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보릿고개

북한 여성들이 묘향산 인근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북한 여성들이 묘향산 인근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Photo: R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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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유월이 다 가고 여름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날씨도 후덥지근하고 비도 때 없이 오락가락하네요. 화창한 6월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웃을 수 있는 달이라기 보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픈 기억 때문에 차분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헤어져 있는 가족을 생각하는 그런 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6.25 동족상잔의 아픔을 추모 하면서 북한에서 배고팠던 기억과 함께 가족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 때의 함경북도 회령은 6월이면 아주 힘들었습니다. 보릿고개의 계절이라 먹을 것이 마땅치 않고 또 금방 씨앗을 심고 싹터서 자라는 때라 감자나 보리가 여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시기였죠. 한국에서도 1960년대 까지는 보릿고개를 겪어서 그에 대한 노래도 있답니다.

"아이야, 뛰지 말아 배 꺼질라..." 하는 진성의 노랫말을 혼자 중얼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살아온 시절을 생각하면서...

예전의 한국은 5월이면 보릿고개였지만 날씨가 추운 북한은 6월이 보릿고개 시기라고 보면 되죠. 북한의 보릿고개는 어쩌면 남한보다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옆집 할머니가 쑥 한 소쿠리 뜯어서 삶아가지고 오셨네요. 쑥떡을 해 먹으라고 주시는데 북한에서 옥수수 겨 가루를 넣고 해먹던 쑥떡 생각도 나고, 어쩌다 좋은 밀가루가 생겨서 쑥버무리 해먹던 생각도 나서 한 번씩 고향생각에 쑥버무리를 해먹는데 한국에서는 그것을 "쑥털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한국에서 16년을 살면서 몸에 좋은 것들을 많이 먹어왔지만 못 잊을 고향의 음식들을 가끔씩 해먹으면서 옛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은 예전에 한국도 북한 못지않게 배고픈 시절이 있었지요.

6.25동란이 끝나고 폐허만 남은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씨를 뿌려놓고 보리가 익어서 영그는 시기를 기다리면서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던 시절을 외우곤 한답니다. 가끔 동네나 모임에 나가면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보릿고개 시기 이야기를 옛말처럼 해주십니다. 너희가 북에서 배고픈 고생을 한 것처럼 우리도 어릴 때 배 많이 곯았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죠.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40대 중반인 나이인데도 보릿고개 시절의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를 하기가 어렵죠.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져서 배고픔 즉 굶주림을 모른다는 이야기 입니다.

어찌 보면 일본강점시기 일본사람들이 북한을 만주의 디딤돌로 생각하고 철도며, 공장, 광산, 제철소 등을 건설하고 발전시켰지만 한국은 곡창지대라고 쌀 생산만 하게 해서 6.25가 끝나고 나서는 한국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초토화가 되고 달리 먹고 살 것이 농사에만 매달려야 했으니 배고픈 계절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오로지 엄마들의 몫이 아니었을까요?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이영희 씨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영희씨는 고향에 동생네가 있는데 돈을 보내주었다면서 북한에서 이 보릿고개를 어찌 이겨내는지 제발 빨리 북한에서의 경제상황이 나아져서 그들이 좋은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군요.

이영희: 나는 이북에 전화를 해서 돈 300만원 보냈다.

영희 씨는 6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한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지요. 또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지난해까지 세 차례 관절수술까지 하였는데 만약 우리가 북한에서 살았다면 이 몸을 가지고 일할 생각은 고사하고 지금 뭘 하고 있겠냐고 하는군요.

이영희: 장마당에 앉아서 풀이나 팔겠는지 옷이나 팔고 있겠는지 여기 와 보니 어떻게 살았나 싶다. 거기서는 악착같이 살았는데…

영희 씨는 나이는 환갑나이지만 마음은 청춘이라면서 고향에서 보내온 사진을 받아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이영희: 사진이 오고 녹음이 오더라. 보니까 내 동생 50살인데 나보다 더 늙어 보이더라 사진을 보니까 할머니더라.

영희 씨는 그렇게 동생에게 보내는 돈이 중간에서 브로커에게 2차로 수수료를 물고 나면 정작 내 가족에게는 몇 푼이나 돌아가겠냐고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라도 노년에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는군요.

오늘도 대한민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고향의 가족들이 하루라도 배고픈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쉬는 날도 열심히 일해서 돈이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난의 6월, 잔인한 유월을 고향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무사히 잘 이겨내기를 대한민국에서 탈북민들이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