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도 북핵 보유 용인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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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를 허용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좀 시간이 지나간 주제이긴 합니다만, 오랜만에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점검해보는 차원에서 여쭤보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에 “작은 국가들은 독립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갖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를 두고 러시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죠. 부원장님은 어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에 대해 일정 부분 이해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죠. 지난 5일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 국제경제포럼 토론에서 미국을 비판하며 “힘의 논리, 폭력의 논리가 확장하는 시기에는 북한에서 지금 나타나는 것 같은 문제가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미국을 자국 안보의 최대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푸틴 대통령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는데요. 미국이 북한을 핑계 삼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을 증강한다고 여기고 이를 강하게 경계하는 입장을 푸틴 대통령이 드러냈다는 거죠.

저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를 찬성한다기보다는 나토와 한미동맹, 미일동맹 등으로 러시아를 동서에서 협공하려는 미국의 대러전략을 반대한다는 대전제 하에서 이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북한핵을 용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쓰면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봅니다.

박성우: 그렇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시도와 관련한 러시아의 진의는 뭐라고 보면 되나요?

고영환: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북핵에 대한 입장은 반대입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일 토론에서 미국을 비판하며 "힘의 논리, 폭력의 논리가 확장하는 시기에는 북한에서 지금 나타나는 것 같은 문제가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날인 지난 6월 2일 러시아 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에 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든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을 찬성한 사실로 증명이 됩니다.

사실 러시아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이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빠짐없이 찬성해 왔습니다. 청취자분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한 나라만 반대하여도 결의안을 채택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북핵을 반대하는 결의안들이 줄줄이 채택된 데는 북핵을 반대하는 러시아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던 거죠. 결론적으로 말해 러시아의 북핵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용인이 아니라 반대라는 것을 재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성우: 그런데 요즘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증진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사실인 듯 하거든요. 만경봉호가 블라디보스토크와 나진항을 오갈 수 있도록 된 게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겠죠. 그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북한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지난 5월 25일부터 매주 1회 블라디보스토크항과 나진항을 정기운항하기 시작해 주목받았습니다. 만경봉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1992년 김일성 출생 80주년을 기념해 북한에 보낸 40억 엔(약 4천만 달러) 상당의 자재를 사용해 청진조선소에서 만들었습니다. 2000년 중반까지 북한 원산과 일본 니가타를 오가는 북일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배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일본 정부는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을 금지했습니다. 이후 만경봉호는 북한에서 나진과 고성을 오가는 여객선이나 해군대학의 연습선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노후화로 인해 5년 전부터는 나진에 폐선처럼 방치돼 있었습니다.

이 배를 지난해 5월 러시아 해운회사 ‘인베스트 스트로이 트러스트’(IST)라는 회사가 인수했습니다. 선체 수리를 마친 만경봉호는 5월 17일 나진항에서 승객 40여 명을 태우고 시험항해에 나서 18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해상 정기 화물여객선이 취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IST는 만경봉호를 이용해 북중러 3국 묶음 여행상품을 구매한 중국과 러시아 관광객을 운송하는 한편, 북한제 의류나 러시아산 해물과 생필품을 실어 나를 것으로 보입니다. 만경봉호의 운항은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만경봉호 운항이 반갑지 않은 눈치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 정부는 북한을 오가는 여행객의 개인 짐을 비롯한 모든 화물의 검색 책임을 포함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와 2321호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만경봉호 운항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만경봉호 운항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만경봉호 운항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극동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고요. 러시아는 앞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을 연결하는 관광 항로 개발도 추진해 3국 묶음관광을 더욱 확대할 방침입니다.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틈을 이용해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견제하려는 속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도 중국이 유엔 제재에 적극 동참하자 이러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속셈은 중국 대신 러시아를 통해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정면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러시아가 북한을 챙겨주려 한다면, 북한으로선 손해 볼 게 없을 듯 한데요. 북한에게 러시아는 중국을 대신할 ‘큰 형’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소련과 관계를 강화하였고, 소련과 관계가 나빠지면 중국과 관계를 밀접히 하는 이른바 ‘양다리 외교’를 펼쳤고, 이것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부 김일성을 본떠 김정은도 현재 중국과의 관계가 나쁘니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중국을 자극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를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소련은 미국과 자웅을 다투던 세계 2위의 강국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이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러시아는 일본, 독일, 심지어 인도에도 뒤지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 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러시아가 현재 세계 2위인 중국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도 끄기 어려운 경제사정을 가진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북한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고, 러시아도 북한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은 현재 세계 1위 2위의 초대강국들입니다. 북한이 움직이려고 한다고 해서 중국이 따라주지 않고 러시아가 원한다고 해서 미국이 따라나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은 북한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중국을 멀리하면 할 수록 북한체제가 감수해야 할 위험수위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박성우: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임시변통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효력이 오래가진 못한다는 뜻이죠. 북한 당국도 이 속담의 뜻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