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 당국이 70년대 성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 당국과 언론 매체들이 최근 들어 70년대 성과를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북한이 이른바 ‘기초 축성 시기’, 다시 말해 김정일의 후계 굳히기 시절인 1970년대 성과들을 최근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언론들은 현재 북한이 창조해야 할 정신은 1970년대 시대정신의 계승이라는 선동을 부쩍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입니다. 1960년대는 그래도 숨 쉬고 살만하였고 상대적인 자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3대혁명소조운동, 70일 전투, 주당생활총화가 시작됐습니다. 정신없는 시기가 되어 버린 것이죠. 사방이 건설장이었는데, 그중 많은 부분이 예를 들어 주체사상탑 등 김일성 우상화물을 짓는 현장이었어요.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내부 자원을 끌어 모아 탄광에 집중하는 바람에 70일 전투가 끝나면서 나라의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1970년대가 유일사상 확립의 시기, 공포의 시기, 정신없는 시기,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그만하면 살만했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올해 후계자로서 첫해를 시작한 김정은은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였던 1970년대에 살았던 중장년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여 경제를 회복시키고 그때처럼 대대적인 군중적 운동으로 나라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다른 한편으로 북측은 “세계적 추이에 맞게 경제구조를 개선 중”이라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 부상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면서 내놓은 발언이었지요. 이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하십니까?
고영환: 유엔 총회에 참가한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발전도상국 모임인 ‘77그룹’에서 “지금 조선에서는 세계적 추이에 맞게 경제구조를 개선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북한이 시행하려는 ‘6.28 경제 개선 조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고, 김정은이 모란봉 시범악단 공연에서 미국 영화 ‘록키’를 배경화면으로 흐르게 하면서 미국 만화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등을 등장시킨 것과도 다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의 정치 상황은 후계 구축 과정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이 숙청되는 등 여러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경제도 엉망입니다. 무엇인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지요. 그렇다고 모택동을 비판하면서 개혁개방 노선을 취한 등소평처럼 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강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현재 북측은 외부세계에 ‘김정은의 북한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으니 제재도 풀어 주고 지원도 해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77그룹’은 발전도상국들의 모임입니다. 북한은 경제 상황이 하도 좋지 않으니 발전도상국들에게까지 손을 벌려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1970-80년대 이목을 잠시 끌었던 ‘남남협조’는 이제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이 이런 70년대 이야기까지 꺼내고 있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럭저럭 잘 나가던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발전도상국들에까지 지원을 요청해야할 정도로 나라가 힘든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듯 합니다.
박성우: 북한 외무성 부상의 말대로 세계적 추이에 맞게 경제 구조를 개선하겠다면 북한 당국이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고용해야 할 텐데요. 그런데 북한은 인적 쇄신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장님 의견은 어떠합니까?
고영환: 북한은 요새 ‘세계적 추세’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현재 세계적 추세는 각 나라의 경제를 젊고 능력있는 인재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전혀 딴판입니다. 최고상임위원장인 김영남도 나이가 90세에 가깝고 최영림 총리도 83세의 고령입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들을 보면 거의 다 60세 이상의 고령입니다. 오직 김정은만이 20대 후반이지요. 참으로 묘한 그림입니다.
최영림 총리는 김일성의 책임서기 출신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천가, 이론가 중 한 명입니다. 1960-70년대 북한 경제를 이끌어 온 사람이 2000년대 경제를 앞장서서 인도한다는 것은 사실 이치에도 맞지 않고 김정은이 새로 주장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습니다. 80이 넘은 고령의 인물이 어떻게 나날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세계 경제를 따라가고 나라의 경제를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 지도부의 어딜 봐도 젊고 새로운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적쇄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물론 최근 들어 최 총리가 현지시찰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외국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지 않은 상태로 경제를 회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은 경제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책임이 총리에게 돌아갈 것은 명백합니다. 예전에도 강성산 총리, 리근모 총리, 홍성남 총리가 숙청된 바 있습니다. 최영림 총리도 그런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요.
박성우: 경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지요. 요즘 북한 경제는 사실상 중국에 예속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인데요. 이게 통계 자료로도 입증되고 있지요?
고영환: 올해 북한과 중국의 무역액이 8월말 현재, 그러니까 1월부터 8월까지 봤을 때, 40억 달러가 넘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의 통계자료를 인용했는데요. 이 기간 동안 북한이 중국에 수출한 액수는 17억 달러 정도이고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한 액수는 23억 달러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8개월 동안 5억9천만 달러 이상의 적자를 본 것이지요.
북한은 석탄을 전체 수출액의 절반이 넘는 9억 달러 이상, 철광석을 1억6천만 달러, 비합금선철을 5천만 달러 이상 중국에 수출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은 중국에 주로 지하자원을 수출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김일성은 동구라파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제 공동체였던 ‘쎄브’에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는 “우리는 석탄과 광물만 팔고 구라파로부터는 기계를 사다쓰면 우리 나라가 얼마 안가 구멍만 남은 폐허로 될 것 같아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40-5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석탄과 광물밖에 팔 것이 없는 나라로, 그리고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된 국가로 변질되었습니다.
북한은 한국을 보고 ‘미국의 경제 식민지’라고 말하는데,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로서 주요 상품을 중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 골고루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제의 경제 식민지가 아니라 북한이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뜻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박성우: 그런데 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북중 관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는 평가가 있던데요. 실장님도 동의하시는지요?
고영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미국의 우드로윌슨센터가 발굴한 중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에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1961년 5월에 작성한 문건에는 “최근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국 사람들이 매일 같이 늘어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는 북한이 중국보다 더 잘 살았습니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하면서 사람들이 굶주렸고, 그래서 북한으로 많은 중국 사람들이 들어 왔었던 거지요. 저도 1960년대 말 혜산 지역에서 사적지 탐사를 하면서 중국 쪽을 봤고, 1970년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후 기차를 타고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이 정말 못산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개혁개방을 1978년에 시작하면서, 그리고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라는 폐쇄 경제를 고집하면서, 불과 30년 동안에 중국은 세계 초대강국으로 변모하였고,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어떤 길을 제시하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개혁개방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서, 나라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명백히 보여 주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 당국이 선택해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