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싸움에 나섰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16일 미국을 상대로 담화를 냈습니다.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김계관 제1부상은 지난 16일 담화를 통해 "미국이 일방적 핵 포기만을 강요하면 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 할 수밖에 없다"는 강한 발언을 했습니다. 김계관은 계속하여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 고위 관리들은 '선 핵 포기, 후 보상' 방식을 내돌리면서 리비아식 핵 포기 방식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거나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같은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며 반발했습니다. 미국이 계속하여 압박을 가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향후 북미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김계관 부상의 담화와 함께 지난 16일에 예정되었던 남북 고위급 회담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남북이 합의하였던 고위급 회담을 깨고 미국에 대해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배경에는 이달 22일로 예정되어 있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도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6일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도 기자들에게 "북한은 한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취소함으로써 F-22 등 전략무기가 한반도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 같은 북한의 입장을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김계관 제1부상이 한미 군사훈련을 들먹이면서 미국 쪽에는 경고를 하고 미리 합의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당일 새벽에 깨버리면서 한국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진행될 미북 정상회담 전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하는 미국과 체제의 안전을 원하는 북한 사이에 물밑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회담을 서로에게 유리한 쪽을 끌고 가려는, 씨름으로 말하면 ‘샅바싸움’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쪽을 향해서는 4.27 판문점 선언을 언급하면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암묵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는 평가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북한은 미국이 리비아식 핵폐기를 하려는 데 반발하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리비아식 핵폐기는 뭘 뜻하나요?
고영환: 리비아는 1981년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뒤 강력한 경제 제재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미국 내 자산 동결, 미국의 반리비아 무역 금지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1992년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까지 받았습니다. 이 시점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진행되었고, 이에 당황한 리비아는 2003년 3월 영국 비밀정보국을 통해 미국에 핵 포기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2003년 4월부터 미국과 리비아의 협상이 시작되었고,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 전체를 미국에 공개했습니다. 리비아는 2004년에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가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받았습니다. 핵무기를 만드는 설비 중 하나인 원심분리기 등 리비아의 핵무기 제조 장비와 관련 서류 총 25t 정도가 미국으로 옮겨진 후 폐기되었습니다. 2006년 5월 리비아는 미국과 국교를 맺었고 그 직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면서 보상 등이 이뤄졌습니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은 ‘선 핵 폐기, 후 보상’입니다. 지난 13일 볼턴은 첫째 북한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까지 폐기하는 방안, 둘째 북한 핵무기를 리비아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으로 반출하여 폐기하는 방안, 셋째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 가능한 북한의 비핵화 등을 실시한 후 보상을 해주는 방안 등의 강력한 북한 비핵화 구상을 다시 한번 명백히 했습니다.
북한 김계관이 리비아식 핵폐기 방법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향후 미북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외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북한이 회담을 진행하지 않기에는 이미 서로가 너무 많은 길을 걸어 온 것 같습니다. 이미 북한 주민들에게 미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한 북한의 김정은에게도,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자신한 미국의 트럼프에게도 회담을 깨버리는데 부담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3주 조금 더 남은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은 서로가 적은 것은 내주고 많은 것을 가져가려는 줄다리기를 최대한으로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성우: 아직 미국의 북핵 해법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없는 상태죠?
고영환: 그렇습니다.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일괄타결식 비핵화 해법인 '리비아 모델'이 미국의 공식 방침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이 우리가 적용 중인 모델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변인은 “그러한 견해(리비아식 해법)가 나왔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우리가 리비아 해법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을 따르며 “대통령은 이것을 그가 적합하다고 보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고, 우리는 100% 자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샌더스 대변인은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할 경우 미북 정상회담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예상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대통령은 어려운 협상에 매우 익숙하고 준비돼 있으며, 북한이 만나길 원한다면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 것이고 그들이 만나지 않길 원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최대의 압박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샌더스 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들은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의 '리비아 모델'이 아직 미국 정부의 공식 방침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해법의 신봉자이고,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도 단계적 핵 해결 해법인 '이란 방식'을 최악의 협상이라고 비판하여 왔다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이 치열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아무래도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가 비핵화이기 때문에 그 방법을 놓고 기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체제 보장에 대한 담보가 없는 상태에서 비핵화를 해 버리면 정권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몽니를 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영환: 제가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 국민들이 절대로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통일을 무력의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더군다나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한 동포로 보는 인식이 매우 강하며 그들에 대한 적대감도 없고 북한 주민 역시 경제적 번영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깊다는 점입니다. 이전처럼 북한 땅을 무력을 빼앗고 점령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버린지는 이미 오래 됐다는 겁니다. 오히려 북한과 잘 돼서 북한을 거쳐 러시아나 중국도 자유롭게 자가용으로 오가고 북한에 명승지도 많다고 하니 보고 다니며 남북이 같이 좀 잘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저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는 이번 6월 12일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화끈하게 북한 비핵화를 선언해 이행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미 말한 것처럼 북한의 대대적인 경제 번영과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행하는 게 거의 유일한 북한 비핵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럴 경우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노벨 평화상도 같이 받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박성우: 협상 과정에서 일보 진전이 있으면 일보 후퇴도 있을 수 있죠. 다만 그 길이 북한 비핵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