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로 ‘새로운 역사’ 시작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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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위원님은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일하시다가 지난 1991년 한국에 정착하셨죠. 2000년 1차 정상회담, 2007년 2차 정상회담에 이어서 이번에 세 번째 정상회담을 지켜보셨는데요. 고위급 탈북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상회담은 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 1차와 2차 회담부터 되돌아 봤으면 하는데요. 남한에서 지켜본 남북 정상회담은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까?

고영환: 역사를 되돌려 보면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은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1994년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94년 7월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분단을 넘기 위해 비행기로 평양을 방문한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군 명예 위병대를 사열하는 모습은 거의 충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차 남북 정상회담의 장면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특별기를 타고 평양 순안 비행장에 도착한 김 대통령을 김 위원장이 만나 악수한 후 함께 북한군 명예 위병대를 사열하던 그날의 장면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6.25 동족상쟁의 전쟁을 치르고 그 깊은 상처를 안고 서로를 적대하며 살아온 남과 북, 그 최고지도자들이 평양에서 만나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웃으며 얘기하던 그 장면은 당시 전 한민족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심지어 저는 1차 정상회담 후 잘 되면 폭넓은 의미에서 이산가족인 저도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 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두 정상이 채택한 6.15 공동선언은 남북의 통일 방안에 공통점을 찾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007년 남북 2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공존'을 넘어 ‘평화’와 '번영'을 이루자는 쪽으로 나아가는 회담이었습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노란색으로 그려진 군사분계선을 발로 넘는 장면도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과 합의들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북한의 지속되는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원하던 열매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2차 정상회담은 1차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차 정상회담 후 ‘북한이 많이 달라지겠지’라는 희망을 남한 국민들이 가졌었는데, 그 후 서해에서 여러 차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고, 귀중한 생명이 남과 북에서 희생되고, 여기에 더해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구나’라고 한국 국민들이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상간 한두 번의 만남과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서 그것이 두껍게 얼어붙은 남과 북 사이의 얼음을 깨뜨리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박성우: 이번 정상회담은 짚어볼 대목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의 발 빠른 행보가 인상적이었죠. 회담 이전부터 이미 핵 실험장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을 선언한 게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무엇이 북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저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29일 핵무력 건설의 완성을 선포한 데 기인한다고 봅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북한이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포하는 장면을 보면서 김정은이 2018년에는 평화적인 자세로, 북한말로 하면 ‘평화공세’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데, 북한의 거듭되는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재제망을 촘촘히 짰으며, 그 제재로 북한이 숨이 막혀 온 데 기인하였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공식 매체들도 유엔의 제재가 2차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봉쇄’보다 더 깊숙이 북한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인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절망감이 커지면서 민심이 술렁거렸고, 이를 김정은 지도부가 많이 우려했을 것 같다는 거죠.

마지막은 김정은 자신의 우려입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북핵 문제가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예방전쟁, 선제적 군사공격을 해서라도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수십 차례 밝혔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김정은 참수부대라고 하는 특수부대를 훈련시켰고, 북한 지하땅굴 파괴용 고성능 폭탄, 각종 순항미사일, 그리고 전략 폭격기들을 계속하여 한반도에 전개했습니다. 이런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들이 김정은을 극도로 압박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남북관계 개선, 남북 정상회담 실현이라는 카드를 현 난국에서 빠져 나오는 출구용 방책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북핵 폐기를 바라는 것 보다는 태평양 물이 마르는 것을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하던 김정은을 움직인 것으로 판단합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실제로 핵을 포기할 것이냐는 건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최대 관심사이기도 합니다만, 북한의 당 간부들도 갖고 있는 의구심일 듯합니다. 전직 북한 외교관의 입장에서 말씀해주시죠. 김정은이 실제로 핵을 포기할 거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를 연구하고 완성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심지어 북한은 2~3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에도 핵무기 제작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김일성이 시작하고, 김정일이 추진하고, 김정은이 완성한 핵무기를 한 두 번의 정상회담 등으로 중단, 폐기하리라고 생각하는 천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다. 지금 북한의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도 ‘그렇게 힘들게 만든 핵무기를 왜 폐기하겠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정은이 정말 변해서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후에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북한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부심과 긍지를 올려놓고 이제 와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것이 북한 간부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만큼 북한의 핵 폐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을 해 보지도 않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는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도와 북한 주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과정을 어떻게 잘 만들어 나가는가 하는 것이 북핵 문제의 핵심이 될 것이다.

만일 이번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했던 것처럼 비핵화를 한다고 하면서 제재를 풀고 뒤로는 시간을 끌면서 핵을 계속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큰 오산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박성우: 이번 회담이 끝이 아니죠.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고요. 일이 잘 풀리면 관련국들의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데요. 이번 회담이 한반도 정국에 어떤 계기가 되길 바라시나요?

고영환: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 영구적 평화 정착, 남북관계 전면적 발전 등 세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북한 비핵화입니다. 여기서 전진이 없으면 나머지는 설사 합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금번 4.27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문재인과 김정은 두 사람이 한반도 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을 세우기를 기원합니다.

박성우: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정상회담 직전에 방명록에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라고 썼습니다. 그 ‘새로운 역사’는 북한 비핵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