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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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저의 고향 양강도는 아직 한창 엄동설한이겠죠. 겨울을 잘 이겨냈는지, 먹을 게 없다는데 추위에 배고픔까지 더해지지는 않는지 고향에 남아있는 삼촌 가족이 걱정됩니다.

북한이랑 다르게 엄청나게 발전한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발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열심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북한에서처럼 뇌물을 바치거나 꼼수를 쓰거나 거짓 요행수를 바라면 절대 안 된답니다.

그러다 보니 탈북 여성들은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몇년은 정착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굶어 죽는 아픔보다 또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는 아픔보다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지요.

며칠 전 탈북 여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우리 회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구청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에 참여하라는 안내가 도착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부자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기 위한 강연회 토론, 교육만 받아온 우리인데 언어부터 생소한 성희롱 예방 교육이라니 참 신기하기도 했지요.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교육 장소로 갔고 그날 북한이 고향인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알고 보니 노동법에 속하는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북한에서 모르고 당했던 억울함 부끄러움, 수치심 모든 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범죄며 법적 처벌이 가능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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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면 북한에서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 엄청나겠더라고요. 북한에 살 때요. 가로등이 없는 평양시의 어두운 곳에는 저녁 10시 이후에는 보안원들이 가끔 서있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들은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방을 뒤지거나 짐을 검사하거나, 하긴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지요.

가방 속에 화장품 케이스까지 보여주면서도 당연하다 생각했고 또 어둡고 무서운 그곳에서 가방을 뒤지는 경찰이라도 있는 게 오히려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고 나니 북한에서 우리 여성들의 인격은 무참히 짓밟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현재도 그곳에서 성희롱에 노출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오늘도 참 탈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잘못된 성 의식과 성문화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때 사건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특히 수직관계에서의 직장 내 성희롱은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대처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관계 형성 때문에 신고하는 것도 두렵고 신고 후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조롱 등 2차 피해에 대한 염려도 있어 잘 대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취자님들은 성희롱을 들어보신 적도 없지만, 현재 직장에서 혹은 장마당에서 열차에서 수도 없이 당하고 계신 것을 눈치채셨죠? 그곳에선 권력 앞에 말 못하고 당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고할 수 있고 간부들이 혹은 남자직원들이 여자에게 함부로 할 수 없이 사회적으로 보호막을 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들으시면서도 믿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불쾌하면 성희롱

직장 내 성희롱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나 행동과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면 성희롱이라고 합니다. 또한 남자직원이 여자직원의 가방을 함부로 보는 것도 성희롱에 속한다고 합니다.

여자직원에게 ‘몸매가 좋다’, 아니면 ‘여자가 애 낳는 게 뭐 별일이야?’, ‘머리를 올리니 목선이 이쁘네’, ‘화장 좀 하고 다녀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가 없어’ 이런 말들이 여직원이 들었을 때 모욕감으로 들렸거나 기분이 나빴으면 죄가 되는 거고요.

반대로 여성 직원들이 남자 직원들에게 ‘운동하더니 허벅지가 튼튼하네!’ ‘힘 좀 쓰겠는데’, ‘술은 젊은 남자에게 받아야 맛있죠,’ ‘남자는 어깨가 넓어야지’, ‘남자가 이렇게 기운이 없어 밥은 얻어먹겠어?’ 등의 말을 했을 때 직원이 모욕으로 느끼면 또 죄가 된답니다.

청취자님들은 실생활에서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듣고 사시는지 생각해봐주세요. 북한이 고향인 우리도 그날 북한에서 흔히 들었던 그럼에도 신고는커녕 화 한번 내보지 못했던 농담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여자로 태어나 북한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여자가 어디 함부로 나대냐?’, ‘여자 주제에 어디 앞 좌석에 척척 올라타냐?’, ‘여자를 태우니 타이어가 터졌지’, ‘야 한잔 따라봐’, ‘너는 왜 국가 밥을 먹고 그렇게 미안하게 생겼니?’ 등이었죠.

북한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죄였고, 사회 전반에서 시시때때로 우리는 성희롱을 당했더라고요. 자유를 찾은 탈북민 3만명은 이곳에서 여성의 지위를 찾고 사랑받으며 살고 있지만, 현재 북한에 사시는 청취자님들은 여전히 어둡고 수치스러운 날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땐 몰랐는데…그것이 불법이었네요.

그날 북한이 고향인 여직원들은 한결같은 생각을 했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흔하게 듣는, 늘 듣는 당연한 교육이었지만 우리는 또 한번 고향에 남겨진 친구들이 걱정스러웠고 불쌍했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평양으로 가는 버스에서 마약을 단속한다면서 엄청나게 큰 수색견이 옆을 지나가는 바람에 무서워 비명을 질렀더니 미친년 소리를 들었다며 회사 언니는 그날의 두려움을 말해주었고 열차에 짐을 싣고 장사를 떠났던 여직원은 열차안전원에게 뇌물을 바치면서도 앉으라면 앉고 술을 따르라면 따르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면서 본인들이 당했던 그 아픈 추억들이 현재도 북한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실제상황이라니 하루빨리 고향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온전한 권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그러기 위해 더 건강하게 열심히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며 맛있는 점심을 위해 회사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언젠가 한반도의 이북지역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방지 교육이 열리고 그 속에서 모든 주민이 평등한 보호를 받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