‘남한에 잘 못 알려진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죠.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 가느냐”는 말은 없었고, 다만 리 위원장이 “뭘 들고 오셔야지, 그러면 제가 다 해드릴 텐데”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건데요. 다시 말해서, 발언의 사실 여부는 확인이 좀 필요한 상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리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는데요. 만약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어떤 이유로 말한 것일까요?
고영환: 옥류관 연회에 참가하였던 리선권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확인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인 것 같지만,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국회에서 보고한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말로 리선권이 그런 소리를 했다면 이는 남북관계 전체를 뒤흔들만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할 때 외국 국가수반이 오는 행사에 참가도 해 보고 연회장 준비도 해 보았는데, 북한에서는 대통령이나 대통령급 행사 시 주탁에는 누가, 1번 탁에는 누가 앉으며, 어떠한 내용의 환담들을 주고받을지 미리 지도자에게 승인을 받습니다. 따라서 리선권의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갑니까?”라는 발언이 김정은의 승인을 받아서 의도적으로 한 발언인지 리선권이 돌발적으로 한 발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북한 지도부의 의견이 반영된 발언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한국 속담에 ‘먹을 때는 짐승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날 연회는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연회, 즉 주빈인 북한 측이 한국 측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리선권에게서 핀잔을 들은 사람들은 한국의 삼성, 엘지(LG), 에스케이(SK) 같은 정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존경을 받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기업들의 회장들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해당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가 자기 나라를 도와달라고, 투자를 해 달라고 직접 부탁해올 정도의 인물들입니다. 냉면 사리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손님을 불러 놓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군대 출신인 리선권의 이 발언이 굳이 좋게 본다면 판문점 선언의 이행이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왔다고 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라고 종용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부문을 맡은 간부로서 성과를 내 김정은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냉면 한 그릇 먹는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면박을 주는 행위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특히는 한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 같은 데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솔하고 천박한 행위라고 봅니다.
박성우: 리선권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사과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고영환: 리선권의 이 발언을 북한 지도부에서는 잘 했다고 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더 나아가 김정은까지도 한국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리선권의 ‘냉면’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 국민들은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북한에 대한 여론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유일 독재국가이니 한사람이 잘 했다고 하면 끝이지만,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통령이나 어느 한 장관이 잘 했다고 말을 하더라도 국민이, 즉 인민이 그것이 잘 안 되었다고 평가하고 비판하면 그것은 잘 된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여론이라고 하는데, 여론이 악화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처럼 대통령도 자리에서 끌어 내릴 수 있는 것이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는 4.27 판문점 선언 때 김정은이 냉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접한 후 평양냉면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었는데, ‘그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라는 리선권의 발언 한마디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여론도 싸늘하게 식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리선권에게 사과를 받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지난 10월 31일에 있었던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리선권의 ‘냉면’ 발언에 대해 “사실이라면 무례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문제”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말했습니다.
박성우: 요즘 북측 당국은 5.24 조치 해제를 남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하려면 여론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냉면’ 발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결코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찌 보십니까?
고영환: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하여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해졌던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인 5.24 조치를 풀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도 5.24 제재 조치를 풀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달 31일 '장애물이 있는 한 순조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북남 사이의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의 새로운 역사적 흐름에 맞게 북남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부터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대외 선전 주간지 통일신보도 지난 10월 30일 "화해와 평화번영의 시대를 더욱 활력 있게 전진시켜 나가자면 남조선에서 북남 사이의 모든 인적 내왕과 협력 사업을 가로막고 있는 5·24조치와 같은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24 제재 조치를 풀려면 한국 국민의 여론이 북한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정부도 한국 여론이 반대하면 5.24 제재 조치를 풀 수가 없습니다. 남북 정부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는 마당에서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냉면’ 발언이 나온 것입니다. 한국 국민은 그래도 한 핏줄이고 동포라서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박성우: 정리하자면, 리선권 위원장의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